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탐구생활] 동해에 우뚝 선 ‘바다 위 연구소’… 수온·염분부터 어종까지 각종 변화 관측

권기백 기자 2026. 9. 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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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를 가다
AI로 해양생물 판별…드론·무인선 활용
243억원 투입…국내 네 번째 해양과학기지
ARMS 활용해 해양생태계 변화 장기 추적
태양광·담수화 설비 갖춰 연구자 장기 체류
지난달 28일 경북 울진 후포항 동쪽 약 25㎞ 해상에 위치한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 선박이 접안해 현장 방문단이 기지에 오르내리는 모습. 사진=권기백 기자

“빨리 내리세요. 빨리요.”

지난달 28일 경북 울진 앞바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 배가 가까스로 붙자 현장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거센 파도에 배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이면서 기지에 접안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와 기지가 가까워지는 순간에 맞춰 서둘러 몸을 옮겨야 했다.

미처 내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파도에 배가 기지에서 떨어지면서 일부 인원은 결국 왕돌초에 발을 딛지 못한 채 육지로 돌아가야 했다.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해양과학기지에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북 울진 후포항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그렇게 거센 파도를 뚫고 올라선 곳이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다. 총중량 928톤, 해저면에서 꼭대기까지 높이 53m에 달하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다. 최대 초속 60m의 강풍을 견디도록 설계됐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있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는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동해 한복판에서 수온과 염분부터 플랑크톤과 물고기까지 바다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측하는 ‘바다 위 연구소’다.

왕돌초 기지는 이어도·가거초·소청초에 이어 국내 네 번째로 구축된 해양과학기지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 243억원을 들여 건설했다. 동해의 장기 관측자료를 생산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해양환경과 생태계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핵심 임무다.

왕돌초는 후포항 동쪽 약 25㎞ 해상에 자리한 동해 최대 규모의 천연 수중 암반지대다. 동서 약 21㎞, 남북 약 54㎞에 걸쳐 형성돼 있다. 연중 동한난류가 북상하고 계절적으로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인 데다 수중 절벽과 해조류 군락, 협곡 등이 복합적으로 형성돼 있다. 120종이 넘는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해역으로 동해 해양환경과 생태계의 변화를 장기간 관측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에서 수온과 염분 등을 측정하는 CTD 장비가 해수 관측을 위해 설치돼 있다. 사진=권기백 기자

■수심 20m까지 장비 내려보내…바닷속 변화 포착

기지에 올라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관측장비였다. 가운데 자리한 원통형 장비는 ‘CTD’다. 바닷물의 수온과 염분 등을 측정한다.

왕돌초의 수심은 약 23m다. CTD를 수심 약 20m까지 내려보냈다가 다시 끌어올리면서 수심에 따른 수온과 염분 변화를 관측한다.

정진용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은 “장비가 수심 20m 정도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면서 수온, 염분 값을 측정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기지는 높이에 따라 역할이 나뉜다. 해수면에서 8.7m 높이의 인터데크에는 수중 관측장비 설치시설과 해수를 채취하기 위한 장비 등이 자리한다. 여기서부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본격적인 연구·생활 공간이 나온다.

20m 높이의 셀라데크에 도착하자 기지를 바다 한가운데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시설들이 나타났다. 발전기실과 담수화실, 오수처리실, 실험실 등이 한데 모여 있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셀라데크에 마련된 웨트랩(Wet Lab). 기지 아래에서 끌어올린 해수를 이용해 생물·화학적 특성 등을 분석한다. 사진=권기백 기자

■바닷물을 그대로 연구실로…AI가 플랑크톤까지 판별

셀라데크 한쪽에 자리 잡은 실험실에서는 기지 아래 바닷물을 그대로 끌어올려 분석하고 있었다. ‘웨트랩(Wet Lab)’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육상 연구실까지 해수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에서 곧바로 바다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셈이다.

끌어올린 해수는 순환 시스템을 통해 1·2차 챔버를 차례로 거친다. 1차 챔버에서는 수온과 염분, 형광을 비롯한 생지화학적 변수 등을 측정한다. 이후 20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메시로 이물질을 걸러낸 뒤 2차 챔버에 보관한다.

일부 해수는 별도로 채취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샘플을 확보해 생물·화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면 해양 산성화와 영양염 등 다양한 분석에 활용할 수 있다. 외부 연구자들도 기지를 찾아 해수를 채취하고 연구할 수 있다.

눈길을 끈 것은 바닷속 작은 생물까지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장비였다. 기존에는 플랑크톤을 채취해 연구실에서 현미경으로 확인해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플랑크톤 스코프’를 이용해 순환하는 바닷물 속 플랑크톤을 실시간으로 촬영한다. 연구진은 여기에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접목해 촬영된 플랑크톤이 어떤 종인지 판별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정진용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데이터·인프라본부장이 지난달 28일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관측제어실에서 실시간 관측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해수부 공동취재단

■25m 올라가니 기지의 ‘두뇌’수중 물고기도 AI로 분석

다시 계단을 올라 해수면에서 25m 높이의 메인데크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왕돌초 기지의 ‘두뇌’ 역할을 하는 관측제어실이 있다.

모니터에서는 파도 높이와 풍향·풍속 등 기지 주변에서 수집되는 자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CCTV를 통해 각종 관측장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살핀다. 수집된 관측자료는 실시간으로 백업해 KIOST 본원으로 전송한다.

바닷속에도 카메라 2대가 설치돼 있다. 과거에는 연구자가 촬영 영상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영상에 등장하는 물고기의 종류를 판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진이 주목하는 것은 기후변화 등에 따라 달라지는 동해의 어종이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기존에 서식하던 어종과 새롭게 유입되는 어종을 구별하고 새로운 어종이 포착될 경우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시스템까지 구축할 수 있다.

정 본부장은 “요즘 동해 어종들이 변한다고 얘기하는데 새로운 물고기가 포착되면 실시간으로 알림을 주는 방식도 가능하다”며 “아직 이 해역에 대한 물고기 정보가 부족하지만 데이터가 더 많이 쌓이면 기존에 서식하던 어종과 새롭게 유입되는 어종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변화의 징후는 감지되고 있다. 정 본부장은 “예전에는 그렇게 큰 참치들이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큰 참치가 잡히는 경우들이 있다”며 “어민들이 과거에 잘 안 보이던 고기가 보이면 연구원에 보내 어떤 물고기인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메인데크에는 연구자들이 먹고 자며 생활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숙소와 주방·회의실, 화장실 등을 갖춰 최대 4명이 7일간 체류할 수 있다.

바다에서는 계획대로 나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기상 상황이 갑자기 악화하면 배가 기지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다른 기지에서 일주일을 계획하고 들어온 연구자가 기상악화로 약 2주간 머문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기지에는 예상보다 체류 기간이 길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도 구비해 놓는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관측제어실 모니터에 파고 등 해양 관측자료와 기지 내·외부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사진=권기백 기자

■120종 넘게 사는 왕돌초…생태계 변화도 장기 추적

왕돌초 해양과학기지가 단순히 바닷물의 온도와 염분을 측정하는 관측소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에 따라 동해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장기간 추적하는 역할도 맡는다.

대표적인 장비가 ‘ARMS’다. 일종의 인공 구조물을 바닷속에 설치해 생물이 자연스럽게 달라붙도록 한 뒤 주기적으로 샘플링해 생물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분석한다. 어떤 생물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은 물론 생물의 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정량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장치다.

이는 앞서 구축된 다른 해양과학기지에는 없고 왕돌초 기지에 새롭게 도입된 시스템이다.

정 본부장은 “과거에는 해양물리 관측 장비를 중심으로 구성했다면 요즘에는 생지화학이나 산성화 측정 장비 등도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ARMS를 통해 생물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정량적으로 생물상의 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왕돌초의 지리적 특성은 이 같은 연구의 가치를 높인다. 동한난류가 북상하는 길목이면서 계절적으로 한류가 교차하고 거대한 수중 절벽과 해조류 군락, 협곡 등이 복잡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치어의 산란장과 서식처 역할도 해 단순한 어장을 넘어 동해 생태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자연 실험실’인 셈이다.

왕돌초 해양과학기지 인근 해상에서 무인선이 관측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권기백 기자

■사람이 못 가도 관측은 계속…드론·무인선으로 범위 넓힌다

왕돌초 기지의 관측에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많은 장비를 설치해도 고정된 한 지점에서 얻는 데이터라는 점이다. 이날처럼 파도가 거세면 연구자가 기지에 들어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연구진은 이를 무인 이동형 관측장비로 보완하고 있다. 기지 가장 높은 곳인 30m 높이의 루프데크에는 기상타워와 태양광 패널, 위성안테나와 함께 자율운용 드론스테이션이 설치돼 있다.

정 본부장은 “한 지점에서만 관측하기 때문에 공간 관측도 할 필요가 있다”며 “공간 관측에 가장 최적화된 장비가 드론인데 사람이 일일이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움직이는 드론을 적용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드론뿐 아니라 무인선과 자율무인잠수정(AUV), 수중 글라이더 등을 기지와 연계한다. 고정된 기지를 중심으로 해수면 위와 바닷속을 오가는 무인 장비를 투입해 보다 넓은 동해를 입체적으로 관측하겠다는 구상이다.

울진=권기백 기자 baeking@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