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보다 긴 전쟁, 비어가는 러시아 냉장고…푸틴의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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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73) 러시아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게다가 와일드베리스는 외국 자본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 러시아 기업이라고 푸틴 대통령이 칭찬해 왔다는 점에서 이를 집중 공격하는 우크라이나의 노림수가 보인다. 러시아인의 자존심과 푸틴 대통령의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겨냥한 심리 공격이라는 이야기다.
러시아에서 선거는 사실상 푸틴과 집권 세력에 '박수' 치는 정도의 의미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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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 추월한 전쟁 기간, 누적 사상자 140만 추산
● 北에 손 벌리며 전쟁 이어갔지만 잃은 영토만 400㎢
● 우크라, 러시아 쿠팡 ‘와일드베리스’, 정유 시설 타격
● 비어가는 러시아 국민의 자동차 연료통과 냉장고
● 9월 두마(하원) 선거 패배 가능성 낮지만 민심 이반 가능성↑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장거리 미사일·드론으로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심층부의 물류 창고 등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압박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이 전쟁 피해를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민심 이반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유국 러시아에서 자동차 연료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생활용품과 군수물자를 공급해 온 대형 물류기업 '와일드베리스'의 물류 창고가 우크라이나의 잇단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러시아인의 '자동차 연료통과 냉장고'가 비기 시작했다.
주요 외화 수입원인 에너지 수출도 오랜 서방 제재로 한계에 달하면서 재정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두마(дума·하원) 선거가 9월로 다가왔다. 푸틴의 권위주의체제에서 선거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선 승리는 사실상 떼어놓은 당상이긴 하다. 하지만 투표율과 찬성률의 변화는 푸틴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 기대 전쟁 이어가는 러시아
워싱턴·브뤼셀·런던에 거점을 둔 비영리 공공정책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의 특징을 '장기전과 소모전'으로 요약했다.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6월 11일 1569일째를 맞으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1568일을 추월했다. 푸틴 정부는 프로파간다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전쟁'이란 용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대신 '특수군사작전'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군사작전치고는 길어도 너무 길다.전선에선 대규모 영토 점령이나 전과, 뚜렷한 전선 이동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극심한 참호전과 진지전이 이어지면서 전선이 교착된 채 양측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만 내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병력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국민 피로감도 가중되는 상황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7월 1일 양측 사상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45만 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사상자가 모두 1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군은 12만5000∼15만 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총 사상자가 52만5000∼62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공식 사상자 숫자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기고 있다"는 푸틴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CSIS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올해 4∼5월에 지금까지 점령한 땅보다 더 많은 땅을 잃어 약 400㎢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반격에 나서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주의 일부 지역을 점령한 이후 러시아가 처음으로 기록한 점령 지역 순손실이다. 이는 군사전략적으로 보면 러시아군이 전력과 보급 소진으로 더는 공세 유지나 진격이 불가능한 한계 시점인 '공세종말점'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2024년 당시 쿠르스크에서 밀린 러시아는 북한에 손을 벌려 2024∼2025년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받아 반격에 나섰다. 다급해진 푸틴 대통령은 2024년 6월 북한을 방문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양국 관계를 격상했다. 북한의 러시아 지원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8월 9일 "최대 5만 명의 북한 병력이 러시아에 추가 배치됐다"고 말한 데 이어 이틀 뒤인 11일에는 "러시아가 북한산 탄도미사일로 공격해 왔다"고 밝혔다. 이제 러시아는 북한의 병력과 미사일 지원 없이 자력으로 우크라이나전을 끌고 나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전선 아닌 러시아인의 심장 노리는 젤렌스키
전선이 아닌 러시아 본토와 점령지를 노린 우크라이나의 작전 변경도 푸틴 정부에 압박을 가한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봄부터 장거리 드론과 미사일을 동원해 전쟁 무대를 수도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으로 확대하고 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발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7월 들어 모스크바에 역대 최대 규모의 드론 공습을 가한 데 이어 2014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크림반도도 타격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러시아 휴양객으로 붐비던 크림반도는 사람들이 황급히 피란하면서 '유령도시'로 변했다.CSIS 보고서는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고 있다"며 "침체된 경제와 치솟는 물가, 전선에서 실려오는 전사자 시신, 대도시를 겨냥한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 국민이 전쟁의 대가를 직접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유통업체인 와일드베리스의 물류 창고를 주로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방 언론들은 와일드베리스를 두고 '러시아판 아마존'이라 하는데, 이를 한국에 비유하자면 쿠팡 창고만 집중 공격해 생필품 배달을 막는 셈이다. 게다가 와일드베리스는 외국 자본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 러시아 기업이라고 푸틴 대통령이 칭찬해 왔다는 점에서 이를 집중 공격하는 우크라이나의 노림수가 보인다. 러시아인의 자존심과 푸틴 대통령의 민족주의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겨냥한 심리 공격이라는 이야기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 드론 운용 능력의 진보다. AI 프로그램을 탑재해 스스로 목표물을 식별하고 타격하는 자율형 드론 운용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GPS 대신 민간 와이파이 신호를 이용해 드론을 목표 지점으로 정확하게 유도함으로써 타격 정밀도를 끌어올리는 기술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푸틴을 가장 압박하는 것은 장거리 무인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수천㎞를 자율 비행해 러시아 깊숙한 후방 대도시의 정유·가스 설비나 물류 창고 등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드론 능력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드론으로 러시아 후방의 정유 시설과 파이프라인, 군사 연구시설 등을 체계적으로 공격해 모스크바의 전시 경제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 공격은 러시아 주유소에 주민들이 장사진을 치게 만든 것은 물론 군용 디젤유·항공유 등의 보급을 막아 러시아군의 기동성을 일시 떨어뜨렸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인들은 그동안 '먼 곳의 북소리'로만 치부했던 전쟁을 비로소 '바로 앞의 현실'로 체감하게 됐다.
‘돈줄' 석유 수출도 발목 잡혀
에너지 수출이 발목 잡힌 것도 러시아에는 큰 타격이다. 푸틴 정부의 금고에 직접적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G7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산 원유의 거래 가격을 배럴당 44~47달러 수준으로 제한하는 가격상한제를 적용했다. 이외에도 제3국 중개기관에 대한 러시아산 에너지 거래 금지를 확대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드론을 이용해 정유·운송 시설 및 흑해 운항 운반 선박을 공격하며 에너지 운송도 어려워졌다. BBC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쟁 전에는 에너지 수출로 전체 재정의 40% 이상을 감당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전쟁 발발 뒤로는 서방 제재와 유가 변동 등으로 의존도가 25% 정도도 떨어졌다. 전선 교착과 사상자 증가에 더해 돈줄인 에너지 수출도 서서히 막히는 형국이다.

현지 영어 신문인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에선 이런 정당을 '실험실 정당(Laboratory Parties)'으로 부른다"고 전했다. 민의에 기초한 상향식 '풀뿌리 정당'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듯한 명망가들의 하향식 붕당이라는 의미다. 러시아에서 선거는 사실상 푸틴과 집권 세력에 '박수' 치는 정도의 의미만 있다. 그러나 투표율과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현저하게 떨어질 경우 푸틴이 겪게 될 정치적 타격은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푸틴의 정책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반대와 저항의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혁명으로 황제 일가 처형과 내전을 겪은 나라다. 냉전 당시 세계 최강국의 하나로도 군림했다가 자체 모순으로 몰락해 비참한 경제난과 가치관 붕괴도 겪었다. 이런 역사를 반추하면서 푸틴 대통령의 집권으로 나라가 그나마 안정되고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푸틴의 장기 집권을 받치는 힘이 돼왔다.
하지만 1차 대전보다 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민심이 뒤집힐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성격상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정치 역사를 보면 지도자가 뒷걸음을 치는 순간 '배신의 판도라 상자'가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모든 일이 푸틴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채인택 국제 저널리스트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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