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가보니…규모 줄이고 ‘밀도’ 높인 광주비엔날레
AI도슨트·휴식공간 등 관람 편의 강화
오월어머니집 등 ‘광주의 시간’도 담아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를 제목으로 내건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4일 막을 올렸다. 직접 전시장을 돌아보니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규모'였다. 작품과 작가를 늘리는 대신 수를 줄이고 한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도록 구성했다.
호 추 니엔 예술총감독은 이번 비엔날레의 출발점으로 자신의 경험을 꼽았다. 지하철에서 릴케의 시를 읽다 마지막 구절인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를 접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주변 풍경 속에서 강한 변화의 감각을 느꼈다는 것이다.

참여 작가 대폭 줄였다…규모보다 '밀도'
올해 본전시 참여 작가는 22개국 43명(팀)이다. 2024년 제15회 72명, 2018년 제12회 165명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호 감독은 "대부분의 비엔날레는 확장을 규모와 연계하지만 이번에는 밀도에 집중하고 싶었다"며 "한 작가에서 다른 작가로 빠르게 넘어가기보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작가들의 실천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분자와 나', '신체와 관계', '풍경과 배움', '우주와 변화', '공기와 발화' 등 다섯 개의 풍경으로 나뉜다.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몸 안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사회와 도시, 우주까지 관람자의 시야를 단계적으로 넓히는 방식이다.
전시장 구성에서도 관람객을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작품을 따라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전시실로 이어지고 건물 사이 통로에도 작품을 배치해 흐름을 끊지 않았다. 영상 작품 주변에는 앉아서 볼 수 있는 공간도 곳곳에 마련됐다.

보고 걷고 참여하며 느끼는 '변화'
전시는 관람자의 시선도 계속 움직이게 한다.
제1전시실에서는 바닥에 놓인 화산암을 보기 위해 시선을 낮췄다가 황금빛 '송진 연못'을 지나 벽면의 회화를 바라보게 된다. 작품의 크기와 높이를 달리 배치해 한 공간에서도 서로 다른 규모와 시점을 경험하게 했다.
제2·3전시실 사이 퍼포먼스에서는 퍼포머의 작은 손짓과 그 뒤로 오가는 사람, 도시 풍경이 겹쳐진다. 신체의 미세한 움직임이 주변 공간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직접 체감하게 하는 식이다.


세계 미술 사이에 놓인 '광주의 시간'
세계 각국의 동시대미술 사이에는 광주·전남의 역사와 예술도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5·18민주화운동 유가족 공동체인 '오월어머니집'의 회화와 출판물이 전시됐고, 200여 년 동안 이어진 진도 운림산방의 작품도 한 공간을 차지했다.
의재 허백련이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세워 노동과 배움, 수양을 연결했던 삶을 소개하는 공간에서는 그가 즐겼던 춘설차도 맛볼 수 있다.
광주·전남 시민들이 기증한 금속을 악기와 사운드 장치로 바꾼 권병준·박찬경의 '불림' 역시 개막일 퍼포먼스로 공개됐다.
지역의 역사를 별도 '광주 섹션'으로 떼어놓기보다 세계 작가들의 작업 사이에 나란히 배치한 점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다만 비엔날레는 끝까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라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호 감독은 릴케의 시구에 대해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