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이달균의 경남 영화 촬영지 돋보기] (28) 시대를 기록한 허성용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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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은 결국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다. 풍경은 남지만, 영화는 그 풍경 속에 잠든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그는 이 영화제를 어떤 모습으로 꾸려가고자 하나? 허 위원장은 합천영상테마파크를 기반으로 합천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스크린 위에 새겨 가는 지역 공동체형 영화제를 추구한다.
처음 영화제가 출범할 때 품었던 초심을 잃지 않고 독립영화 창작자를 꾸준히 발굴하며, 합천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영화적 상상력의 자산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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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건설 과정 담은 ‘오래된 희망- 밀양, 3년의 기록’
삶의 터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 목소리·몸짓까지 생생
쌀 시장 개방 농민 시위 현장 해학적으로 풀어낸 ‘부자유친’
한국의 시대상·젊은이 꿈·평생 농사 이야기 절묘하게 버무려
경남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은 결국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다. 풍경은 남지만, 영화는 그 풍경 속에 잠든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이 여정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수확은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경남의 젊은 영화인들이다. 이번에는 ‘수려한합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공공미디어단잠’ 대표인 허성용 감독의 작품을 따라가 본다.

◇허성용 감독이 남긴 ‘오래된 희망-밀양, 3년의 기록’

젊은 감독이 보여준 현실 참여의 태도는 오늘날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사건을 기록하는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기록 자체를 하나의 실천으로 확장했다. 그런 현장성을 인정받아 서울인권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돼 상영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허성용 감독의 태도는 매우 중요해진다. 그는 인물들의 고통을 소비하지 않고, 스스로 한 발 물러난 자리에서 침묵의 이야기들을 발언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송전탑에 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기억에 관한 영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은 거대한 철탑의 이미지가 아니다. 끝내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목쉰 음성, 그리고 그 몸짓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록하려 했던 젊은 감독의 시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자유친(父子有親)’-쌀 시장 개방으로 인한 농민 시위
그가 독특한 시각으로 연출한 또 하나의 독립영화 ‘부자유친’에 주목해 본다. 이 작품은 2010년에 제작되었으며, 네이버 독립영화관에서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장기 상영되었다. 이 작품 역시 시대성이 강조되기는 했으나, 앞서 살펴본 작품보다 한결 유쾌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첫 장면은 분노한 농민과 전경들의 밀고 밀리는 대치가 한창이다. 그 과정에서 밀려 넘어진 사람, 끌어당기고 밀리는 사람. 우리가 뉴스에서 익히 본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갑자기 다큐는 코믹한 극영화로 전환된다. 시위는 응원 같은 분위기를 띠면서 대치를 떠나 두 집단의 합일에 이른다. 농민과 전경이 이데올로기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 간의 정리로 의기 투합되는 모습이 재미있다. 실상 농민들은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 분노가 전경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감독은 시위 현장에서 농민이 전경에게 떡을 건네고, 그 전경이 자신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설정을 통해 대립보다 가족과 공동체의 온기를 보여준다. 시위 진압에 투입된 전경 아들과 농민 아버지의 의도된 만남을 설정함으로써, 첨예한 사회적 갈등의 현장을 한 가족의 낯익은 삶으로 끌어들인다. 다큐멘터리적 현실 위에 극영화적 장치를 더한 이 장면은 이 작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런 예기치 못한 반전을 통해 고통의 현장이 우리 낯익은 삶의 현장으로 치환된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에필로그에서 농민 아버지와 전경 아들의 대화는 서정적으로 무르익는다.
“아부지, 이제 쌀농사 대신 돈 되는 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쌀농사 짓는 사람은 그럴 수 없는 거여. 자식 농사허고 쌀농사는 10년 20년을 보고 짓는 거여. 진짜 부자는 말여, 자연을 잘 섬겨서 잘 받아먹는 이가 부자여.”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위 두 작품을 관통하는 감독의 시선은 갈등의 현장에서도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는 데 있다. 밀양 송전탑 다큐멘터리인 ‘오래된 희망’과 ‘부자유친’은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지만, 모두 국가 정책과 사회 구조가 개인의 삶과 충돌하는 지점을 응시한다. 그러나 그 충돌을 단순한 찬반의 구도나 선악의 대립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래된 희망’에서 감독의 시선은 어느 한쪽의 논리를 선택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향한다. ‘부자유친’ 역시 같은 문제의식 위에 놓여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이자 가족이다.
이처럼 감독의 관심은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갈등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에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거대한 구조를 바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현실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핵심이다. 두 작품은 결국 ‘사건’을 기록한 영화가 아니라 ‘사람’을 기록한 영화다. 허성용 감독이 끝내 붙든 것은 갈등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보다 사람의 얼굴이었다.
◇‘수려한합천영화제’는 어떤 영화제인가?
허성용 감독은 ‘수려한합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 영화제를 어떤 모습으로 꾸려가고자 하나? 허 위원장은 합천영상테마파크를 기반으로 합천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스크린 위에 새겨 가는 지역 공동체형 영화제를 추구한다. 그리고 지역 주민이 함께 호흡하는 영화 축제로 성장시켜 가고 싶어 한다.
단순한 상영 행사에 머물지 않고, 창작자들이 합천에 머물며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필름 챌린지’를 통해 지역과 영화가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모델을 모색한다. 비록 인프라와 예산은 넉넉하지 않지만, 젊은 영화인들의 도전 정신과 합천군, 지역민들의 참여 의지는 그 어떤 자산보다 든든하다.
처음 영화제가 출범할 때 품었던 초심을 잃지 않고 독립영화 창작자를 꾸준히 발굴하며, 합천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영화적 상상력의 자산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다시 말해 지역의 풍경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다시 지역을 기억하게 하리란 믿음을 굳건히 갖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수려한합천영화제’가 그런 영화제로 오래 남기를 기대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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