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가봉 대통령 前트레이너 김병곤 “돈, 시간 많아도 일 병행안하면 지옥”[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6. 9. 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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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헬스케어운동연구소 대표(54)가 대학 졸업 후 처음 시작한 일은 수영 강사였다.

김 대표는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스타 선수들이 어떻게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잘나가는 선수일수록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가벼운 뇌졸중을 앓았던 봉고온딤바 전 대통령은 한국 체류 중 숙소에서 한두 시간씩 재활 운동 겸 치료를 했는데 마침 그 일을 김 대표가 맡았다.

김 대표는 운동 첫 날 "나와 운동할 때는 의전을 물려달라. 작은 동작에도 주변에서 일일이 도와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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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곤 대표는 2020년 토론토에 입단한 류현진을 옆에서 도왔다. 김병곤 대표 제공
김병곤 헬스케어운동연구소 대표(54)가 대학 졸업 후 처음 시작한 일은 수영 강사였다. 5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입시 체육 학원을 차렸다.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처음 찾은 안정적인 직장은 프로야구 LG 트윈스 트레이너였다. 2001년 LG에 입사해 2011년까지 11년을 일했다.

이후 LG를 나와 선수 전문 스포츠 센터를 차렸다. 무엇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 뭔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지금은 트레이닝 코치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트레이너들은 한때는 ‘마사지사’라는 비아냥 섞인 호칭을 들을 때도 있었다. 선수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사업이 꽤 잘됐다. 그때 ‘괴물 투수’ 류현진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류현진(한화)은 자유계약선수(FA)가 돼 2020시즌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면서 4년 8000만 달러까지 대형 계약을 했다. 이전까지 김 대표와의 인연은 선수 시절 마주친 정도였다. 류현진은 2014년 겨울에는 김 대표가 운영하던 스포츠 센터에서 운동을 함께 한 적이 있긴 했다.

류현진은 토론토에서 함께 하자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한창 한국에서 센터를 운영할 때라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처음 1년만 함께 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야구 선수에게도 그렇지만 야구계에 몸담고있는 트레이너에게도 MLB는 꿈의 무대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WBC 대표팀 트레이너 시절의 김병곤 박사. WBC대표팀의 김지훈, 김병곤, 조대현, 김부원, 유태현 트레이너(왼쪽부터)는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물심양면 돕고 있다. 이들은 선수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해 훈련이 끝난 뒤에도 선수들의 몸 관리를 돕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 | KBO
조건이 하나 있었다. 류현진의 개인 트레이너로서가 아니나 토론토 구단의 직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단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꿈의 무대’에서 한 시즌을 보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스타 선수들이 어떻게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잘나가는 선수일수록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다만 ‘열심히’의 기준이 우리와 다르다. 수백 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스트레칭부터 알아서 한다. 반면 많은 한국 선수들은 ‘스트레칭 좀 도와주세요’라고 한다. 자기만의 루틴이 있느냐 없느냐부터 큰 차이가 난다”라고 했다.

MLB엔 괴물들이 가득했다. 단적으로 한국 선수 중엔 턱걸이 10개를 하는 선수가 별로 없다. 반면 MLB 스타 선수들은 10kg짜리 원반 2, 3개를 발에 매달고 턱걸이를 수십 개씩 했다. 김 대표는 “근력의 차원이 다르다. 160kg 넘는 배트 스피드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신분이 구단 직원이었기에 김 대표는 구단의 모든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MLB에서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어떻게 관리하고, 스크리닝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었다.

헬스케어운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곤 박사. 동아일보 DB
하지만 그가 “진짜 인생을 배웠다”고 말하는 시기는 미국과는 정반대에 위치해있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가봉과의 인연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2022년 알리벤 봉고온딤바 당시 가봉 대통령은 한국-가봉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한했다. 가벼운 뇌졸중을 앓았던 봉고온딤바 전 대통령은 한국 체류 중 숙소에서 한두 시간씩 재활 운동 겸 치료를 했는데 마침 그 일을 김 대표가 맡았다.

봉고온딤바 전 대통령을 뇌졸중 후유증으로 잘 걷지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주변 도움을 받았다. 김 대표는 운동 첫 날 “나와 운동할 때는 의전을 물려달라. 작은 동작에도 주변에서 일일이 도와주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봉고온딤바 전 대통령은 김 대표의 그런 모습을 오히려 좋게 봤다. 그리고 귀국할 때 동행을 요청했다. 김 대표도 고민 끝에 함께 가기로 했다. 그는 “멀쩡히 하던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혈혈단신 가봉에 가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눈빛이 너무 진심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게 너무 느껴졌다. 결국 2주 만에 짐을 싸서 가봉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가봉에서 그의 공식 직함은 ‘가봉 대통령궁 헬스케어 디렉터’였다.

김병곤 박사가 봉고온딤바 전 대통령을 돕고 있다. 김병곤 박사 제공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이지만 서아프리카 기니만에 면한 가봉은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꽤 잘 사는 나라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 가까이 된다. 치안도 꽤 안정되어 있어 밤거리를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더구나 그가 거주하는 곳은 부촌이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가봉에서의 삶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었다. 하루 1시간 정도 대통령과 함께 운동하고 나면 자유시간이었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어디를 가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처음엔 김 대표도 좋았다. 넘치는 시간에 골프와 테니스, 배드민턴을 쳤고 쇼핑도 다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료함의 감옥’에 빠지고 말았다. 김 대표는 “내가 꿈꿔 왔던 삶이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돈과 시간이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었다”며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일과 휴식이 병행되어야 진정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병곤 트레이닝코치(앞·왼쪽)가 2월 미국 플로리다주 더니든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99번)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김병곤 대표 제공
장관급 대우를 받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오만함도 싹텄다고 했다. 대통령은 한 달에 한두 번은 영국이나 프랑스 출장을 다녔는데 그도 항상 동행했다. 출장을 갈 때는 12인승 개인 제트기를 타고 다녔다. 국빈 방문이다 보니 출입국 절차도 거의 거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인원이 넘치는 바람에 그는 개인 제트기 대신 일반 항공편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됐다. 대부분 직장인들에게 해외 출장 때 비즈니스 한 번 타보는 게 꿈 같은 일이지만 너무 좋은 대접을 받았던 그는 비즈니스석조차도 불편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순간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라고 느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너무 무서워졌다”고 했다. 이후 여러 사정이 생기면서 그는 2022년 귀국했다.

1년 3개월간의 가봉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지만 행복한 삶이다. 김 대표는 “예전과 달라진 건 일주일에 하루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예전에는 앞만 보고 달려갔다면 지금은 이제 더 나이가 늘면 어떻게 놀지,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지 등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제대로 놀기 위해선 몸이 건강해야 한다. 그 역시 오래 건강히 인생을 즐기기 위해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을 달리고, 한 번은 근육 운동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골프를 칠 때는 카트를 타지 않고 무조건 걷는다. 자신만의 생활 루틴도 만들었다. 저녁 11시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5시면 일어난다.

김병곤 대표는 유튜브를 통해서도 건강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알리고 있다. 건강 관련 책도 여러 권 썼다. 동아일보 DB
그는 올해 ‘100년 쓰는 몸을 만드는 걷기와 달리기’라는 책을 썼다. 걷기로 시작해 ‘슬로 조깅’, 달리기까지 이어지는 몸을 만드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궁극의 종착지는 달리기다. 김 대표는 “심장, 폐, 혈관, 뇌 등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피의 순환이 원활해야 한다”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하는 적당한 달리기는 평생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내 체력이 허용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힘들게 뛰어야 몸이 좋아진다. 숨이 차지 않으면 기관들이 퇴화된다. 숨이 가볍게 차는 정도로 주 3회 달리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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