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경쟁’ 고려아연, ‘거수기 감사위원’ 탈피에 성공할까?

곽정수 기자 2026. 9. 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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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1대 주주인 엠비케이(MBK)·영풍 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과 2대 주주로 경영권을 쥔 최윤범 회장 쪽 간의 공방전이 연일 뜨겁다. 컨소시엄은 최 회장 일가가 2019~2023년 아크미디어 등 비상장 엔터테인먼트 기업 3곳에 273억원을 먼저 투자하고, 고려아연이 출자한 원아시아 펀드가 뒤따라 690억원을 투자했다며, 최 회장이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추가 폭로했다.

최 회장 쪽과 컨소시엄은 각각 독립이사 후보 2명과 감사위원 후보 1명을 추천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삿돈으로 자사주 공개매수, 그 직후 대규모 유상증자 추진으로 인한 주가 폭락과 투자자 반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형 상호주 형성, 최 회장의 지인이 대표인 원아시아 펀드에 회삿돈 5600억원 투자, 미국 기업인 이그니오홀딩스 고가인수 의혹 등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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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주총…2차 상법개정 시험대
최윤범 회장 쪽, 회계전문가 추천
MBK·영풍, 지배구조 전문가 내세워
의결권 자문사들, 회계전문성 방점
이사회 감시·견제 기능 미흡 지적도
장기적으로 경영권 독점 힘든 구조
이사회 중심 개혁 성공모델 찾아야

“최윤범 회장 일가가 투자한 비상장 기업들에 원아시아 펀드들이 수백억원을 뒤따라 투자한 사례들이 확인됐다.” (엠비케이·영풍 컨소시엄) “주주의 판단을 왜곡하는 허위정보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쪽)

고려아연 1대 주주인 엠비케이(MBK)·영풍 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과 2대 주주로 경영권을 쥔 최윤범 회장 쪽 간의 공방전이 연일 뜨겁다. 컨소시엄은 최 회장 일가가 2019~2023년 아크미디어 등 비상장 엔터테인먼트 기업 3곳에 273억원을 먼저 투자하고, 고려아연이 출자한 원아시아 펀드가 뒤따라 690억원을 투자했다며, 최 회장이 회삿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추가 폭로했다. 이어 “엔터 기업들의 부실로 원아시아 투자금의 회수가 대부분 불투명하다”, “최 회장 쪽은 이미 투자금의 일부를 상환받았다”며 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맞서 최윤범 회장 쪽은 고려아연이 펀드 출자자로 참여했을 뿐 구체적인 투자 계획과 집행은 펀드 위탁운용사들이 주도한다고 반박한다. 이어 해당 투자는 지금까지 손실로 기록된 적이 없다며, 컨소시엄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9일 열리는 임시주총에서의 표대결을 앞둔 전초전이다. 주총에서는 독립이사(옛 사외이사) 4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을 선임한다. 최 회장 쪽과 컨소시엄은 각각 독립이사 후보 2명과 감사위원 후보 1명을 추천했다. 독립이사는 2명씩 나눠 가질 전망이다. 관심은 감사위원의 향배에 모아진다. 최 회장 쪽이 다수파인 이사회는 백인규 단국대 교수를 추천했다. 컨소시엄은 박유경 전 에이피지(APG)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거버넌스 담당 임원을 추천했다. 에이피지는 세계 3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의 자회사다.

집중투표제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지난해 8월 2차 상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고,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1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가 부여받아, 특정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이다. 분리선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지분이 많은 주주라도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는 ‘3%룰’이 적용된다. 지배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와 감사위원을 뽑자는 취지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케이(K)-자본시장 특별위원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진 사외이사들이 전체 주주를 위해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해야 하는데, 거수기 역할 밖에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임시주총은 2차 개정 상법의 시행에 맞춰 분리선출 감사위원 1명을 추가 선임하는 주총이다. 상법 개정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시험장인 셈이다.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1차 상법 개정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 원칙이 시장에 확고히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3월 주총에서도 일부 상장사가 이사 정원 축소와 임기 연장을 담은 정관 개정을 강행했다.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려는 ‘꼼수’였다. 행동주의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민연금이 개정 상법 취지를 우회하는 정관 개정에 반대했지만, 회사쪽 안건의 90% 이상이 통과됐다”고 분석했다. 고려아연 임시주총 결과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도 있다.

사익편취 및 전횡 이슈 봇물

고려아연은 지난 2년 동안 총수 사익편취와 전횡 등 지배구조 관련해 여러 문제점이 노출됐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삿돈으로 자사주 공개매수, 그 직후 대규모 유상증자 추진으로 인한 주가 폭락과 투자자 반발,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형 상호주 형성, 최 회장의 지인이 대표인 원아시아 펀드에 회삿돈 5600억원 투자, 미국 기업인 이그니오홀딩스 고가인수 의혹 등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일부는 법원 판결이나 감독당국의 제재로 실체가 확인됐다.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영풍의 의결권 제한은 위법이라는 원심을 재확인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원아시아 출자 등과 관련한 손실을 장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와 국세청의 조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고려아연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는 논란이 된 이슈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고, 주주들의 조사 요청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 도마 위에 올랐을 정도다. “(경영진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재산을 마치 자기돈처럼 쓴다면 (다른 이사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그런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 (중략) 고려아연의 행태는 집중투표제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오기형 의원, 2025년 8월23일 국회) 의결권 자문사인 이에스지(ESG)기준원은 임시주총 의안분석 보고서에서 “쟁점들을 독립적으로 검토·견제해야 할 감사위원회는 (중략) 경영상 의사결정에 대해 기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략) 주주의 독립적 조사 요구에 대해서도 관련 법적 판단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2026년도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최윤범 회장 쪽과 엠비케이(MBK)·영풍 컨소시엄은 오는 9월9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호텔에서 열리는 임시주총에서 독립이사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또한번 표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고려아연 제공

백인규 vs 박유경

백인규, 박유경 두 후보는 모두 상법상 감사위원에게 요구하는 회계·재무 전문가 요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이들의 경력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백 후보는 한미 공인회계 자격증을 가진 명실공히 회계전문가이다.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한국 딜로이트그룹의 이사회 의장과 이에스지센터장을 역임했다.

박 후보는 한국 출신의 대표적인 지배구조 전문가이다. 글로벌시장의 기업지배구조와 책임투자 분야에서 활동하며 기업가치 제고와 이사회 독립성 강화에 노력했다. 삼성전자 백혈병과 조선업종 중대재해 문제를 금융권에서 처음 제기하는 등 활발한 주주관여 활동을 통해 한국 기업과 증시의 밸류업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 이에스지위원회와 한국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아시아 각국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에서 10년간 한국 워킹그룹 의장을 맡았다.

2차 상법 개정의 취지, 기존 감사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감사위원의 선임 기준은 회계 전문성보다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고려아연 감사위원회에 보다 필요한 것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대해 독립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의 보강이다.”(이에스지기준원)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은 독립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지배구조 전문가로 독립성과 전문성을 모두 갖춘 박유경 후보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백 후보가 이해상충 문제로 인한 독립성 훼손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 딜로이트그룹이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과 관련해 재무실사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 회장 쪽은 이에 대해 “백 후보가 한국 딜로이트그룹의 회계감리 분야가 아닌 이에스지 부문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해상충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3%룰’ 마법과 전망

임시주총 표대결에서는 최 회장 쪽이 컨소시엄보다 유리하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3%룰’의 마법이 최 회장 쪽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최대주주는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모두 ‘합산’해서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나머지 주주는 ‘개별’로 3% 제한이 적용된다. 최대주주인 영풍의 지분은 의결권이 대폭 줄고, 최 회장 일가들은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 구도는 컨소시엄이 42%대 39% 정도로 앞서 있다. 3%룰이 적용되면, 최 회장 쪽의 지분 의결권이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예상된다.

기관투자자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 5대 의결권 자문사들도 대부분 최 회장 쪽이 추천한 백인규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글로벌 양대 자문사인 아이에스에스(ISS)와 글래스루이스, 국내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한국이에스지(ESG)연구원 등 4곳은 백 후보의 회계전문성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스지기준원만 독립성을 이유로 박 후보에 찬성을 권고했다. 증시에 영향력이 있는 연금 중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이 박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아직 미정이다.

최 회장 쪽은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현 경영진 체제에 힘을 싣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외 기관투자자와 소수주주들이 압도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하고, 미국 크루서블이 공언대로 최소한 중립을 지킨다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5% 이상의 지분 보유한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사회의 세력 분포는 현재 최 회장 쪽 9명, 컨소시엄 쪽 5명이다. 임시주총 뒤에는 최 회장 쪽 11~12명, 컨소시엄 쪽 7~8명으로 재편된다.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는 현 이사회 멤버 14명 중에서 9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집중투표제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이 사행되면, 두 진영 간 차이가 1~2명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상법개정의 첫 발의자인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 대주주 중 누구도 이사회를 독점하기 어렵고, 경영진의 사익 추구와 전횡도 불가능한 구조로 가고 있다”며 “양쪽 모두 경영권을 직접 행사할 생각을 버리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좋은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감시·견제 역할을 충실히 해서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성공모델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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