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완주율→유지율…소수점 한 자리로 콘텐츠 희비 가르는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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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은 말 그대로 해당 시간에 텔레비전(TV)을 보는 가구 또는 사람의 비율이다.
시청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시청률이 수천 가구를 뽑아 전체를 추정한 숫자였다면 이 숫자들은 표본이 아니라 전수다.
분명한 건 시청률이 TV 산업의 프라임타임과 클리프행어를 만들어냈듯, 완주율과 유지율도 새로운 콘텐츠 양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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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은 말 그대로 해당 시간에 텔레비전(TV)을 보는 가구 또는 사람의 비율이다. 물론 전 국민을 다 조사하는 건 아니고, 패널이라 부르는 표본집단만을 상대로 조사한다. TV 프로그램 관련 뉴스를 보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이 숫자. 70여 년 전 이 숫자의 발명으로 TV 산업을 포함해 현대 대중문화의 여러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청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대중’이라 부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과연 지금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지금의 검색엔진 실시간 검색어나 소셜미디어 트렌드가 나타나기 몇십 년 전부터 시청률은 그 역할을 했다. 영화의 박스오피스나 앨범 판매량 같은 숫자도 있지만, 시청률은 사회 전반을 아우를 수 있다는 면에서 그것들과는 다르다. 과거의 시청률 기록과 그 변화만 보면 당시 대중이 무엇을 좋아했고 싫어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높았던 시청률은?
한국은 방송 3사를 합치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멕시코전의 79.2%가 가장 높다. 관심도만 따지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더 높지 않을까 싶지만, 2002년에는 TV 시청보다는 거리 응원이 주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드라마로는 1996년 시작한 주말극 ‘첫사랑’의 마지막 회가 65.8%로 가장 높았고, 순간 시청률까지 고려하면 1995년 ‘모래시계’가 75.4%로 1위다.
이렇듯 시청률이 높다는 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는 의미와 직결된다. 지금이야 디지털 데이터가 많아 의미가 퇴색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청률 데이터는 사회문화와 대중을 분석하는 가장 좋은 통계 지표로 활용됐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닌, 단지 수천 가구를 상대로 한 조사가 어쩌다 대중의 관심을 재는 잣대가 됐을까. 현대 콘텐츠산업을 바꾼 결정적 장면을 꼽는다면 아마 이 숫자가 태어난 순간도 분명 그 안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청률의 탄생은 TV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시작됐다. 1930년대 미국의 한 대학 연구실에서 나온 장치의 특허를 시장조사 회사가 사들였다. ‘오디미터’라 불린 이 기계는 수신기가 켜져 있는지, 어느 채널에 맞춰져 있는지를 자동으로 기록했다. 오디미터는 1940년대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 투입됐고, 1950년 TV로 옮겨왔다.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대라는 뜻의 ‘프라임타임’도 당시 이 측정에서 유래된 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시청률은 광고와 직결되는 숫자다. 시청률이 광고주를 위한 프로그램의 성적표가 되자, 방송사는 시청률에 목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좋은 성적표를 받기 위한 방송사의 기상천외한 꼼수가 등장했다.
이러한 미국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만든 가장 유명한 장면은, 1980년 미국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댈러스’에서 나왔다. 주인공이 총에 맞는 장면으로 시즌을 끝내고 무려 여덟 달을 기다리게 한 것이다. 그사이 도박사들은 범인 후보마다 배당률을 매겼다. 답이 밝혀진 회차는 8300만 명이 시청했고 가구 점유율은 76%였다.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를 끊어 다음회를 보게 하는 이른바 ‘클리프행어’를 시청률 조사 일정에 맞춰 배치하는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이 방식은 미국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중요한 콘텐츠 양식 중 하나가 됐다.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사
이후 1980년대 후반 등장한 피플미터, 즉 가구 구성원 가운데 누가 보는지까지 기록하는 측정기는 지금까지 시청률의 근간을 바꿔놓았다. 일단 질문부터 바뀌었다. 이전의 ‘몇 집이 봤나’에서 ‘몇 살의 누가 봤나’로 옮겨간 것이다. 질문 하나가 바뀌었지만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미국 시비에스(CBS)는 1970년대 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베벌리 힐빌리스’나 ‘그린 에이커스’ 같은 인기 많은 시트콤을 무더기로 폐지했다. 훗날 ‘농촌 대숙청’이라 불린 폐지의 이유는 이들 작품이 재미없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주 시청층이 고령이고 농촌 거주자라 광고주가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고주는 자기 물건을 많이 사줄 젊은층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에 광고를 넣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이후 미국 드라마는 주인공의 나이와 직업은 물론 소재까지 몽땅 물갈이되는 현상을 겪었다. 그저 측정기 데이터의 질문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다.

만약 TV 산업에서 시청률이란 숫자가 처음부터 없었다면 어땠을까. 매회 끝을 절벽으로 몰아붙일 이유도, 특정 몇 주에 힘을 몰아줄 이유도 없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드는 자극적이기만 한 프로그램 대신 작품성으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지금보다 많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시청률에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시청률은 시청자가 돈 한 푼 내지 않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해준 장치이기도 했다. 방송사는 창작의 자유 일부를 광고주에게 넘기는 대신 제작비를 얻었고, 시청자는 공짜로 양질의 콘텐츠를 볼 수 있었다. 여러 문제점이 거론됐어도 시청률이 오랫동안 산업의 중심을 차지해온 이유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철옹성 같던 시청률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경쟁 매체의 등장으로 시청률은 계속 하락 곡선을 그렸고 이제 10%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말이 나온다. 젊은층 이탈로 시청률은 이제 예전 같은 위세를 누리지 못한다. 숫자가 낮아진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숫자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점점 낡아가는 숫자, 이것이 한때 산업을 지배하다시피 했던 시청률의 현재 모습이다.
숫자 따라 바뀌는 산업의 모습
최근에는 그 자리를 또 다른 숫자들이 채우고 있다. 작품을 끝까지 본 사람의 비율인 완주율, 몇 분 몇 초에 재생을 껐는지 보여주는 이탈 지점, 이번달 구독을 끊지 않은 비율인 유지율 같은 것들이다. 시청률이 수천 가구를 뽑아 전체를 추정한 숫자였다면 이 숫자들은 표본이 아니라 전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몇 초를 봤는지 플랫폼은 전부 알고 있다.
숫자가 바뀌자 역시 만드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초반 이탈률이 중요해지면서 1화는 도입부를 걷어내고 결정적 장면부터 꺼내는 구성이 됐다. 목표가 신규 가입이 아니라 해지 방지로 옮겨가자 화제작 한 편보다 계속 볼 것이 남아 있는 라이브러리가 중요해졌다. 완주율은 회차 길이의 제한을 풀어 40분과 80분이 한 시즌에 섞이게 했고, 클릭률은 섬네일과 제목을 작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개인별 추천 화면이 편성표를 대체하면서 프라임타임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모두가 같은 시각 같은 채널 앞에 모이던 시대의 산물이 더는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시청률 발명이 콘텐츠산업에 가져온 것은 크다. 시청률은 보이지 않던 추상적인 ‘시청자’라는 존재를 셀 수 있는 숫자로 바꿔놓은 개념이다. 시청률이 도입되면서 TV 산업에는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기준이 생겼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이 바뀌어 시청률이 낡아간다고 이 구조가 끝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시청률이라는 이름일 뿐, 완주율과 유지율이 그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다.
달라진 점은 하나다. 예전의 숫자는 이해관계에서 한 발 떨어진 조사기관이 만들었고 업계 전체가 같은 것을 들여다봤지만, 지금의 숫자는 그것으로 평가받는 당사자가 만들고 자기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내부의 비밀 정보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 숫자들은 우리의 드라마와 예능을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까. 16부작이 12부작으로, 다시 10부작으로 짧아지고 한 회를 통째로 보지 않아도 되는 쇼츠형 예능이 늘어나는 요즘의 변화가 그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시청률이 TV 산업의 프라임타임과 클리프행어를 만들어냈듯, 완주율과 유지율도 새로운 콘텐츠 양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다만 그 양식이 어떤 모습일지는 숫자를 쥔 쪽만 알 테지만 말이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칼럼니스트는 업계 경력 20년 이상의 콘텐츠산업 전문가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며, 콘텐츠 제작과 금융이 전문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을 졸업하고 LG인터넷과 SBS콘텐츠허브 등에서 방송·게임·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IBK기업은행에서는 콘텐츠 금융과 관련한 시스템 구축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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