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즐겁게 배우는 ‘메이드 인 제주 보드게임’ 떴다
제주의소리가 연중기획 제주영감(제주young感)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제주의 창작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쌓아낸 꾸준한 노력과 그 안에서 발견한 참신한 지혜를 주목합니다. 이것이 '제주다움'과 '로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주사위를 굴린다. 말이 멈춘 곳은 편의점. 카드를 뒤집어 그 자리에서 쓰는 단어로 문장 하나를 만든다. 맞추면 카드의 QR코드를 찍는다. 여러 언어로 설명과 함께 영상이 뜬다. 그렇게 학원과 놀이터, PC방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면 한 판이 끝난다.
이 보드게임을 만든 사람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임주희(25), 임호희(28) 자매다. 소셜벤처 넠넠(Knock Knock)의 대표와 교육콘텐츠팀장이다.
따뜻한 소명의식으로 시작한 이들의 도전은 즐거움으로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누구보다 그 마음 잘 알기에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매. 누구보다 다문화가정이 현실에서 겪는 아쉬움들을 잘 알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언어였다.
"요즘은 한국어 수업이나 교재가 많이 나오는데 그때 저희는 뭐랄까... 야생 사냥터에 던져진 한 마리의 사슴, 토끼 같은 느낌으로 사자와 맞닥뜨리면 피해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어요. 저는 국어사전을 매일 들고 다니다시피 했어요."(임주희)
성인이 된 언니 임호희씨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획득하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중도입국 청소년, 외국인 유학생들이 그녀의 학생이었다. 현장에서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레 '어떻게 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이 생겼다.
동생 임주희씨의 마음도 같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여러 논문을 보다 보니 제주가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와 관련해 '제주를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들이 처음 시작한 것은 블로그였다. 홀로 한국어 공부가 힘든 이들을 위해 보조교재, 미션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자료를 무료로 배포해 보자'는 취지였다. 언어와 문법으로 시작해 애국가를 비롯한 한국문화를 전달했다. 그 다음은 유튜브 채널이었다. 간단한 상황극을 통해 실생활에서 필요한 단어와 문장을 익히는 영상콘텐츠를 제작했다.
이들의 블로그는 인용 수와 전문성을 평가해 우수창작자를 의미하는 콘텐츠 파트너 프로그램 '네이버 메이트'에 선정되기도 했고, 유튜브 채널에서도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당탕탕 동네 한 바퀴' 시즌1이다. 이주여성들을 위한 생활 밀착형 한국어 학습 보드게임이다. 은행, 시청, 주민센터 등 실생활에서 방문 빈도가 높은 장소를 택해 여기서 사용되는 단어들을 실었다. 주사위를 굴리고, 말을 옮기고, 단어가 적혀진 카드를 뽑고, 퀴즈를 내고 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단어를 익히게 된다. 학원, 놀이터, PC방, 편의점 등 아이들을 위한 시즌2도 나왔다.
이어 초성게임을 기반으로 한 카드게임, 문장을 채우는 동화책 교재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어린시절 자매끼리 함께 동화책을 직접 만들고, 부모님을 앞에 두고 그 내용을 읽어봤던 경험이 녹아있다.
"저희는 직접 겪었던 배경을 가지고 제작을 한 거 잖아요. 다문화가정 혹은 이주배경 분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그 분들의 시선으로 시작을 했다는 게 가장 다른 점일 것 같아요."(임호희)
"저희가 뾰족하게 생각하는 것은 '문법이 완벽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 사람의 삶에 필요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도록 만들어 드리겠다는 점이에요."(임주희)
작년 우당탕탕 동네 한 바퀴 시즌1을 처음 만들고 테스트 사용자를 찾기 위해 무료 배포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행복한 정착의 도구로
넠넠의 행보에는 한국이 낯선 누군가가 지역에서 더 자유롭게 행복하게 함께 어울려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했을 당시 제가 첫 번째 다문화가정 아이였어요. 제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소문이 나요. 그러면 다른 반 애들이 '여기 다문화가정 애가 있다는데 누구야' 이런 경우가 있었죠. 대학교를 갈 때 입시전형이 선생님도 생소하시니까 제가 혼자 스스로 찾아서 했거든요.
커가면서 '내가 동생들을 좀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제 한국어 강사까지 오게 된 거였어요."(임호희)
"역사시간이 되면 저를 향해 '쟤를 쳐다봐라' 이런 때도 있었고, '친일파야' 이런 말도 들은 적 있었고... 사실 들었을 때 기분 나쁠 만한 단어들을 많이 듣고 자라기는 했는데요, 저는 제 배경이 부끄럽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좋지 않는 상황들도 있었지만 저는 당당하게 생활했고, 스스로 부끄럽다거나 싫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블로그에 무료배포한 교재와 유튜브 영상 콘텐츠, 여기에 보드게임까지 연결되면서 넠넠의 세상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모인 넠넠의 팬들의 일상은 제주에서, 한국에서 조금 더 풍성해지고 있다.
주사위를 굴리고, 카드를 뽑고, 동화책을 채우는 동안 아이들은 한 마디씩 말을 뱉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점점 연결되고, 스며든다.
"요새는 중도입국 청소년이라고 해서 출생은 다른 나라에서 하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한 뒤에 한국으로 넘어와서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저희도 어린 나이가 아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갑자기 영어를 배우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잖아요? 이들도 문화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적응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넠넠은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이런 아이들까지도 포커스를 맞춰보려고 합니다."(임주희)
"보드게임을 가지고 실제 수업현장에서 사용을 하고 있는데요, 저희가 만든 게임들로 우리 친구들이 재미있어하고, 몰랐던 단어를 배우고, 저에게 물어보고, 새롭게 습득하는 모습을 보면 '아, 우리가 그래도 뭔가 했구나'라는 그런 뿌듯함이 있어요."(임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