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로 조달한 AI 투자, ‘붐과 붕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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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여러 기술혁신은 항상 막대한 규모의 '투자 붐'을 일으켰다.
AI 관련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구조에 전형적으로 등장한 이른바 '순환금융'(전통적 회사채 조달이나 은행대출 방식이 아니라, 상호 지분투자 및 자금대출 지원, 보증 제공 등으로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는 사적인 거래 약정)은 투자 붐을 촉진하는 동시에 AI 수요 침체기에는 손실을 더욱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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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여러 기술혁신은 항상 막대한 규모의 ‘투자 붐’을 일으켰다. 지나친 흥분과 낙관 속에 신기술이 가져다줄 수익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기업 사이에 비이성적으로 과열되고, 이것이 투자 과잉으로 이어져 결국엔 갑작스럽고 파괴적 방식으로 막을 내리곤 했다. 산업혁명기 이후 이런 ‘붐-붕괴’ 형태는 1830년대 미국의 운하 건설 열풍, 1840년대 영국의 증기철도 열기, 1920년대 전기·자동차 열광을 위시한 미국의 ‘포효하는 20년대’, 1990년대 후반 닷컴 붐에 이르기까지 반복됐다.
전세계에서 인공지능(AI) 인프라 관련 총투자액은 2026년 한 해만 7천억달러, 2027년 1천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최근 AI 인프라 글로벌 투자액은 AI 붐 시작(2023년) 이후 불과 3년 만에 붐 바로 직전 시기보다 4배로 증가했다. 운하·철도·닷컴 기술혁신 당시의 투자 붐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라고 한다. 오늘날 AI 생태계는 소수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극도의 경쟁 압력이 지배하면서 반도체칩 제조사(엔비디아·AMD 등)-하이퍼스케일러(구글·아마존·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AI 개발사(오픈에이아이·앤트로픽 등)-네오클라우드(코어위브·네비우스 등)가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기준 세계 32개국에 걸쳐 총 1246개의 AI 기업이 활동 중인데 미국 700여개, 중국 250여개, 한국 15개라고 한다. 그런데 각국 증시의 시가총액에서 AI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40%)과 한국(39%)이 가장 높다. 다른 국가는 이 비중이 15% 미만이다. 2024년 AI 기업의 자본지출액이 전체 기업 투자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26%)이 미국(23%)보다 높다.
AI 산업은 전형적 승자독식 게임이어서 덩치와 규모를 키우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AI 붐은 이 생태계를 스스로 약화하는 취약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투자 설비 용량이 커질수록 붐을 지속하기 위해 넘어야 할 생산성(수익성)의 최소 기준도 높아지고 수익에서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실물경제가 흔히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생적 요인에서 충격받는 사례와 달리, AI 붐 자체에 의해 내생적으로 취약성이 발생하는 셈이다. 투자 과열은 경제적으로 외부효과도 초래해, 저마다 과잉투자에 나서면서 나의 과잉투자가 다른 경쟁기업의 수익성을 하락시키게 된다.
요즘 AI 붐은 실물경제 과열과 금융적 과열이 밀접하게 얽혀 돌아가는 양상이다. AI 관련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구조에 전형적으로 등장한 이른바 ‘순환금융’(전통적 회사채 조달이나 은행대출 방식이 아니라, 상호 지분투자 및 자금대출 지원, 보증 제공 등으로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는 사적인 거래 약정)은 투자 붐을 촉진하는 동시에 AI 수요 침체기에는 손실을 더욱 키우게 된다.
부채로 조달된 AI 투자 자산은 대부분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같은 반도체칩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등 특정 용도에 특화된 터라 동시다발적 자산 축소가 일어나면 이런 자산을 헐값에 방출하는 시장으로 일제히 내몰린다. 합리적 기업이라면 이처럼 자산 급매에 빠지는 상황까지 고려해 차입 수준을 결정하려 애쓰겠지만, AI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동기가 앞서면서 여전히 과잉투자를 감행하도록 이끌게 된다.
붐을 키우는 바로 그 경쟁 압력이 순환금융 방식을 선택하도록 강제하고, 순환금융은 위험을 분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가중한다. 장래에 흥분이 식어가고 AI 낙관론이 반전돼 AI 수요가 갑자기 조정되고 거시경제 전반에 광범한 파장이 일어나면, 우리는 경쟁이 불러온 경제적 취약성을 새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겨레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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