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에 달라진 투자법…실적 깎일 수출주와 그래도 버틸주 구분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1300원대까지 빠르게 내려오면서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계산도 달라지고 있다. 원화 강세는 외국인 자금 유입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수출 기업에는 환산 실적을 깎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차영주 와이즈경제연구소 소장은 지금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환율이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업이 환율 하락에도 이익 증가를 이어갈 수 있느냐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봤다.
국내 증시는 당분간 강한 추세보다 횡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차영주 소장의 판단이다. 거래대금이 크게 줄었고 고객예탁금도 이전보다 감소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을 강하게 끌어올릴 신규 유동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9월과 10월을 앞두고 뚜렷한 호재도 많지 않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지수가 급격히 무너지지 않고 일정한 영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시장이 횡보하면서 불확실성을 소화하면 이후 중동 전쟁 완화나 금리 하락 같은 변수가 등장했을 때 반등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차영주 소장이 주목한 것은 시장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은 환율 변화다. 원달러 환율이 고점 대비 약 15% 안팎 하락하면서 원화 가치가 빠르게 강해졌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한국 수출기업에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달러로 벌어들인 매출과 이익을 원화로 환산했을 때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차영주 소장은 일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환율 하락을 반영해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약 10% 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9월이 끝나고 10월 말부터 3분기 잠정실적이 나오기 시작하면 환율 하락이 실제 이익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원화 강세 국면은 업종별로 민감도를 나눠야 한다고 봤다. 반도체는 환율 영향을 받더라도 전체 이익 증가 폭이 크다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반면 자동차는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물량은 원화 강세가 진행될수록 환율 효과가 불리하게 작용한다. 해외 현지 생산 비중이 있기 때문에 모든 매출이 같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부분에서는 영업이익 감소를 감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 환율 상승이 자동차 기업의 실적을 끌어올렸다면 지금은 같은 효과가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조선과 방산도 환율을 민감하게 봐야 할 업종으로 꼽았다. 조선은 수주잔고가 많더라도 선박을 실제로 건조하고 인도하면서 매출을 인식한다. 방산 역시 장비 인도 시점에 매출이 잡힌다. 계약 이후 실제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의 환율이 달라지면 원화 기준 실적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수주잔고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환산되는 실적 숫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화장품도 환율 변화에 민감한 수출 업종이다. 다만 차영주 소장은 환율이 강해졌다는 이유만으로 화장품을 바로 팔아야 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화장품은 최근 분기마다 매출이 약 20%씩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불리하게 움직여도 물량 증가가 충분히 강하면 전체 실적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조정을 받았을 때 오히려 다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이라는 판단이다.
결국 핵심은 원화가 강해져 환율 효과가 불리해져도 판매량과 가격이 더 빠르게 올라가는 기업은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본업의 성장률이 낮은 상태에서 환율 효과까지 사라지는 기업은 실적 추정치가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 차영주 소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른 수출주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계속 팔고 있는 이유를 환율 하나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고 봤다. 원화가 강해지면 일반적으로 외국인 자금 유입에 유리할 수 있지만 지금은 이미 환율이 빠르게 내려온 상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원화가 더 강해질 것인지 다시 약해질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시 1400원대로 올라간다면 새로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는 환차손을 입을 수도 있다.

반도체 관세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발언이 반복되고 있지만 실제 실행보다 예고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의 산업 펀더멘털을 바꾸는 악재인지 선거를 앞둔 리쇼어링 메시지인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차영주 소장이 팩트로 중요하게 본 것은 연준 베이지북이었다. 베이지북에서는 미국 경제가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AI 데이터센터가 경제의 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제시됐다. 실제 연준 위원들이 통화정책 회의에서 참고하는 자료에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성장동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AI 투자 사이클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지수 전체보다 업종과 기업별 차별화가 중요하다. 반도체와 다른 수출주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고 수출기업과 내수기업도 구분해야 한다. 이익을 실제로 늘리고 있는 기업과 기대만으로 거래되는 기업도 나눠야 한다. 원화 강세가 시작됐다고 모든 수출주가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이 돌아온다고 모든 종목이 함께 오르는 것도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환율 변화가 기업 이익에는 더 직접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차영주 소장의 시각이다. 시장이 횡보하는 동안 투자자가 해야 할 일도 단순히 반등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원화 강세가 계속됐을 때 어떤 기업은 이익이 깎이고 어떤 기업은 그 충격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미리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