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 종말…AI 생산성이 美 국가부채 변수로

이혜인 2026. 9. 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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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국가부채에 따른 재정 부담은 과거 통념과 비교해 크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대적 경제 패권이 약해지는 구조적 변화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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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도 괜찮다'는 옛말
뒤집히는 재정 통념
저금리로 발행된 국채 만기 임박
금리 높아지며 이자 年 1조달러
AI에 막대한 자금 투자했는데
생산성 안 오르면 재정 부담 커져

“높은 국가부채에 따른 재정 부담은 과거 통념과 비교해 크지 않을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2019년 미국경제학회(AEA) 회장으로서 이같이 연설했다.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며 정부가 더 많은 빚을 내도 과거보다 적은 이자 부담만 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각국의 적극적인 재정 확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각국 국채 금리가 동반 급등하며 이 같은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싼 돈’ 시대의 종말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최근 금리 상승을 ‘채권시장 붕괴’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제로금리, 양적 완화 등 이례적 정책을 장기간 유지해 오히려 지난 20년의 금리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미국·유럽 등 주요국이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에 나서면서 각 정부의 국채 발행 비용은 크게 낮아졌다. 저금리가 오랜 기간 이어지자 국가부채가 늘어나도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방만한 재정 집행과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며 이런 전제 자체가 흔들렸다. 저금리 시절 대규모로 발행한 국채가 속속 만기를 맞으며 각국 정부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빚을 갈아타게 됐다. 이미 불어난 부채에 높은 금리가 적용되면서 늘어난 이자 비용은 다시 재정적자를 키웠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의 공공 보유 국가부채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의 32%에서 현재 약 100%로 불어났고 연간 순이자 비용은 1조달러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WSJ는 “높아지는 금리는 자원의 생산적 배분을 예고하며 이는 성장과 고용 창출에 긍정적 신호”라고 풀이했다.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관건

그러나 최근 금리 상승이 정상화 과정이라고 해도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높은 금리를 감당하려면 성장 잠재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미국 장기 금리 상승의 한 축으로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와 이에 따른 자금 수요 증가가 꼽힌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 금융시장 기능의 이상이 아니라 강한 경제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큰 요인은 AI와 데이터센터, 전반적인 기술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뒷받침되는 미국 경제의 강세와 밝은 전망”이라며 “금융시장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경제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막대한 AI 투자가 기대한 만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부장은 “AI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는데 생산성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으면 기업은 높은 이자 비용만 떠안는다”며 “정부 역시 경제 성장과 세수 증가가 기대에 못 미치는 가운데 높은 국채 금리로 이자 비용은 계속 늘어나 저성장과 고금리, 재정 부담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제 패권도 변수다.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정책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대적 경제 패권이 약해지는 구조적 변화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미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내더라도 각국이 외환보유액과 안전자산으로 미 국채를 꾸준히 사들이면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각국이 외환보유액과 결제 수단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미국이 누려온 ‘기축통화국 프리미엄’이 장기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정책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시장의 우려를 낮추려면 재정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등 중장기적으로 국가부채를 안정시키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지만 국방·안보 등 줄이기 어려운 지출 항목이 상당하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중동 지역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방·안보 관련 재정 부담이 커지고, 에너지 가격 등을 통한 물가 상승 우려가 지속되며 금리가 떨어지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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