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강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곳… 조강의 노을[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글·사진 김포=전승훈 기자 2026. 9. 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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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세 물줄기가 만나 바다가 시작되는 곳. 김포 문수산성과 애기봉에서 바라보는 '조강(祖江)'은 호수처럼 평화로운 풍경이다.

문수산성 인근 조강변에 있는 애기봉은 한때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으로 유명했다.

홀로 조강을 건넌 애기는 김포에서 날마다 쑥갓머리산(애기봉) 정상에 올라 임을 기다리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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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한강 하구
김포 월곶면 문수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본 강화도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좁은 해협인 염하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격전지였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 세 물줄기가 만나 바다가 시작되는 곳. 김포 문수산성과 애기봉에서 바라보는 ‘조강(祖江)’은 호수처럼 평화로운 풍경이다. 강과 강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조강은 우리나라의 처절했던 국난의 현장이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조선시대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까지. 그리고 6·25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지척에 있는 애기봉 전망대에는 임을 그리워하다 죽은 여인의 슬픈 전설도 내려온다. 가장 예쁜 서해 노을을 볼 수 있는 김포 한강 하구로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 한양으로 통하는 목줄, 염하(鹽河)

문수산성 성벽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목인 통진읍 월곶면. 김포평야 지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문수산(376m)이 있다. 한남정맥이 서해로 흘러들며 마지막으로 솟구친 봉우리다. 문수산성 산림욕장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가 능선을 따라 4km 정도의 성벽길을 걷는다. 인왕산 범바위 능선 성곽길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문수산 정상에 도착했다.

문수산의 보상은 정상에서 터진다. 평야 한복판에 솟은 산이라 사방이 탁 트인다. 동쪽으로 한강과 서울의 삼각산, 서쪽으로 강화도와 석모도, 교동도가 점점이 떠 있고, 북쪽으로는 개성의 송악산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마침 강화도의 산 너머로 지는 햇살이 구름을 뚫고 사선으로 쏟아져 내린다.

평화로운 해 질 녘. 강화와 김포 사이 좁은 해협 ‘염하(鹽河)’ 위로 붉은빛이 쏟아진다. 노을은 바다를 물들이기보다 강을 한 줄기 불꽃으로 만든다. 붉은 기운은 한강 하구로 이어지며 개성 방향 하늘까지 번져간다. 한강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서해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단연 최고의 포인트다.

문수산성 장대.
문수산성 정상에 있는 장대(將臺)에 오르니 염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바다다. 짠물이 흐르는 ‘소금강’이다. 강화와 김포 사이 좁은 물길을 들여다보면, 프랑스도 미국도 일본도 왜 하나같이 이 손바닥만 한 해협으로 밀고 들어왔는지가 선명해진다. 이곳은 한양의 숨통, 조선의 목젖이었다.

서해 먼바다에서 배가 한양으로 가려면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강화도 서쪽을 크게 돌아 교동·석모도 바깥을 지나는 넓은 바닷길인데, 물살과 갯벌이 험하고 멀다.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염하다. 한번 통과하면 곧장 한강을 거슬러 마포·용산까지 배가 닿는다. 조선의 조운선이 오르내리던 국가의 대동맥이자, 유사시 도성의 심장을 겨눌 수 있는 비수의 길이었다. 고려 왕조가 몽골을 피해 강화로 천도한 것도, 조선이 이곳을 최후의 피난 수도인 ‘보장처(保障處)’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강화도는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한 거대한 요새였다. 현재도 남아 있는 강화도의 지명-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갑곶돈대, 용두돈대 등은 모두 군사시설의 흔적이다. 강화도에는 5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 53개의 돈대(墩臺)가 있다. 가장 큰 진은 지휘관이 상주하는 거점이었다. 보는 중간 규모의 요새였고, 돈대는 해안 절벽이나 돌출부에 쌓은 소규모 포진지였다. 섬 전체가 초소였고, 포대였고, 병영이었던 셈이다. 그 맞은편 김포 해안에서는 문수산성과 덕포진이 짝을 이루어 협공의 진을 치는 방어전술이었다.

강화도 정족산성 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장사각.
1866년 병인박해로 프랑스인 신부들이 처형되자, 프랑스는 극동함대 군함 7척과 병력 1000여 명을 이끌고 강화도를 침공했다. 1866년 10월 16일, 강화는 거의 저항 없이 함락된다. 이 참담한 국면에서, 종8품 말단 관리였던 한성근이 순무영 초관으로 임명되어 50여 명의 포수를 이끌고 문수산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10월 26일. 정찰을 나온 프랑스군 70여 명이 성 아래 상륙하려는 순간, 한성근 부대가 선제 사격을 퍼부었다. 프랑스군 3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조선의 화승총이 서양 군대의 심장을 처음으로 꿰뚫은 순간이다. 결국 양헌수 부대가 염하를 건너 강화도 정족산성으로 잠입해 프랑스군을 격퇴하며 물러가게 했다. 강화도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藏史閣)이 남아 있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광성보와 손돌목돈대에서 화력의 절대 열세에도 물러서지 않고 백병전을 벌이다 전멸했다. 그날 손돌목 바다는 조선군 350여 명의 원혼을 삼켰다고 전한다. 손돌목은 염하 중간쯤 물길이 갑자기 좁아지고 뒤틀리는 곳이다.

김포 덕포진에 가보니 손돌의 묘가 있다. 묘비에는 ‘주사(舟師) 손돌 공(公)의 묘’라고 씌여있다. ‘주사’는 뱃사공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몽골을 피해 강화로 향하던 고려 고종이 험한 물목에서 배가 헤어나지 못하자 뱃사공 손돌을 반역으로 의심해 참수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도 손돌은 물에 바가지를 띄우고 “이것을 따라가면 뱃길이 트인다”는 말을 남겼다. 왕은 살아남은 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훗날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손돌목은 함선이 속도를 늦추고 통과해야 하는 병목이었다. 방어군에게는 천혜의 요격 지점이었다. 그래서 손돌목을 사이에 두고 강화 쪽엔 손돌목돈대와 광성보가, 김포 쪽에는 덕포진과 문수산성이 마주 보며 협공했다. 모든 요새가 이 물목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교한 방어선은 19세기 화력의 시대 앞에서 무력해졌다.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는 ‘식수를 구한다’는 구실로 이 물길에 접근해 초지진의 포격을 유도했고, 이를 빌미로 조선의 문호를 강제로 열어젖혔다. 이듬해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며, 조선은 결국 이 물길에서 개항의 첫 도장을 찍는다. 좁은 물목일수록, 역사는 더 세게 몰아치게 마련이다. 외세의 침입을 겪었던 염하에는 새들만 날아다닌다. 평화 그 자체의 고요함과 적막함이다.

● 북녘땅을 바라보며 아이스아메리카노

문수산성 인근 조강변에 있는 애기봉은 한때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으로 유명했다. 강 건너 북녘에서도 보였던 높이 30m 안팎의 ‘애기봉 성탄트리’는 냉전기 대북 심리전의 상징이었다. 남북 관계에 따라 점등과 소등을 반복하던 이 등탑은 2010년대 중반 철거되고, 애기봉평화생태공원으로 변신했다.

북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애기봉 평화전망대에는 서양인도 많고,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다.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어른 1000원)을 하고, 매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표를 준다. 현역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지나 5분 정도 운전하니 애기봉평화생태전시관에 도착했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선전마을.
애기봉 전망대에는 스타벅스 카페가 들어서 있다. 전망대에 서면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불과 1.4km 떨어진 강건너 개풍군에는 북한이 선전용으로 지어놓은 마을이 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붉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써놓은 구호와 논밭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들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그런데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외국 관광객들의 손에는 모두 스타벅스 커피 한잔씩이 들려 있다. 북한을 배경으로 찍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인증샷이다. 별다방 인어가 쓰고 있는 왕관에도 별이 있고, 북한의 인공기에도 별이 새겨져 있다. 낯선 조합일수록 힙한 인증샷이 된다.

‘애기봉’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갓난아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지명은 평안감사가 ‘사랑하던 기생(愛妓)’의 이름에서 온 지명이다. 전설은 병자호란(1636)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두 사람은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평안감사가 한강을 건너지 못하고 오랑캐에게 붙잡혀 북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홀로 조강을 건넌 애기는 김포에서 날마다 쑥갓머리산(애기봉) 정상에 올라 임을 기다리다 죽었다. 전망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애기봉’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 해설문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북녁 땅을 바라보며 울고 있는 애기의 심정이 우리들 온 겨레의 상심과 같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과 함께.

가볼 만한 곳

애기봉 근처 조강리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한 어머니의 이름을 딴 ‘카페 옥순’(사진)이 있다. 분단의 강가. 이곳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이 나무로 자라나는 곳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옥순이 아니다. 고(故) 장옥순 님.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간판에 새긴 카페다. 건물을 둘러싼 약 1만 평 대지에 소나무와 향나무, 감나무와 살구나무, 밤나무와 단풍나무, 목백일홍, 접시꽃, 금낭화, 매발톱꽃, 할미꽃이 철 따라 피고 진다. 이 정원은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식물들을 모아 심은, 살아 있는 기억의 아카이브다. 카페 3층 통창에서 내려다보면 하트 모양의 포토존 수목원이 펼쳐진다. 소금빵과 함께 먹는 대추와 아보카도를 커피에 얹은 음료는 정성스럽고 토속적인 감각이 묻어난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 조강. ‘평화의 소’가 구출됐던 유도(점선 안)도 보인다.
애기봉 앞에 흐르는 강물은 조강(祖江)이다.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이다.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이 갓 태어난 아기였다면, 산전수전 다 겪으며 514km를 달려온 한강은 이미 장년기를 지나 노년에 접어든 강이다. 여기서 한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온 임진강, 황해북도 언진산에서 온 예성강과 몸을 섞으며 넓은 하구를 이룬다. 강과 강이 만나서 ‘바다가 시작되는 강’이다. 밀물과 썰물 때 하루 두 번씩 강의 수위가 9m 안팎으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조수(潮水)’ 조자를 써서 ‘조강’이라고 불린다는 해석도 있다.

조강에는 ‘유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떠 있다. 1997년 1월. 한강 하구 조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에 있는 무인도인 유도에서 발견된 황소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전해 여름 장마 때 북한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소는 지뢰에 발목을 다친 채 뼈말라 있었다. 해병대에 의해 구조된 황소는 ‘평화의 소’라고 불리며 남북 화해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글·사진 김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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