미시세계부터 우주까지…변화의 가능성을 묻다
11월 15일까지…작가 43명 참여
권병준·박찬경 ‘불림’ 등 신작
5·18 기억…사운드·퍼포먼스 등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일 개막식을 열고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의 전시 여정에 들어갔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야외광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국내외 문화예술계 인사와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윤범모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의 개막 선언을 시작으로 공연과 작품 공개가 이어지며 비엔날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윤 대표이사는 개막식에서 "생태, 전쟁, 민족, 빈부 차별, 사회 불평등과 같은 복합적인 위기 시대 속에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변화와 실천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주목했다"며 "동시대 예술의 창조와 나눔을 이끄는 플랫폼으로서 교류와 연대를 확장하고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30년 동안 시대가 던진 질문에 예술로 답을 찾아왔고 그 출발에는 5·18의 기억과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정신이 있다"며 "수많은 작품이 인간과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넓히고 평화를 향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절에서 가져온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다. 호추니엔 예술총감독과 박가희·브라이언 쿠안 우드·최경화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을 맡아 원자와 분자의 미시적 세계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역사, 우주에 이르는 다양한 층위의 변화를 살핀다.
본전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한 곳에 집중했다. 참여 작가는 43명(팀)으로, 여러 공간에 작품을 흩어놓기보다 작가별 작업을 밀도 있게 배치해 개별 작품과 작가의 장기적인 예술적 실천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장 곳곳에는 시간과 변화라는 주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자리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가져온 제주 화산암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소개된다. 화산탄과 용암종유, 용암석순, 풍화혈 등 다양한 형태의 돌은 화산 분출과 냉각을 거쳐 만들어진 뒤 수천 년 동안 풍화와 침식을 견뎌왔다. 급격한 변화뿐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느린 변화 역시 시간의 축적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는 전시의 메시지를 담았다.
호추니엔 예술총감독은 "돌 하나하나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축적돼 있고, 냉각과 풍화가 함께 담겨 있다"며 "이번 전시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다른 속도와 규모로 변화하는 것을 살펴보는 여정이다"고 말했다.
권병준·박찬경의 '불림'은 광주·전남 시민들이 기증한 쇠붙이를 녹여 악기와 소리 장치로 재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작품은 무당이 될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쇠붙이를 모아 방울과 징, 꽹과리 등을 만드는 한국 무속 의례 '쇠걸립'에서 출발했다.

니나 카넬의 '상동곡(40㎏)'은 물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형태의 소멸과 생성을 보여준다. 대야의 물에 초음파 진동을 가해 미세한 안개로 만든 뒤 주변의 시멘트 가루를 서서히 굳게 하면서 물질이 변형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5·18민주화운동의 기억을 다룬 작업도 눈길을 끈다. '오월어머니집'은 당시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잃거나 부상한 여성들이 직접 그린 그림 322점과 인터뷰 책을 선보인다. 꽃과 과일, 가족에 대한 기억부터 1980년 5월의 폭력, 촛불집회와 연대의 순간까지 개인의 삶에 남은 기억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전시 기간 한 차례 작품을 교체해 어머니들의 기억과 삶을 계속해서 조명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작품의 경험이 달라지는 작업도 있다. 안젤라 고의 '크래프트'는 제2·3전시실을 연결하는 외부 통로에서 하루 네 차례 공연 형태로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건축물, 다리, 주변 풍경이 결합하면서 관람객에게 고정된 작품이 아닌 변화하는 장면을 제시한다.

입장권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도 마련됐다. 제임스 T. 홍의 '사과'는 세계 각국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공식 사과를 모은 약 11시간 분량의 영상 작품이다. 매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전시관 외벽 세 면에 영상이 투사돼 책임과 반성의 문제를 공공 공간으로 확장한다.
제5전시실에 자리한 재클린 키요미 고크의 '어긋난 BPM(R로즈 변주곡)'은 기계 장치와 송풍기, 피드백을 활용한 미로형 설치와 다채널 테크노 사운드가 결합된 작품이다. 공기를 머금은 투명 비닐 풍선 구조물이 반복적으로 부풀고 가라앉으며 클럽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만들지만, 익숙한 흥분보다는 긴장과 고립의 감각을 전달한다.
호추니엔 예술총감독은 "변화는 한 번의 극적인 사건이나 파열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축적 속에서 궤적을 만들기도 한다"며 "예술 작품을 빠르게 훑기보다 작가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실천의 결과물을 오래 바라보고, 관람객이 자신의 삶과 주변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