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처방받은 아들···아버지는 왜 병원 400곳에 전화했나[끊는 사람들②]

유경선 기자 2026. 9. 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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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는 사람들’ 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과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약물 중독 문제 취재를 시작한 이후 여러 중독 당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길게는 3년 가까이 지켜보는 중입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중독을 끊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들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열악한 교정 시스템의 문제, 중독의 사회적 요인, 여성 중독자들의 막막한 현실을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이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①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오늘도 엄마 여진(가명)은 사라진 외동딸 미나(22·가명)를 기다린다. 약을 하러 나간 미나는 며칠씩 집을 비운다. 여진이 정성으로 기른 예쁘고, 재능 많은 딸이다. 미나는 고3의 어느 날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탔다. 이후 엄마와 딸의 세상이 뒤집혔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자꾸 딸을 잃어버린다. 약은 손쓸 새 없이 미나에게 달라붙었고, 미나는 약을 얻으려고 뭐라도 할 수 있게 됐다. 여진의 마음을 찢어 놓는 모습으로 발견되기를 몇 차례, 미나는 부모의 신고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 [끊는 사람들①]그날 이후, 엄마는 자꾸 딸을 잃어버린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9010600071

아들 영재(25·가명)를 둔 아버지는 하루에만 병원 30곳째에 전화 중이다. 아들이 들렀을 법한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뒤져내 전화를 건다. 먼저 ‘서울 △△역 주변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해서 연락처를 추려낸다. 통화는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김영재 아버지 김○○입니다. 혹시 김영재가 귀 병원에 내원한 적 있습니까? 주민번호는…”

영재의 아버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대화가 이어진다. 영재가 병원에 갔던 것이 맞는다면, 다음 질문은 이렇다.

“영재가 무슨 약을 처방받았습니까?”

영재는 성인이기에 원칙상 부모라고 하더라도 처방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 많은 병원이 이 이유를 들어 답을 거부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알아야 한다.

“아들이 약물 중독이 심해 응급실에 있습니다. 무슨 약을 먹었는지 알아야 위세척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단계에서는 대부분 정보를 얻는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이렇게 전화한 곳이 “400곳은 족히 넘는다”고 했다.

병원에 전화를 돌리는 아버지. AI 생성 이미지

영재는 심각한 처방약 오남용 문제를 겪고 있다. 처방으로 탈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들에 깊이 중독돼 있다. 늦둥이로 얻은, 공부 잘 하던 외동아들이 구속 신세가 됐다. 10대 후반 해외 유학 생활 중 본격적으로 약을 접했다고 한다.

영재가 한 약들은 벤조디아제핀(알프라졸람·디아제팜·로라제팜 등) 계열이다. 불안을 낮추고 진정에 도움이 되지만 의존이나 남용 가능성이 있는 처방약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먹던 약들을 찾으러 병원들을 돌았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외에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장애 진단도 있던 터였다. 약을 타기는 쉬웠다. 집 근처 병원에서 시작된 영재의 처방 여정은 서울 전역을 넘어 경기도에 있는 병원까지 이어졌다. 대구에서 비대면 처방으로 받은 약도 있다. 약을 산다고 아끼던 물건들도 전부 팔아치웠다.

아버지는 정신건강의학과에만 전화하면 될 줄 알았다. 후에 알았지만 영재는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내과까지 돌아다녔다. 심지어 산부인과에서도 약을 탔다.

영재가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정보를 알아냈다면 다음 할 일은 호소 혹은 경고다.

“아들이 약물 의존이 심합니다. 앞으로 또 약을 타러 갈 텐데, 처방하지 말아 주십시오.”

통하는 곳도, 안 통하는 곳도 있다. 영재는 성인이다. 영재가 불안이나 불면 증상을 호소하면 의사들은 대개 처방전을 건넨다. 아버지가 전화했다는 사실은 참고사항 정도다. 중복처방을 하는 병원도 있다. 약 처방일수가 다 지나지 않았는데 같은 약 처방전을 또 써주는 것이다. 이런 병원에 전화할 때는 아버지의 어조가 높아진다.

“환자 처방 내역을 안 봅니까? 14일치 약 받고 이틀 만에 같은 약을 또 타러 온 건데 그걸 내줘요? 똑같은 계열 약을 하루걸러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도 약사도 환자가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받은 이력을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확인이 의무는 아니다. 그러니 대부분 건너뛴다. “약을 잃어버렸다”는 영재의 말에 속은 것인지 속기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었든 14일치 약 처방이 나가고 나서 3일 만에 또 14일치 처방이 이뤄지고, 그로부터 불과 며칠 만에 다시 14일치 처방전이 발행되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벌어졌다. 아버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확보한 3년치의 처방 자료에 이런 기록들이 모두 담겨 있다. “약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중복처방을 여기저기서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손가락으로 기록을 짚어 내려가던 아버지가 말한다.

영재의 아버지가 가진 처방 데이터 재구성. AI 생성 이미지

병원을 으르기도, 달래기도 한다. 요주의 병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알리고,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다. 신고당한 병원이 보건소 행정지도를 받기도 했다. 어떤 병원은 사과하지만, 문제가 없으니 “법대로 하시라”는 곳도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정신건강의학과는 영재가 입원을 했다는 말에도 끝까지 약 처방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계속되는 아버지의 전화를 차단했다. 원장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다. 병원과 영재 사이에 오간 채팅 메시지가 남아 있다. 병원이 기존 처방과 중복된다는 것을 인식한 흔적이 보인다.

영재: 똑같은 약 1일치 가능한가요? 자나팜 1㎎ 하루 4번, 로라제팜 PRN(필요 시 복용).
병원: 네, 5일치 가능합니다. 저번과 같은 약.
영재: 루나팜 2㎎ 더요.
병원: 중복처방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중복처방이 유독 심한 병원이 눈에 띄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퍼포먼스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서울 구로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에 도착해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에게 귀띔한다. “어차피 당장 해주실 수 있는 법적 조치가 없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들 약 문제가 심각한데 계속 처방전을 써주는 병원이에요. 경고가 필요합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동일지를 마무리한 경찰이 철수하고, 아버지도 자리를 뜬다.

어떤 병원에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원장에게 거세게 따졌다. “당신 자식같으면 눈깔이 풀려 있는데 약 달란다고 주겠습니까.” 고개를 숙인 의사도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드님이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재에게 “내가 약을 안 줘도 네가 다른 곳에서 받겠지만, 나는 너의 중독에 일조하지 않겠다”고 말한 의사도 있었다. “진료비를 안 받겠으니 나가라”는 의사, “네 아버지를 봐서라도 못 주겠다”고 말한 의사도 있었다고 영재가 전했다. 아버지는 “이런 곳이 20곳 중 1곳 정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의 수고에 효과가 있던 셈이지만 어쨌든 약을 못 받는 경우보다 탈 수 있는 때가 더 많았다. 영재는 별 어려움 없이 받아낸 약 한 달치를 한꺼번에 먹거나, 약과 술을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곤 했다. ‘대체 무슨 약이길래.’ 여진이 그랬던 것처럼(①편 참조) 아버지도 영재의 약을 먹어본 적이 있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고 멍했다”고 한다.

영재는 주로 심야에 약을 털어먹고 외출했다. 성인인 영재를 24시간 붙어 감시할 수도, 감금할 수도 없었다. 나가겠다는 걸 막느라 아들과 부모가 몸싸움하는 게 일상이 됐다. 매번 막을 수도 없다. 말리다가 경찰을 부른 적도 여러 번이다. 입원엔 한계가 있다. 애초에 중독 치료 병상이 턱없이 부족하다.

길거리에, 지하철에, 뒷골목에 영재가 쓰러져 있다는 경찰 전화가 새벽마다 걸려왔다. 어느 날에는 영재가 폭행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굴을 크게 다쳐 10시간 넘는 대수술을 몇 차례나 받아야 했다. “이 전화가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차라리 죽었으니까 시신을 확인하라는 전화였으면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덤덤하게 말한다.

병원과의 전투는 3년이 넘게 이어졌다. 누가 들을세라 회사 빈 사무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병원 리스트를 지워나가기도 했다. 시간, 돈, 에너지 모두 엄청나게 들었다. 아버지는 “집 한 채를 날려먹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재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10번 나갈 처방이 8~9번으로 줄어드는 효과는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아들이 아니더라도요. 그렇게 생각하면 족해요.” (③편에서 계속)

지난달 20일 마약·향정신성의약품 조제 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확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약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확인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개정법은 2027년 8월20일부터 시행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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