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슈퍼마켓인줄 알았더니… ‘전국구 성지’였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6. 9. 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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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커머스∙대형마트 공세
버텨낸 골목상권 마트들
서울 광진구 자양전통시장에 있는 ‘새마을구판장’. 겉보기에는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법한 마트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전문 와인점 뺨치게 다양한 국적과 품종, 가격대의 와인을 갖췄다.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광진구 자양전통시장 남문으로 들어서 어물전·채소가게·족발집·떡집·방앗간을 지나자 ‘새마을구판장(새마을마트)’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트.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콩나물과 두부, 배추, 과자 매대를 지나자 뜻밖의 모습이 펼쳐졌다.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 와인부터 미국·이탈리아·아르헨티나·칠레 등 전 세계 와인 수천 병이 진열대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장바구니 든 동네 주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청년들이 와인을 쟁여 갈 캐리어를 옆에 둔 채 와인을 고르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가격 비교 앱을 켜두고 보물찾기하듯 매대를 샅샅이 뒤지는 이른바 ‘주류 원정대’다.

‘오늘 밤 주문하면 내일 아침 문 앞 도착’을 외치는 이커머스와 최저가를 외치는 대형마트 틈새에서 동네 주민을 넘어 ‘전국구 팬덤’을 거느리며 성업 중인 골목상권 마트들이 있다. 생존 비결은 ‘전문성’과 ‘취향’이다. 모든 품목을 구색 맞추기 식으로 채우려다 경쟁력을 잃은 과거의 백화점식 종합 슈퍼마켓 모델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뾰족한 전문성을 구축했다. 온라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주류를 파고들어 가격 경쟁력과 희귀 라인업을 극대화하거나 대형 플랫폼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다루지 않는 전 세계 틈새 식재료를 모아 놓는 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미식 취향을 만족시키면서 오프라인 공간만이 줄 수 있는 ‘발견의 재미’를 제공한다.

온라인 판매 금지된 주류 특화

‘스타 동네 마트’에는 주류에 특화한 곳이 많다. 현행 규정상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는 온라인 통신 판매와 택배 배송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사려면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찾아야 한다. 쿠팡·컬리 등 거대 이커머스 기업의 막강한 물류망이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인 셈. 새마을구판장과 서울 광진구 ‘조양마트’, 양천구 ‘우성그린마트’, 노원구 ‘이편한마트’, 중랑구 ‘동부마트’, 은평구 ‘푸르네식자재마트’, 경기도 용인 ‘신동백마트’, 인천 ‘우성식자재마트’ 등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전국구 명성을 얻은 대표 주자다.

이들의 최대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다. 유통 단계를 최소화하고 박리다매 구조를 안착시켰다. 전통시장이나 골목 상권에 있는 덕분에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이나 서울페이 등 지역 화폐 결제가 가능해 추가 할인이 되는 것도 큰 매력이다. 소비자가 액면가 대비 10%가량 할인된 가격에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을 충전해 결제하면, 대형마트 할인가보다도 15~2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고가 위스키와 와인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위스키 성지’로 이름난 조양마트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백화점에서 30만원대에 팔리는 고급 싱글몰트 위스키를 여기서는 상품권 할인 혜택까지 더해 20만원대 초반에 살 수 있다”고 했다.

가격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가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위주로 매대를 채운다면, 주류 특화 마트는 소규모 독립 병입 위스키, 개성 넘치는 내추럴 와인 등 구하기 힘든 라인업을 갖춰 놓는다. 조양마트의 경우 로열살루트·맥캘란·라프로익 등 다양한 위스키와 코냑, 와인, 사케, 수제 맥주뿐 아니라 미국 뉴욕에서 양조해 유명세를 얻은 ‘토끼소주’와 홍국쌀(붉은 누룩곰팡이로 발효시킨 쌀)로 빚어 인공 색소 없이 붉은빛을 낸 막걸리 ‘붉은원숭이’ 등 개성 있는 전통주도 구비해 놓았다. 10여 년 전부터 수제 맥주를 소개해온 이편한마트 직원은 “전북이나 경북, 제주에서도 맥주를 사러 온 손님들이 있다”며 “요즘 동네 슈퍼들이 많이 어렵지만 그래도 맥주 덕분에 유지가 된다”고 했다.

'위스키 성지'로 유명한 서울 광진구 '조양마트'는 와인, 사케, 수제 맥주, 코냑, 전통주 등 다양한 주류를 두루 갖췄다.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대형 마트에 없는 수입 식재료·향신료

‘스타 동네 마트’의 또 다른 축은 글로벌 식재료 전문점이다.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인근 ‘중앙아시아 거리’에 있는 ‘파르투내 푸드마켓(Fortune Food Market)’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 전문 마트다. 매장 입구 왼쪽으로 레표시카·삼사 등 중앙아시아 전통 빵이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안쪽에는 러시아식 만두 펠메니와 꿀 케이크 메도빅, 보르시 수프용 비트 통조림, 각종 치즈와 스메타나(사워크림)가 있었다. 냉동고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쿠르듀크(양꼬리 지방)’도 있었다. 쿠르듀크는 특정 양 품종의 꼬리에 거대하게 축적된 지방 덩어리로, 낮은 녹는점과 독특한 지방산 구성 덕분에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내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고급 조리용 기름으로 평가받는다.

해외 여행이 일상화되고 이국적인 미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으려는 이들이 늘면서 동남아·중동·러시아·중앙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마트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가 다루기 어려운 생(生) 허브와 특수 향신료, 냉동 축산물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물론 셰프와 요리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온라인 직구의 파손 위험과 배송비 부담 없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지녔다.

글로벌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마트는 대부분 서울 이태원·연남동, 경기도 안산 등 외국인 밀집 지역이나 다문화 상권에 자리 잡고 있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인근 ‘포린푸드마트(Foreign Food Mart)’는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원조 글로벌 식료품점이다. 매장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신료 향이 코를 자극한다. 인도, 파키스탄,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식재료가 총망라됐다. 커민·카다멈·정향 등 원형 향신료부터 인도가 원산지인 바스마티 쌀, 병아리콩, 렌틸콩, 할랄 인증 냉동 육류(양·염소·소고기 등)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임페리아 푸드(Imperia Food)’는 안산 원곡동 다문화 거리를 대표하는 러시아·중앙아시아 식료품 전문 마트다. 현지에서 직수입한 차(tea)와 러시아 초콜릿·비스킷, 피클, 캐비아, 훈제 생선, 통조림 등이 빼곡하다. 매장 한편에서 직접 굽는 전통 빵과 디저트는 고려인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려 안산을 찾는 내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화교가 많이 거주해 온 연남동의 ‘대화마트’는 중국과 대만 식재료 200여 종으로 가득하다. 중국식 고추장 브랜드 ‘라오간마(老干妈)’, 대만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 훠궈 소스가 인기다.

서울 동대문 ‘파르투내 푸드마켓’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식재료 전문 마트다.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이태원 ‘포린푸드마트’는 원조 글로벌 식료품점으로 꼽힌다.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라이프스타일 그로서리

세련된 구성을 앞세운 ‘라이프스타일 그로서리 마켓(식료품 편집숍)’도 주목받고 있다. 대구 봉산동 골목에서 시작해 전국적인 팬덤을 일으킨 ‘모남희(Monamhee)’나 서울 성수동 ‘먼치스앤구디스(Munchies and Goodies)’, 대전 ‘퍼블릭 마켓’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곳을 찾는 2030세대는 단순히 생필품을 구입하려고 오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홈파티’나 ‘나만의 주말 힐링’을 완성할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소비하러 온다. 와인을 고르면 어울리는 안주를 제안받고, 감각적인 공간과 분위기를 즐기는 경험은 차가운 알고리즘의 이커머스나 규격화된 대형마트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성적 만족감을 준다.

이들 매장은 과거 동네 구멍가게 개념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로 재해석했다. 쌀과 대파, 두부 대신 젊은 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상품으로 매대를 채운다. 개성 있는 일러스트 라벨의 내추럴 와인과 수제 맥주, 여기에 곁들이기 좋은 치즈와 하몽·살라미 같은 샤퀴테리(육가공품), 올리브 절임, 캐러멜 버터, 밤잼, 스페인 감자칩 등을 서양의 동네 델리(Deli)나 그로서리 스토어처럼 유기적으로 진열한다. 특히 모남희는 단순히 먹거리를 넘어 와인 안주용 ‘치즈 플래터 밀키트’와 자체 제작한 캐릭터 인형 키링, 감각적인 에코백과 주방 소품 등 ‘라이프스타일 굿즈’를 함께 결합해 오픈런과 품절 대란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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