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용률 0%’ 굴욕을 딛고 일어선 아식스의 전성시대 [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6. 9.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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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러닝 붐을 타고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77년 역사의 브랜드가 있죠. 바로 일본 아식스(ASICS). 올해도 아식스는 또다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질주하고 있는데요.

올해 초 니혼게이자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유럽·일본의 프리미엄 러닝화(90유로 또는 90달러 이상) 시장 점유율에서 아식스는 사상 처음 1위(17.4%)에 올랐어요.

아식스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2.5%. 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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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러닝 붐을 타고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77년 역사의 브랜드가 있죠. 바로 일본 아식스(ASICS). 올해도 아식스는 또다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질주하고 있는데요.

불과 5년 전 일본 내에서도 외면받았던 아식스는 어떻게 압도적 수익성을 자랑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장 중심의 애자일 개발과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 그 비결이었습니다. 아식스의 놀라운 역전극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식스가 눈부신 질주를 벌이고 있다. 아식스 제공
*이 기사는 9월 4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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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0%에서 부활하다

참가 선수 210명 중 착용자 0명. 2021년 1월, 일본을 대표하는 릴레이 경주대회 ‘하코네 에키덴’이 아식스에 굴욕을 안겼습니다. 전국적으로 이틀간 실시간 생중계되는 대회를 통해 참담한 성적표가 공개되어 버린 거죠. 2017년까지만 해도 이 대회 착용률 1위(31.9%)였던 아식스였기에, 0%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그랬던 아식스가 지금은? 올해 1월 하코네 에키덴에서 아식스 러닝화를 선택한 비율은 28.5%. 5년 연속 점유율이 상승하며, 아디다스(35.7%)에 이어 2위를 기록했어요(나이키는 16.2%로 3위). 아식스의 부활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죠.

21개 대학팀이 출전해 매해 1월 2~3일 벌이는 하코네 에키덴은 생중계 시청률이 30%에 달하는 인기 릴레이 경주대회이다. 매해 경기가 끝나면 참가한 선수들이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브랜드별 순위가 공개되곤 한다. 아식스 제공
비록 하코네 에키덴에선 아직 2위에 머물지만, 더 큰 시장을 놓고 보면 아식스는 이미 세계 최강입니다. 올해 초 니혼게이자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유럽·일본의 프리미엄 러닝화(90유로 또는 90달러 이상) 시장 점유율에서 아식스는 사상 처음 1위(17.4%)에 올랐어요.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제친 거죠. 올해 3월 도쿄 마라톤에서 모든 러너(일반 시민 포함)에게 가장 많이 선택받은 브랜드 역시 아식스였고요. 4월 열린 보스턴 마라톤의 남자부 우승자 존 코리르도 아식스의 메타스피드 스카이 시제품을 신고 달렸습니다.

아식스 실적은 눈부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지난달 발표한 올해 상반기 매출은 5344억엔. 전년 동기보다 32.7% 급증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요. 영업이익률은 무려 22.5%. 나이키(7.8%)나 아디다스(9.6%)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을 정도로 돈을 잘 벌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올해 연간 매출액이 사상 처음 1조 엔을 돌파해 1조500억 엔이 될 거라고 전망치를 높여 잡았죠.

그럼, 아식스는 어떻게 이런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을까요. 그 이야기는 충격적인 ‘하코네 에키덴 착용률 0%’ 사태가 벌어지기 약 13개월 전인 2019년 11월 시작됩니다.
아식스의 주당순이익(EPS) 추이. 2018년과 2020년 아식스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후 실적이 바닥을 치고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식스 제공

“정상을 공략하라”

2019년 11월 말, 미국 보스턴. 투자자 미팅을 마친 히로타 야스히토(廣田康人) 아식스 당시 사장(현 회장)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식스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 어렵게 만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돌아온 건 혹평뿐이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 시절 아식스는 실적(2018년 연간 적자)과 주가(현재의 10분의 1인 424엔 수준) 모두 바닥이었어요. 특히 퍼포먼스 러닝화 시장에서의 단단했던 입지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2017년 나이키가 출시한 ‘베이퍼플라이’는 장거리 육상계를 뒤흔드는 혁명이었죠.. 카본 플레이트를 넣은 두꺼운 밑창의 러닝화를 신은 선수들이 잇달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1초가 아쉬운 정상급 선수들이 속속 나이키로 갈아탔는데요.

아식스의 히로타 야스히토 회장 겸 CEO(왼쪽)와 토미나가 미츠유키 사장 겸 COO. 미쓰비시상사 출신의 히로타 회장은 2018년 아식스 역사상 첫 외부 출신 사장으로 영입됐다. 2024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아식스 제공
그런데도 얇은 밑창으로 수십 년 동안 장거리 러닝화 시장을 지배해왔던 아식스의 중간관리자들은 이를 애써 무시했어요. ‘두꺼운 밑창은 일시적인 유행이다’, ‘부상 위험이 커서 신을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죠. 선수들은 “경쟁할 만한 신발이 없다”면서 아식스를 떠나갔어요.

과거 성공경험에 집착하는 조직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외부(미쓰비시 상사) 출신인 히로타 사장은 이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죠. 이튿날 아침 그는 바로 지시를 내렸어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신발을 만들 팀을 구성하라. 젊은 인재를 모아라.”

2019년 12월, 연구·개발·디자인·생산·마케팅·법무 부서의 젊은 직원 12명으로 구성된 사장 직속 프로젝트팀이 결성됩니다. 이름은 ‘C 프로젝트’. 아식스 창업자인 고 오니츠카 키하치로가 강조했던 “정상(Chojo)부터 공략하라”라는 말에서 따왔죠. 세계 최정상급 선수를 위한 러닝화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목표였어요.

아식스에서 신제품 개발에 걸리는 기간은 보통 2년 반~3년. 하지만 히로타 사장은 “1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릴 신발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려면 기존 방식대로 고베 연구소의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며 완벽을 기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C 프로젝트 개발진은 시제품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선수가 시제품을 신고 달리게 한 뒤 피드백을 수집해 연구소로 보내고, 다시 개선된 신발을 테스트하길 반복했죠. 폼 소재의 두께, 카본 플레이트의 모양과 각도, 밑창의 곡선 등 모든 것이 피드백에 따라 튜닝됐습니다. 보통 한 가지 사이즈의 시제품만 제작하는 다른 제품과 달리, 100명 넘는 선수를 위한 시제품이 1인당 2~4가지 패턴으로 제작됐죠.

그리고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C 프로젝트는 신제품을 두 가지 타입으로 개발합니다. 보폭을 넓혀서 달리는 러너(스트라이드형)와 발걸음을 빠르게 하는 러너(케이던스형)의 요구사항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죠. 물론 이렇게 하면 개발 비용도 2배, 재고 리스크도 2배로 커지는데요. 오직 ‘가장 빨리 달릴 신발’을 만드는 게 목표인 팀이었기에 위험을 감수한 거죠.

2021년 첫 출시 당시 아식스 메타스피드 광고. 메타스피드는 주법에 따라 ‘스카이(스트라이드)’와 ‘엣지(케이던스)’, 두가지 타입으로 나눠 출시됐다. 현재는 경량성을 높인 ‘레이(포어풋)’ 타입이 추가됐다. 아식스 제공
약속한 기한을 조금 넘긴 2021년 3월, 아식스 C 프로젝트의 야심작 ‘메타스피드(METASPEED)’가 출시됩니다. 마침 때맞춰 코로나로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이 열렸고요. 올림픽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 이 메타스피드 시리즈를 신은 선수들이 남녀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죠. ‘아식스를 신으면 이길 수 있다’라는 평판이 드디어 다시 생겨납니다.

초기 1년 동안 메타스피드를 신은 전 세계 아식스 계약선수들이 세운 개인 최고기록 경신 횟수는 무려 195회. 유례없는 신기록 폭발에 아식스와 계약을 맺는 선수들이 늘었고, 이들을 따라 일반인들까지 아식스를 선택하기 시작했죠. ‘러닝화 명가’ 아식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배트도 수영복도 버렸다

“아식스의 제품 제조 능력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판매 방식, 타깃 설정, 수익 관리, 그리고 경영 운영방식이 서툴렀죠.”(히로타 회장 겸 CEO의 IT미디어 인터뷰)

일본 소비자에게 아식스는 수십 년 동안 ‘하쿠세이’, 즉 학교에서 지정한 하얀색 운동화의 대명사 격인 브랜드였습니다. ‘저렴하고 튼튼하지만 막 신는 멋없는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요.

아식스는 2024년 이 학교용품 사업 중단을 발표했어요. 아울러 글러브, 배트 같은 야구용품 제조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죠. 수영복 사업은 일찌감치 2020년에 포기했고요. 세계 1위가 될 가능성이 없고, 이익이 나지 않는 분야에서는 과감하게 철수한 겁니다. 러닝화나 테니스화 같은 세계 1위가 될 만한 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아식스는 2022년까지 오타니 쇼헤이 선수에게 야구용품을 제공해왔지만, 이후 계약이 종료됐고 스폰서가 뉴발란스로 바뀌었다. 2024년 야구용품 제조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2025년 완전히 제조를 중단했다. 아식스 제공
바로 이 점에서 아식스의 행보는 일본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와 비교되기도 해요. 미즈노는 지금도 거의 모든 스포츠 카테고리를 안고 가는 ‘종합 스포츠 메이커’이거든요. 고시엔(일본 전국 고교야구) 야구용품부터 학교 체육복까지, 안정적인 내수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요. 그 결과, 경쟁 관계였던 두 회사는 매출액 면에서 이제 3배 이상으로 차이가 벌어졌어요(2025년 아식스 8109억엔, 미즈노 2590억엔). 해외 매출 비중 역시 82%(아식스)와 39%(미즈노)로 차이가 큽니다. 전략의 차이가 만들어낸 격차이죠.

스포츠, 프리미엄이 되다

아식스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2.5%. 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는데요. 이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사업 부문,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이죠. 아식스 전체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오니츠카 타이거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 급증했고요(환율 영향 제외 시 29.4%). 영업이익률은 무려 39.7%에 달합니다. 글로벌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에 필적하는 수준의 압도적인 수익성이죠.

오니츠카 타이거는 2002년 아식스가 옛 사명을 따서 론칭한 서브 브랜드입니다. 그 시절에도 패션계엔 레트로 열풍이 불었는데요. 오니츠카 타이거는 이런 트렌드에 맞춰 1966년 멕시코올림픽을 앞두고 제작됐던 클래식 모델 ‘멕시코 66’을 되살렸고요. 이듬해인 2003년 영화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노란색 멕시코 66을 신고 나오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죠.

2003년 개봉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 ‘킬빌(Kill Bill)’에선 우마 서먼이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의 오니츠카 타이거 ‘멕시코 66’을 신고 등장한다. 미라맥스 제공
이제 오니츠카 타이거는 ‘스포츠 과학’이 정체성인 아식스와는 달리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추구합니다. 유통 전략도 완전히 달라요. 편집숍이나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대부분 제품이 직영 매장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되고요. 세일이 없는 정가 판매 정책을 철저히 고수하죠. 의류·가방·향수로 제품군도 확장 중입니다. 오니츠카 타이거의 매장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처럼 명품 브랜드가 늘어선 세계 최고 번화가에서 찾아볼 수 있죠.

이러한 프리미엄 전략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모두 통했습니다. 명품처럼 엄청 비싸진 않으면서 손에 닿을 만한 적당한 고급스러움이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았죠. 최근엔 일본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의 필수 쇼핑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 내 외국인 매출까지 폭증세를 보입니다(2025년 상반기 216억 엔→2026년 상반기 308억 엔). 엔저의 최대 수혜 브랜드라 할 수 있는데요.

아식스는 2027년 1월 오니츠카 타이거를 분사시킬 계획입니다. 아식스의 100% 자회사인 OT그룹이 별도로 경영하게 되죠. “경기용 신발과는 의사결정 속도와 판매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별도 회사를 설립해 브랜드를 더욱 세련되게 다듬는 것”이라고 히로타 회장은 설명하는데요. 내년 2월엔 LA에 새 플래그십 매장을 열고 미국에 재진출할 계획이라,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입니다.

아식스 창업자인 고 오니츠카 키하치로는 사업 초기 농구화 개발 스토리로 유명하다. 1951년 그는 농구화 개발을 위해 매일 고베고등학교 농구팀 연습장에 찾아가 선수들을 관찰했다. 어떻게 하면 바닥의 미끄러짐을 해결할지를 몇 달 동안 고민하던 중, 집에서 문어초무침을 먹다가 문어 빨판에서 영감을 얻는다. 고베고등학교 팀은 그가 개발한 농구화를 신고 그해 전국 고교 체육대회에서 우승했다. 아식스 제공
아식스 창업자인 고 오니츠카 키하치로(1918~2007년)는 자서전 ‘실패의 이력서’에서 자신의 삶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했죠. 생전에 그는 매년 아식스 신입사원들에게 스포츠맨십 5개 조항을 읽어줬다는데요. 이 자서전에서 그는 이러한 조항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제6조: 스포츠맨은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 실패해도 성공할 때까지 하면 된다.’ 왠지 지금의 아식스 스토리와 잘 들어맞는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4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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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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