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네 삶을 바꿔라’···발길 따라 이어진 변화의 시작

김만선 2026. 9. 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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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별처럼 그렇게 제 모든 가장자리에서/빛을 내지도 못했으리라:너를 바라보지 않는 곳이란/한 군데도 없으니까.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광주비엔날레 1전시실(분자와 나)에 들어서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가 손님을 맞이한다.

전시를 관람한 김민결(11·순창초등학교 4학년)군은 "지난 광주비엔날레 전시회도 관람했었는데 매번 주제가 바뀌면서 그만큼 볼거리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면서 "올해는 좀 어두운 면이 많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즐겼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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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첫날 전시장 관람기]
국내외 잇단 방문객…32년 명성 실감
릴케의 선언으로 시작한 제1전시장
수천년 축적된 시간성 담은 화산암
호박색 웅덩이 이룬 ‘송진 연못’ 눈길
오월어머니집-남종 문인화 작품 의미
소통 의미 ‘탁구대’ 어린이 잇단 발길
4전시실 주변 상영관 보는 재미 쏠쏠
“매회 주제 바뀌며 볼거리 많아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제1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골딘 세네비 작가의 ‘송진 연못’을 감상하고 있다.

‘…//또 별처럼 그렇게 제 모든 가장자리에서/빛을 내지도 못했으리라:너를 바라보지 않는 곳이란/한 군데도 없으니까.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9월 5일~11월 15일) 개막 첫날인 5일 오전 10시께. 입장 시간이 되면서 전시실은 관람객들로 서서히 붐비기 시작했다. 가벼운 여행자의 차림으로 작은 가방이나 카메라를 어깨에 멘 사람, 가깝고 먼 나라에서 온 듯한 외국인들이 하나둘 눈에 띄면서 32년의 연륜이 쌓인 광주비엔날레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주비엔날레 1전시실(분자와 나)에 들어서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가 손님을 맞이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이는 릴케지만 정작 그에게 숙제를 던지는 것은 토르소다.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이 선언은 역설적으로 ‘왜 바꿔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수직적인 질서로부터, 내면의 숭고한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는 일은 단순한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행동과 실천이 필요하고 내적 수행도 병행해야 한다. 변화를 향한 의지가 있다면 지금 이곳이 출발점이 된다.

릴케의 시를 뒤로 하고 도슨트를 따라 발길을 옮기던 관람객의 시선을 끈 작품은 화산암과 골딘 세네비 작가의 ‘송진 연못’이다.

화산암은 변화의 시간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로 꼽힌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압력이 분출된 뒤 오랜 시간 식고 변형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송진 연못’은 2톤에 달하는 송진이 전시실 바닥 위에서 넓게 엎드린 채 호박색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송진은 나무가 벌레 등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보내는 액체이면서 인간에게 바이오 연료 등으로 활용되는 자원이기도 하다. 신체의 방어기제가 되레 보호 대상인 신경계를 공격하는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작가는 치유의 힘과 착취 행위가 만나는 대립 지점에서 결국 유해한 존재가 되고 마는 현실을 보여준다.

1전시실에서 도슨트의 작품 설명을 듣는 동안 관람객 수가 많이 늘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관심을 갖는 작품을 열심히 촬영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문을 읽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어린이와 학부모로 보이는 듯한 단체 관람객이 다른 도슨트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제2전시실(신체와 관계)에서는 탁구를 소재로 한 율리우스 콜러의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이 작가는 물음표를 많이 사용해요. 자신의 작품 활동과 사회 현상에 대해서 모두 의문을 가진 작가입니다. ‘예술과 일상생활의 경계는 필요 없다’는 개념 미술을 하는데 여기 탁구대도 이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쳐보셔도 좋아요.”

도슨트의 설명이 끝나자 관람객 중 일부가 탁구대로 다가갔다. 어린이들도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탁구대 주변으로 모여 라켓을 휘두르며 어설픈 실력을 뽐냈다.
관람객들이 광주비엔날레 제2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월 어머니집’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전시실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작품은 ‘오월 어머니집’이었다. 지난 2022년부터 어머니들이 주홍 작가와 함께 진행한 수업을 통해 완성된 그림은 결혼과 임신, 여행 등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부터 1980년 5월의 아픈 기억까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펼쳐놓아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전시 작품은 오는 10월 13일부터 한차례 변경된다고 한다.
제3전시실에서는 운림산맥의 계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3전시실(풍경과 배움)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작품은 의재 허백련(1891~1977)의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와 진도 운림산방 작품들이다. 운림산방은 진도에 자리한 화실의 이름이자 소치 허련(1809~1892)을 시작으로 200여 년에 걸쳐 이어져온 남종문인화맥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전시실에서는 운림산맥의 계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의재는 해방 이후 예술과 농업, 교육을 실천했던 문인화가였다. 의재는 무등산에서 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차밭을 가꾸어 춘설차를 생산했다. 관람객은 춘설차를 통해 예술과 농업, 교육과 생활을 아울렀던 ‘풍경과 배움’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오는 뜻깊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세계인들이 찾는 2026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전남광주의 정신을 대표하는 ‘의향-5·18’과 ‘예향-남종화’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각별하다.
광주비엔날레 2전시실에서 어린이들이 율리우스 콜러가 선보인 탁구를 즐기고 있다.

제4전시실(우주와 변화)은 영상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행성의 시간과 신화, 인간을 넘어선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 주 무대를 중심으로 크고 넓게 펼쳐진 영상 외에도 전시실 주변 곳곳에 마련된 상영관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남화연 작가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 흔한 이름이었던 ‘순이’를 제목으로 한 작품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전주에서 처형된 천주교 순교자로 알려진 ‘이순이’를 통해 깨지기 쉬우면서도 굳건히 견디는 힘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공기와 발화’를 주제로 한 제5전시실에서 마무리된다. 투명한 공기주머니와 송풍기, 전자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관람객은 몸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감각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시를 관람한 김민결(11·순창초등학교 4학년)군은 “지난 광주비엔날레 전시회도 관람했었는데 매번 주제가 바뀌면서 그만큼 볼거리도 다양해지는 것 같다”면서 “올해는 좀 어두운 면이 많다고 느껴지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즐겼다”고 소감을 말했다.

전시를 해설한 조영 도슨트는 “전남광주는 판소리, 운림산방 등 다양한 문화인프라가 잘 마련된 도시로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면서 “세계 주요 비엔날레로 자리를 잡은 만큼 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서 작품을 감상하고 도시의 매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글·사진=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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