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대표의 ‘원화 코인’ 도전 [사람IN]

전다현 기자 2026. 9. 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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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거래처가 이상한 부탁을 해왔다. "한국과 라오스가 거래하는데 왜 미국 돈이 필요한가요. 난센스 같았습니다." 질경이를 이끌던 그가 원화 스테이블코인(가치 고정 화폐) 사업에 뛰어든 계기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지분의 51%를 시중은행이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 대표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추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현실적으로 되겠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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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거래처가 이상한 부탁을 해왔다. 여성용품 제조사 ‘질경이’의 제품을 계속 수입하고 싶은데, 대금을 1000달러씩 여러 번에 나눠 보내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은행에서 달러를 구할 수가 없어서였다. 한 번에 많은 달러는 암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최원석 질경이 대표(60)는 그 요청을 오래 곱씹었다. “한국과 라오스가 거래하는데 왜 미국 돈이 필요한가요. 난센스 같았습니다.” 질경이를 이끌던 그가 원화 스테이블코인(가치 고정 화폐) 사업에 뛰어든 계기였다.

여성 용품 제조사 질경이 대표 최원석 씨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 2020년 11월 핀테크 기업 피니버스를 설립했다. ⓒ시사IN 조남진

최 대표는 금융업을 하던 사람이 아니다. 10여 년 전 질경이를 설립한 뒤 공장을 지어 직접 제조하고 파는 일을 해왔다. 국내 최초로 질건조증 등 예방 및 치료 특허를 등록한 제품을 처음 내놓을 때도 시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시장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니버스도 같은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2020년, 그가 세운 핀테크(간편결제 금융 서비스) 법인 피니버스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KORT(코트)’다. 발행량만큼 원화를 은행에 담보로 예치해 1대 1로 발행한다. 인도네시아 수입업체가 자국 통화인 루피아로 KORT를 사서 한국 수출기업 지갑으로 보내면 결제가 끝나고, 수출기업은 받은 코인을 원화로 정산받는다. 루피아를 달러로 바꾸고 다시 원화로 환전하던 단계가 통째로 사라지는 구조다. 지난해 11월, 피니버스가 인도네시아 거래처와 1000만원 규모를 시험 정산했을 때 3~5일 걸리던 결제가 몇 분 만에 끝났고 거래 기록은 블록체인에 남았다.

기술적 검증은 마쳤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제도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상 이 거래는 신고 대상이지만, 한국은행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결제 신고를 수리하지 않는다. 신고 서식의 ‘결제 방법’ 항목에도 가상자산이 없다. 법을 지키고 싶어도 신고할 방법 자체가 없는 셈이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는 KORT로 대금을 받으면 현행법 위반이 된다. 올해 6월 말, 최원석 대표는 금융위원회에 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했다. 법이 닿지 않는 영역이라도 좁은 테두리 안에서 시험해보게 해달라는 취지다.

아직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지분의 51%를 시중은행이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핀테크 스타트업은 독자 발행이 어려워진다. 최원석 대표도 담보 관리와 신뢰 확보를 위해 은행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본다. 다만 발행권을 은행이 독점하는 구조에는 선을 그었다. “전투할 때 전투기와 함정도 중요하지만, 현장에는 발로 뛰는 보병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그 보병을 하겠다는 겁니다.” 은행이 안전한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면, 핀테크 기업은 동남아 중소 수출입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질적인 원화 결제망을 넓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추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현실적으로 되겠느냐”였다. 과거 여성청결제 시장을 개척할 때도 모두가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됐다. 세계적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이 가까운 이웃 나라와 거래할 때 왜 반드시 미국 달러에만 의존해야 하느냐고 그는 물었다.

“당장 원화를 달러를 대체하는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자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과 거래하는 가까운 나라에서부터 원화를 한 번이라도 더 쓰게 만들어보자는 도전입니다. 적어도 동남아시아 무역에서만큼은 원화가 통하도록 만들어볼 만하지 않습니까.”

전다현 기자 allhye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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