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물방울이 머무는 곳, '화백 김창열의 집'에서

최영은 기자 2026. 9. 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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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아래에서 30년간 빚어낸 물방울
프랑스 마구간 시절 가난이 선물한 영감
동양 철학과 문자가 빚어낸 조화로운 회귀
평창동 고개 끝자락에 다다르면 주택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물방울 화백 김창열 화백이 지난 1988년부터 30년 넘게 머물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내밀한 공간이다. /최영은 기자

가파른 언덕을 올라 평창동 고개 끝자락에 다다르면 주택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물방울 화백 김창열 화백이 지난 1988년부터 30년 넘게 머물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내밀한 공간이다.

김 화백은 생전 자신의 작업실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를 원했다. 그가 작고한 뒤 종로구가 이 주택을 매입했으며 지난 2016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홍재승·최수연 씨가 공간 개보수(리모델링) 설계를 맡았다. 사적인 공간은 오랜 준비를 거쳐 지난 5월 시민들을 위한 공적인 영역으로 재탄생했다. 물방울이 맺히고 스며들었을 그의 작업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면의 빛 좇는 지하의 수행 공간
지하 1층에 들어서자 북한산의 풍광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물방울 연작 한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최영은 기자

지하 1층에 들어서자 북한산의 풍광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물방울 연작 한 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하지만 화백의 작품 세계는 한 층 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발걸음을 지하 2층으로 옮기면 화가의 생전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 펼쳐진다. 그가 손때 묻혀 가며 쓰던 붓과 물감,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캔버스가 눈길을 끈다. 미술관에 전시된 완성작만으로는 알 수 없는 창작의 고뇌와 흔적이 고스란히 멈춰 있는 듯하다.

창밖으로 북한산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지상층을 두고 그가 왜 하필 가장 깊고 어두운 지하 2층을 작업 공간으로 삼았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는 외부 풍경과 철저히 단절된 채 내면의 빛에만 집중하려 했던 구도자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50년 가까이 똑같은 물방울을 수만 번 그리는 반복 작업은 수행 과정이었다. 치열한 반복을 통해 억눌린 자아를 텅 비워 내는 고된 명상과도 같았던 셈이다. 그 침묵 속에서 수만 개의 물방울이 피어났다.
그가 손때 묻혀 가며 쓰던 붓과 물감,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캔버스가 눈길을 끈다. /최영은 기자

마구간 아침 햇살서 발견한 찰나의 영원

지하 작업실의 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가 처음 물방울을 만났던 지난 1972년 프랑스 파리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파리 외곽 팔레조의 마구간을 개조한 공방을 빌려 쓰던 젊은 화가의 삶은 고단했다. 재료를 새로 살 돈이 없어 기존 그림의 뒷면을 물에 적셔 묵힌 뒤 물감을 떼어 내 재활용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아침, 캔버스 뒷면에 맺혀 아침 햇살을 머금은 물방울을 발견했다. 화백은 당시 "이것이다!"라고 외쳤다. 햇빛에 증발해 버릴 찰나적인 존재를 캔버스 위에 고정함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을 영원의 상태로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캔버스 위에서 멈춘 듯 빛나던 물방울을 모아 그는 골동품 가구점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발견한 프랑스 일간지 콩바의 선임 기자 알랭 보스케 씨가 관련 기사를 썼고 이후 현지 언론의 취재가 잇따르며 순식간에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의 전위 미술 전시회인 살롱 드 메에 초대받아 검은 바탕에 물방울 하나를 그린 대표작 <이벤트 오브 나이트(Event of Night·1972)>를 출품하며 정식 데뷔했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프랑스에서 물방울 회화만을 모은 첫 개인전을 열며 물방울 화가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동양 철학과 만난 물방울 회귀 연작
서재로 발길을 옮겨 보면 책장에 빼곡히 꽂힌 서적들 사이로 책상 위에 놓인 여러 권의 노자 <도덕경>이 눈에 들어온다. /최영은 기자

서재로 발길을 옮겨 보면 책장에 빼곡히 꽂힌 서적들 사이로 책상 위에 놓인 노자의 <도덕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물방울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법에만 머물지 않고 동양 철학과 문자를 만나며 끊임없이 진화했다.

지난 1980년대에 접어들며 그는 캔버스를 벗어나 마대 위에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대면 터질 듯한 물방울의 이미지와 물방울이 결코 맺힐 수 없는 마대라는 실제 물질이 한 화면에서 조화를 이룬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감 속에서 그의 그림은 회화의 본질을 묻는 단계로 올라섰다.

이후 마대 자체를 여백으로 남기던 초기 방식에서 벗어나 한자체·색점·색면 등 동양적 정서를 화면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지난 1990년대 그의 대표 연작인 <회귀(Recurrence)>가 탄생했다. 인쇄체로 또박또박 쓰인 천자문을 배경으로 물방울들이 흩어져 있는 화면은 동양 철학과 서양 미술 매체가 만나 빚어낸 시 한 편을 연상시킨다.

비워내기 위해 맺히는 것들

전시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1층 마당(중정)에 자리한 천창으로 시선이 향한다. 전통 한옥 마당의 우물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천창 유리 위로 투명한 물방울들이 자연스럽게 맺히며 운치를 더한다.
작업실 한 켠 자리한 김창열 화백의 생전 모습 /최영은 기자

그에게 물방울과 우물은 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아픈 영혼들을 달래는 정화의 도구였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6·25전쟁 당시 수많은 동료를 잃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았다. 김 화백은 생전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해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 상태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것"이라며 "분노든 불안이든 공포든 마음속 모든 고통과 어두운 기억을 허(虛)로 돌려보내는 정화의 과정이자 먼저 떠나간 이들을 위로하는 진혼곡"이라고 밝혔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맑은 물방울로 씻어 내며 도달한 평온의 세계가 그의 옛집에 고스란히 흐르고 있다.

특정한 형태가 없는 물방울이 지닌 시적인 환기력은 언어와 국경을 넘어 만국 공통의 위로가 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회귀

1층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지하의 공간을 거쳐 다시 1층 마당으로 돌아오며 끝이 난다. 시작점이 곧 끝점이 되고 끝이 다시 시작과 맞닿는 이 공간의 순환 구조는 김창열 화백의 회귀 연작과 닮아 있다. 본래 한 화가의 동굴이었던 집은 이제 대중을 위로하는 공적인 예술 공간으로 회귀했다.
찰나의 순간 빛나다 사라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온 우주를 담아내는 물방울. 평창동 가파른 고개 끝 김창열 화백의 집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씻어내고 빛내고자 했던 우주가 여전히 맺혀 있다. /최영은 기자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 아래 나뭇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을 본 적이 있는지. 찰나의 순간은 빛나다 사라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온 우주를 담아내는 물방울. 평창동 가파른 고개 끝 김창열 화백의 집에는 지하의 비좁은 동굴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무한한 우주가 여전히 맺혀 있다.

☞살롱 드 메=프랑스 파리에서 매년 개최되던 역사 깊은 현대 미술 전시회로 전 세계의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가들을 초대해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던 권위 있는 행사다.

☞회귀=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며 김창열 화백이 동양의 천자문과 서양의 물방울 회화를 결합해 동양적 정신세계로 돌아가고자 한 대표 작품 연작의 명칭이기도 하다.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ourcye@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