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타트업열전] ‘성심당 같은’ 스타트업을 만들 순 없을까
[비즈한국] 2026년 9월 3일 베를린, 런던, 미국, 싱가포르, 일본, 뮌헨에서 활동하는 투자자, 미디어, 스타트업 생태계 참여자들이 한국에 왔다. 대전을 시작으로 광주, 울산, 대구를 탐방하는 9박 10일의 창업도시 생태계 대장정이다.

지역 창업 생태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려라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4월, 지역거점 창업도시 10곳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5곳을 2030년까지 글로벌 창업생태계 100위권에 진입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이 내세운 방향은 수도권 중심의 단일 생태계에서 여러 지역 거점이 함께 성장하는 ‘다핵형 창업생태계’로의 전환이다.
첫 대상은 4대 과학기술원이 자리한 대전·대구·광주·울산이다. KAIST, DGIST, GIST, UNIST가 있는 도시를 기술인재 중심의 창업도시로 우선 육성하고, 이후 지역 주력산업과 균형발전을 고려해 6개 도시를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정책의 범위도 단순히 창업공간 조성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기술원에 창업원을 신설하고 교수와 학생의 창업을 가로막는 휴직·겸직·학사 규정을 완화한다. 창업기업 전용 연구개발과 팁스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이 보유한 데이터와 실증 기반도 창업에 활용한다.
지역에 기업이 머물도록 사무·주거·네트워킹 공간을 확충하고, 2026년 4500억 원 규모의 지역성장 모펀드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3조 5000억 원 규모의 자펀드를 조성한다는 투자 계획도 포함됐다. 지방정부와 대학, 연구소, 투자기관 등이 참여하는 ‘창업도시 추진단’을 구성해 흩어진 지원체계를 연결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6월에는 4개 창업도시에서 총 278개 기업을 선정해 기업당 최대 4억 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는 후속 사업도 시작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지방정부가 지역 전략에 맞춰 지원 대상과 선정 방식을 직접 설계한다. 중앙정부가 동일한 사업을 전국에 배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 어떤 기업을 키울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한 것이다.
독일에서 얻은 힌트 ‘지역 생태계는 어떻게 발전하는가’
한국 지역 창업 생태계가 어떻게 세계 수준으로 올라갈지, 우리가 유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한 도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국제 인재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이 모이는 독일의 대표적인 창업 허브다. 하지만 딥테크와 모빌리티, 기업 간 거래 분야에서는 뮌헨이 베를린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인다. 베를린과 뮌헨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서도 1, 2위를 다투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항구도시 함부르크에는 물류·해운·항공과 미디어 산업이,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에는 금융과 금융기술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아헨은 RWTH 아헨공대를 중심으로 제조·에너지·딥테크 창업이 발달했고,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와 기계산업, 쾰른과 뒤셀도르프는 미디어·보험·통신·기업 간 거래 분야에서 각자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데이터에서도 이런 구조가 드러난다. 딜룸(Dealroom)의 독일 생태계 자료에는 베를린뿐 아니라 바이에른·뮌헨·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바덴뷔르템베르크·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가 각각 주요 창업 거점으로 등장한다. 뮌헨공대, RWTH 아헨공대와 같은 지역 대학은 창업가와 연구 기반 기업을 배출하는 핵심 기관으로 집계된다.

이는 단순히 독일이 연방국가여서가 아니다. 지역마다 대학과 연구기관, 중견기업, 산업 클러스터와 지방정부가 오랜 시간 연결돼왔다. 베를린으로 가지 않아도 뮌헨에서는 모빌리티와 딥테크 투자자를, 함부르크에서는 물류·항공 기업을, 아헨에서는 제조업 연구자와 기업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창업할 수 있어야
한국에도 지역에 창업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테크노파크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있고, 대학과 연구소, 창업보육센터도 있다. 지방정부마다 창업지원사업과 투자 행사를 운영해왔다.
그런데 좋은 기술을 보유한 지역기업도 성장 단계에 접어들면 서울로 주소를 옮기거나 서울 사무소를 만든다. 투자자와 고객, 인재가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창업은 할 수 있지만, 지역에 머물면서 큰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오랫동안 이어진 문제다.
정부가 올해 시작한 ‘창업도시 조성 프로젝트’는 이 구조를 바꾸려는 정책이다. 이 질문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창업도시 홍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여정에는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과 딜룸(Dealroom)처럼 전 세계 도시의 창업생태계를 분석하고 데이터화하는 기관, 피치북(PitchBook)과 같은 글로벌 투자 데이터 관계자, 시프티드(Sifted)와 테크크런치(TechCrunch) 등 해외 스타트업 미디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허트펠트(Heartfelt)와 드라쿤 벤처스(Dracoon Ventures)를 비롯한 유럽 투자자들도 한국의 지역도시를 직접 방문했다.
대전,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나눈 이야기
9월 3일 대전에서 열린 글로벌 컨퍼런스는 이 질문을 생태계·데이터·투자·도시정책이라는 네 개의 시선으로 나눠 살펴보는 자리였다.
스타트업 지놈의 아시아 디렉터 추즌 킨(Chusen Kin)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단번에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활성화–세계화–유입–통합’의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기술 스타트업과 지역 커뮤니티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후 창업가들이 해외 고객·투자자·동료 창업가와 연결되면서 세계시장에 통하는 사업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성공기업과 대규모 회수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외부의 자본과 인재가 “그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고, 마지막에는 스타트업과 대학·대기업·투자기관의 협력이 특별한 행사가 아닌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는다.
킨이 특히 강조한 것은 ‘연결의 밀도’였다. 창업가와 투자자, 전문가가 공식 행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만나 지식과 경험을 교환하는 생태계의 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지역에 커뮤니티와 인재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사업과 예산만 늘리면 효과가 지속적으로 쌓이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 역시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가장 큰 공백을 찾아 메우고 민간이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딜룸의 생태계 연구 책임자(Ecosystem Research Lead) 니나 샬룸(Nina Chaloum)은 좋은 생태계가 존재하더라도 데이터에서 포착되지 않으면 세계에서는 발견되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다. 창업도시는 투자유치 총액이나 유니콘 수와 같은 절대 규모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인구 대비 창업과 투자 밀도, 최근 성장 속도, 초기기업이 후속 투자와 대형 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경로, 대학발 창업과 특허의 사업화, 분야별 전문성 등을 함께 봐야 한다.
대형 도시인 로스앤젤레스가 절대적인 투자 규모에서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앞서지만, 인구를 고려한 창업 밀도에서는 탈린이 더 강한 생태계로 나타나는 사례도 소개됐다. 이는 대전이 서울과 규모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은 연구개발과 딥테크라는 고유한 조건을 바탕으로 비슷한 규모와 성장 단계, 산업적 특성을 가진 세계의 도시들과 비교돼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지역 스타트업과 투자유치, 대학발 창업, 고용과 특허에 관한 정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라 지속적으로 축적돼야 한다. 지역의 실체와 세계가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모습 사이에 간극이 크다면, 그 생태계의 강점은 상당 부분 감춰진 채 남게 된다.
이후 시프티드의 스타트업 생태계 부문 부사장 아니사 오스만 브리튼(Anisah Osman Britton)의 사회로 허트펠트의 제너럴 파트너 헨릭 헝거호프(Henric Hungerhoff), 드라쿤 벤처스 대표 데이비드 안(David An)이 투자자 대담을 했다. 이 대담에서는 ‘좋은 기술 이외에 스타트업에 무엇이 필요한가’가 논의됐다. 초기 투자에서는 아직 매출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창업팀 자체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기술과 상업화 역량이 상호 보완적으로 구성돼 있는지, 공동창업자들의 역할이 명확한지, 팀이 하나의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지가 핵심 기준으로 제시됐다.
특히 딥테크 기업에는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한 발명자와,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사업가가 함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기술의 정확성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술이 만들 미래를 고객과 투자자가 믿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투자자는 과거의 연구성과가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잠재고객과의 대화가 몇 건의 실증으로, 다시 몇 건의 유료계약으로 전환되는지 수치로 관리하는 상업화 역량 역시 글로벌 투자 준비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꼽혔다.

모든 기술기업이 벤처 투자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나왔다. 벤처펀드는 소수의 기업이 매우 큰 규모로 성장해 전체 수익을 견인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 연구개발 기간이 긴 딥테크 기업이라면 초기에는 정부 연구비와 보조금, 기업과의 실증사업을 활용해 기술과 시장을 검증한 뒤 벤처 투자를 받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연구가 어느 시점부터 고객과 매출, 후속 투자로 전환되는가이다.
마지막 대담에서는 대전과 자매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메릴랜드주 몽고메리카운티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 대담은 몽고메리카운티의 경제개발 디렉터 주디 코스텔로(Judy Costello)와 테크 크런치의 케이트 박(Kate Park)이 함께했다.
몽고메리카운티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식품의약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위치했지만 워싱턴DC와 보스턴, 캘리포니아 같은 유명 거점의 그늘에 가려졌다는 점에서 대전과 닮았다. 양측은 기존의 문화·학술 교류를 경제협력으로 확대했고, 대전은 현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열었다. 이를 통해 물류로봇 기업 트위니를 비롯한 대전 기업들이 미국에서 실증과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몽고메리카운티 측은 대도시보다 규모가 작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길을 잃는 대신 지방정부가 적합한 실증 장소와 고객·연구기관을 구체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을 서두르는 지역기업에 보내는 경고도 나왔다. 미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한꺼번에 공략하거나, 자신만이 유일한 기술을 보유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출하려는 지역의 산업과 경쟁기업을 먼저 조사하고, 실제 고객과 협력관계를 만든 뒤 거점을 선택해야 한다. 지방정부도 단순히 사무실이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이 적합한 실증 현장과 고객, 인재, 자본을 만날 수 있도록 위험을 낮춰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전, 광주, 울산, 그리고 대구를 넘어
대장정은 이후 각 도시의 인프라 탐방으로 이어진다. 대전에서는 KAIST와 ETRI를 비롯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기술인재 환경을 살펴본다. 대전지역 대표 투자사인 블루포인트 파트너스(Bluepoint Partners)를 만나 기술창업 전문 투자사로서 지역에서의 역할도 조명해볼 예정이다.
광주에서는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방문해 광주가 가진 기술 인프라를 살펴본다. AI, 미래 모빌리티, 에너지에 집중한 광주 생태계에서 대표 창업가들도 만날 계획이다. 울산에서는 HD현대중공업 같은 전통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현장을 둘러본다. 대구는 의료 분야 특화 허브인 K-Medi Hub와 대표적 스타트업 허브인 DASH를 방문해 글로벌로 향하는 길을 열 생각이다. GIST, UNIST, DGIST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기술중심 대학이 어떻게 스타트업 생태계와 긴밀하게 작동하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지역 창업생태계의 목표는 모든 자원을 지역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이 서울과 해외의 자본·고객·인재에 접근하면서도 본사와 핵심 역량은 지역에 남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독일의 지역 생태계가 주는 교훈도 여기에 있다. 뮌헨의 스타트업은 뮌헨 투자자만 상대하지 않고, 아헨의 딥테크 기업도 아헨 안에서만 성장하지 않는다. 지역에 뿌리를 두되 자본과 시장은 국경을 넘어 연결한다.
지역성과 개방성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 생태계가 강할수록 외부와 더 적극적으로 연결된다. 도시마다 보유한 자원이 다르다. 네 도시 모두가 같은 산업, 같은 프로그램, 같은 투자자를 두고 경쟁한다면 다핵형 생태계가 아니라 중앙집중형 생태계의 작은 복제본만 남게 될 것이다. 한국의 창업도시가 서울의 축소판이 되지 않도록 독일식 다핵형 생태계를 고민해볼 만하다.

각 도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넘어 “왜 이 기술과 기업은 반드시 이 도시에서 나와야 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울산의 강점은 대기업이 많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실제 선박과 공장, 자동차 생산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다는 데 있어야 한다. 광주는 연구기관과 기반시설을 보유했다는 설명을 넘어 인공지능과 모빌리티, 에너지가 어떤 구체적인 산업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대구와 대전도 자신만의 대표 기업과 투자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도시 브랜드는 행정기관이 정한 전략산업의 목록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성장한 기업을 통해 기억된다. 데이터에서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된다. 이번 방문단에 스타트업 지놈, 딜룸, 피치북 같은 기관이 포함된 이유다. 글로벌 투자자와 기업은 세계 모든 도시를 직접 방문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장을 찾을 때 데이터베이스와 생태계 보고서, 투자유치 기록, 기존 투자자의 추천을 먼저 살펴본다.
지역기업의 투자와 성장 정보가 글로벌 데이터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도시의 실제 역량도 함께 사라진다. 대전에서 창업한 기업이 서울로 본사를 옮기면 투자성과는 서울의 생태계에 더해진다. 지역의 스타트업 정보가 영문으로 정리되지 않거나 투자유치 내역이 누락되면 해외에서는 그 기업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글로벌 100위권 도시’라는 목표를 단순한 순위 경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순위 그 자체보다 세계가 그 도시를 식별할 수 있는가이다. 어떤 기업이 있고, 얼마나 투자받았으며, 어느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는지 데이터로 축적돼야 한다. 대표적인 창업가와 투자사, 대학·연구소와 산업 파트너 사이의 관계도 하나의 생태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에 보이기 위해 과장된 숫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활동과 성과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으로 기록해야 한다. 글로벌 창업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외부인이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해외 관계자를 지역에 초청하는 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한 번의 방문으로 도시의 평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방문단이 몇 명인지, 몇 건의 밋업이 열렸는지, 행사장에 몇 명이 참석했는지만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를 판단한다면 과거의 일회성 해외 초청행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는 환대를 받았다고 도시를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첫 방문에서 만난 기업이 성장하고 있거나, 새로운 투자기회가 지속해서 발굴되고, 신뢰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가 후속 정보를 제공할 때 다시 찾아온다. 지역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는 방문객의 숫자가 아니라 재방문이다.
행사 이후 해외 미디어가 지역기업을 취재하는가. 데이터 기관이 기업과 투자정보를 새로 반영하는가. 투자자가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후속 미팅을 진행하는가. 첫 방문자가 다음 투자자와 기업을 데리고 다시 오는가. 이를 위해서는 많은 기업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보다 투자자에게 맞는 기업을 정확히 선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기술의 우수성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규모와 고객 검증, 사업모델, 후속 투자계획까지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방문 이후의 관계도 책임져야 한다. 질문을 정리하고, 자료를 전달하며, 기업의 성장 상황을 지속해서 알려야 한다. 사업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연락도 함께 종료된다면 글로벌 네트워크는 축적되지 않는다. 좋은 창업생태계는 모든 기업이 훌륭한 곳이 아니다. 좋은 기업을 정확하게 골라주고, 필요한 사람과 연결하며, 첫 만남 이후의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성심당을 만나러 대전에 가는 것처럼. 빵집 하나가 도시의 부속물이 아니라 도시를 방문하게 만드는 목적지가 되는 현상을 생각해보자. 창업생태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해외 투자자가 서울 일정을 하루 줄여 대전까지 내려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광주와 울산, 대구까지 이동해야만 만날 수 있는 기업과 기술은 무엇인가. 그 도시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연구자와 산업현장, 실증 기회가 있는가.
“우리 지역에도 좋은 스타트업이 많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만나고 싶은 창업가, 투자하고 싶은 기업, 확인하고 싶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도시를 대표하는 기업 한두 곳의 성공은 단순한 홍보 소재가 아니다. 다음 창업가와 투자자, 인재를 불러오는 기준점이 된다.
성심당의 성공을 그대로 스타트업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도시를 찾아가는 이유가 행정적인 구호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경험과 신뢰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같다. 스타트업도 도시를 찾아갈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창업도시 조성 프로젝트가 보여주면 좋겠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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