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 100kg에서 10마리로”…기후위기 속 제주 바다 지키는 ‘미국인 해녀’

미국인 ‘애기해녀(신입 해녀)’ 카일리 겐터(36)는 얼마 전 제주 바닷속에서 겪은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문어가 팔과 어깨를 감싸 안고 떨어지지 않아 소리를 지르자 ‘물벗’ 최정윤씨(40)가 쏜살같이 헤엄쳐 와 문어를 떼어낸 순간이다. 겐터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물벗은 바닷속에서 동료의 근처에 머물며 서로를 지켜주는 벗”이라고 동료애를 드러냈다.
미국 뉴욕 출신 겐터는 한국 최초로 해녀 자격증을 보유한 외국인이다. 14년 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 취업을 꿈꾸며 한국과 일본을 두고 행선지를 고민하던 시절엔 상상하지 못했던 직업이다. 올해로 3년째 ‘까꾸리(갈고리)’와 ‘호맹이(호미)’를 쥐고 제주 바다를 누비고 있는 겐터를 지난 1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겐터는 기자 질문에 대부분 한국어로 답했다.
겐터가 해녀가 된 건 예상 밖 일이었다. 2012년 한국에 들어와 경남 진주시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던 그는 4년 뒤 제주로 이사해 한국인 남편과 함께 펜션을 운영했다. 수영을 좋아해 취미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2018년 한수풀해녀학교 취미반에 들어갔지만 직업 해녀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023년 11월 스쿠버다이빙 강사인 남편이 겐터를 위해 제주 서귀포시 영락리 어촌계에 지원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처음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지만 결국 면접 기회를 얻어 이듬해 1월 정식 해녀로 첫발을 뗐다.
해녀의 삶은 온갖 휴대폰 알림에 쫓기던 육지의 삶과 달랐다. 그는 “물속엔 핸드폰을 들고 갈 수 없고 SNS 알림도 울리지 않는다”며 “오로지 숨쉬기와 해녀 ‘삼춘’들을 지키는 일에만 집중해야 해서 꼭 명상 같다”고 했다. 삼춘은 윗사람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자신의 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교사로 일하던 시절엔 아파도 참고 일했지만, 바다에선 작은 감기 기운도 자신뿐 아니라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에 몸 상태를 예민하게 살핀다. 고령의 삼춘들 대신 묵직한 소라 망태기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자신의 튼튼한 힘과 몸을 긍정하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겐터는 “예전엔 삼춘들의 남편이나 아들이 해주던 일이지만 지금은 다들 돌아가셨거나 멀리 계신다”며 “삼춘들이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영락리 해녀들은 바다 안에서 서로를 돌본다. 겐터가 휘파람을 불며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올 때 내는 숨소리인 ‘숨비소리’를 흉내 냈다. 그는 “삼춘들이 이 소리를 번갈아 내면서 서로를 확인하고 지킨다”고 설명했다.
50년의 나이 차를 넘은 돌봄은 바다 밖에서도 이어진다. 겐터는 “어른들은 제게 ‘이렇게 살아야 해’ ‘애는 어떻게 해야 해’ 훈계하지만, 삼춘들은 본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옛날이야기를 해줄 뿐”이라고 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삼춘들은 겐터를 ‘우리 딸’이라고 부르고 김장김치와 텃밭에서 캔 양파를 건네며 챙긴다. 겐터에게 해녀 여성 공동체는 뉴욕과 한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문화다.
겐터가 제주 공동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 건 제주 4·3사건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다. 지난해 인천에서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15시간 비행 내내 그는 한강의 책을 덮지 못했다. 겐터는 이 책을 읽으며 “왜 제주 중산간에는 마을이 없는지”를 알게 됐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리사 시의 소설 <해녀들의 섬>을 통해 “4·3이 할머니부터 엄마, 딸까지 여성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하게 됐다. 4·3 설명 영상을 SNS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 겐터는 “제주에 살며 역사를 몰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주 역사를 마주하며 삼춘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겐터는 영락리 어촌계를 이어갈 다음 세대가 됐다. 영락리 해녀 8명 중 겐터를 포함한 4명의 나이는 30~40대다. 과거 해녀들의 어려움은 천한 직업이라는 편견이었지만, 다음 세대 해녀들의 어려움은 삶터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다. 해마다 수온이 오르며 제주 바다의 전복·해삼·미역 등 해산물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겐터 역시 매년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물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수십년간 물질을 해온 삼춘들은 바다의 변화를 더 크게 체감한다. 겐터는 “해녀회장님이 10년 전만 해도 하루에 해삼 100kg을 잡았다는데 올해는 10마리가 전부였다”며 “우리에게 미안해했다”고 말했다. 겐터는 “어떻게 해야 바다를 지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전복·해삼·소라의 치패(씨)를 뿌리면서 지키려고 한다”며 “바다를 지키는 건 우리 세대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 방송 등 외신의 조명을 받은 뒤에도 그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소라를 잡고 물벗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해녀의 삶을 이어갈 계획이다. 겐터는 “몇년만 할 생각이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해녀증을 받은 이상 이 마을에서 몸이 닿는 날까지 물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주언 기자 e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잠이 안 오는 이유, 침대 옆에 있었다”…숙면 방해하는 물건 5가지
- “운전 베테랑도 헷갈려요”…자동차 기어 ‘S·B’ ‘+·-’ 대체 언제 쓰는 건가요?
- 국힘, 이 대통령에 “‘연임 없다’ 단 네 마디면 된다, ‘재판 재개’ 네 마디도 선언해야”
- 국힘 “용혜인 사퇴 거부 뒤엔 김현지…좌파 카르텔 빌드업”
- “매일 샤워하는데…” 베갯잇은 왜 누래질까? 얼룩 원인 따로 있다
- ‘나혼산’, 전현무 ‘즉흥 여행’ 조작 논란에 사과···“알마티 선택 가능성 커 스태프 티켓
- [끊는 사람들②]중독을 처방받은 아들···아버지는 왜 병원 400곳에 전화했나
- 샤인머스캣, 미묘하게 다른 빛깔…‘이 색’ 골라야 더 달다
- “단백질 20g이라더니”…단백질바의 배신, 스니커즈와 영양성분 별 차이 없다
- 트럼프 “이란 핵시설 ‘곡괭이산’ 곧 공격할 수도”···이란전은 “별거아닌 사소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