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스틸러]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던’ 노년의 삶…가슴 다시 뛰게 한 ‘고기 회동’

장다해 기자 2026. 9.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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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많은 것에 무감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 단조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핵심은 고기와 불의 변화를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흔히 고기는 자주 뒤집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김 조리기능장은 "적절히 자주 뒤집는 것이 오히려 촉촉하게 굽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손님의 반응을 살피다 고기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필요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도 소통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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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스틸러] (31) 영화 ‘사람과 고기’ 속 소고기
일상 속에 온기 불어넣은 불판 앞
세 노인 무력했던 생활 활기 채워
마주 보고 대화하며 ‘먹튀’도 불사
한우 제대로 다루는 ‘그릴마스터’
부위·불 세기 읽어 최상의 맛 선사
우리 한식문화 알리는 첨병 역할
한끼 나누는 자리서 교감도 시작
영화 속 세 노인이 식당에 모여 고기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트리플픽쳐스

“최근에 이렇게 심장 뛴 적 있어?”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많은 것에 무감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에 단조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더이상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영화 ‘사람과 고기’(2025년, 양종현 감독) 속 세 노인도 그랬다. 짜릿한 고기 회동에 나서기 전까지는.

폐지를 주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준(박근형 분)과 우식(장용 분)은 어느 날 폐지를 차지하겠다며 싸우다 채소를 팔던 화진(예수정 분)의 좌판을 망가뜨린다. 민망해진 형준은 우식을 집으로 불러 밥을 차려준다.

밥을 먹던 우식은 형준의 죽은 아내가 끓여주던 소고기뭇국 이야기를 듣고 “고기는 내가 살게. 무는 자네가 사”라며 함께 국을 끓여 먹자고 한다. 하지만 고기 살 돈이 없던 우식은 결국 소고기를 훔친다. 화진까지 합류해 국물을 떠 먹다 셋은 오랜만에 고기 맛을 느끼고 눈시울을 붉힌다. 입안 가득 감도는 소고기 맛을 알아버린 뒤부터 이들의 위험하고도 쓸쓸한 일탈이 시작된다.

“소고기 맛이 이런 거였어? 셋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네.”

이들은 무전취식하고 들키기 전에 도망치는 일을 반복한다. 트리플픽쳐스

불판 위에서 등심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익자 젓가락이 쉴 틈 없이 오간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셋은 신이 나 들뜬다. 고기 한점에 웃고, 마주 보고 대화하며 한끼를 즐긴다. 다음엔 제대로 고기를 쏘겠다는 우식의 장담은 결국 계산하지 않은 채 고깃집에서 달아나는 이른바 ‘먹튀’로 이어진다.

‘살기도 구찮고, 죽기도 구찮던’ 노년의 삶. 식당 주인을 피해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순간 오히려 가슴이 세차게 뛰는 ‘살아 있음’의 환희를 느낀다.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일탈은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하지만, 불판 앞에 모이는 시간만큼은 외로운 노인네에게 사람의 온기를 되찾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담백한 살코기와 적당한 기름기를 품은 소고기는 불판 앞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함께 굽고 맛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진=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고기가 뭐길래, 이들의 ‘시린 가슴을 덥히는 불꽃’이 됐을까. 소고기는 예부터 귀한 날, 귀한 사람과 나누는 식재료였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고기를 가져온들 ‘이븐(even·균일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하게’ 굽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돼버릴 터. 그래서 커피를 바리스타가, 와인을 소믈리에가 다루듯 고기를 가장 맛있는 상태로 구워내는 ‘그릴마스터’라는 직업까지 등장했다. 경기도에서는 2024·2025년 ‘그릴마스터 대회’가 열려 최고의 고기구이 전문가를 선발하기도 했다.

그릴마스터 대회 협의체에서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미경 조리기능장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봉피양’에서 만났다. 그는 “고기의 품종과 부위, 숙성 상태부터 불과 불판의 특성까지 이해하고 손님에게 최상의 고기 맛과 가치를 전달하는 게 그릴마스터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핵심은 고기와 불의 변화를 끊임없이 읽는 것이다.

고기구이 전문가 ‘그릴마스터’는 고기의 숨은 특징을 설명하며 손님의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안심은 수분이 많아 센불에서 겉면을 빠르게 익히고, 등심은 지방이 불에 떨어져 그을리지 않도록 위치를 옮겨가며 굽는다. 흔히 고기는 자주 뒤집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김 조리기능장은 “적절히 자주 뒤집는 것이 오히려 촉촉하게 굽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표면에 수분이 올라와 윤기가 돌거나 고기 아래쪽이 살짝 올라오면 뒤집을 시점이다.

그릴마스터의 역할은 굽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농장에서 어떻게 길러진 소인지, 부위별 특징은 무엇인지 손님에게 짧고 알기 쉽게 설명해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손님의 반응을 살피다 고기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필요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도 소통의 기술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나. 이제 그릴마스터가 직접 구워준 한우를 맛볼 차례다. 김 조리기능장의 설명을 들으며 등심을 맛봤다. 겉면은 먹음직스럽게 익었지만 속은 은은한 붉은빛이 돌며 육즙을 가득 머금었다. 쫀득하게 씹히는 고기에서 감칠맛이 솨∼ 하고 퍼진다. 쉽게 마르거나 겉만 과하게 익지 않아 한우 특유의 부드러운 결이 살아 있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등심.

처음에는 아무것도 찍지 않고 고기 본연을 즐겼다. 소금을 살짝 곁들이자 풍미가 한층 깊어졌다. 같은 고기도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맛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고기의 맛은 굽는 이의 손길에 따라 더욱 특별해질 수 있다. 그릴마스터 육성과 대회를 이끌어온 민승규 세종대학교 석좌교수는 식당에서 오랫동안 고기를 구워온 50∼60대 여성 종사자에 주목한다.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갖췄지만 여전히 ‘고기 굽는 이모님’으로 불리는 이들에게 자긍심을 올려주고, 손님 앞에서 고기를 굽고 가위로 잘라 먹는 한국의 고기문화를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맡기자고 주장한다.

결국은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고기와 불이 있어도 누가 굽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고, 누구와 식사를 같이하느냐에 따라 한끼도 의미가 남달라지지 않는가. 혼자라면 대충 때우기 쉬운 식사도 나눠 먹을 사람이 있으면 기다려진다. 곁을 내어주자.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과 그렇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삶을 지속하게 할 풍요로움이 돼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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