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위해 취직한 주방서 인생 전환점… 음악 유학생, 요리사의 길을 걷다

2026. 9. 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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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강 셰프가 처음 일본 땅을 밟은 건 요리가 아닌 음악 때문이었다.

2023년, 강 셰프는 자신의 요리 철학과 레시피, 독특한 인생 여정을 담은 레시피북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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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39> 도쿄 '옹기(Onggi)' 강근우 셰프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건 결국 사람, 셰프죠. 신문기자 출신이자 식당 '어라우즈'를 운영하는 장준우 셰프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서 묵묵히 요리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셰프들을 만납니다. 한국 미식계의 최신 이슈와 셰프들의 특별 레시피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강근우 셰프가 도쿄 니시오기쿠보(西荻窪)에 위치한 식당 '옹기(Onggi)'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신주쿠에서 전철을 타고 서쪽으로 한참을 내달리면 당도하는 니시오기쿠보(西荻窪)는 잡지 편집자나 문학인, 예술가들이 숨어드는 동네다. 이곳에 10석 남짓한 카운터 바(Bar) 형태의 작은 식당 '옹기(Onggi)'가 자리 잡고 있다. 도쿄 외곽에서 10년째 자신만의 뚝심으로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강근우 셰프의 공간이다.


취사병 경험 살려 취직한 주방 아르바이트

강 셰프가 처음 일본 땅을 밟은 건 요리가 아닌 음악 때문이었다. 실용음악과 재즈를 전공한 그는 일본의 음향 기술을 배우고 싶어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일본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방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나이 든 유학생을 받아주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많지 않았다. 군대에서 취사병을 했던 경험을 살려 가장 쉽게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식당이었다.

그렇게 들어간 신주쿠 가부키초의 선술집에서 그는 인생의 행로를 틀게 된다. 음식의 기본기를 접하고, 훌륭한 요리사들의 마인드를 어깨너머로 배우며 점차 주방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들 무렵 남의 주방이 아닌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일본 도쿄에서 한식당 '옹기'를 운영하는 강근우 셰프가 카메라를 보면서 미소 짓고 있다.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당시 일본 내 한식당들의 풍경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자본을 가진 유학생 출신 사장들이 한국에서 요리사를 데려와 구색 맞추기식 대중 요리를 파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손님들이 흔히 기대하는 달고 맵고 짠 전형적인 한식이 식탁을 채웠다.

"정작 주방 직원들끼리 끓여 먹는 소박한 시래깃국이나 청국장이 훨씬 맛있는데 손님상에는 자극적인 맛만 나가는 현실이 답답했죠. 가게를 한다면 진짜 우리가 먹는 맛있는 한식을 내고 싶었습니다."

강 셰프는 2016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니시오기쿠보에 옹기의 문을 열었다. 그는 여럿이 둘러앉아 커다란 불판에 고기를 굽고 찌개를 함께 떠먹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대신, 교토의 오반자이나 스페인의 타파스처럼 작은 접시에 요리를 조금씩 덜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인들의 식문화에 맞춰 혼자서도 부담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음식을 조용히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강근우 셰프가 운영하는 한식당 '옹기'에서는 교토의 오반자이나 스페인의 타파스처럼 작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손님들에게 내고 있다.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그의 전략은 적중했지만 늘 순풍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팬데믹 시기 한시적으로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했던 양념치킨 세트의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화려한 인증샷용 메뉴를 원하는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옹기의 정규 메뉴판에는 자극적인 유행에 편승한 음식은 없었다. 발길을 돌리는 손님들을 보며 고민도 깊어졌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가 내고 싶은 요리는 사진용이 아니라 속이 편안하고 담백한 '진짜 한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뚝심은 결국 통했다. 자극적인 맛에 지친 이들, 경험의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미식가들, 그리고 제대로 된 한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옹기의 단골이 되었다. 한 손님은 강 셰프의 요리를 맛보고 "이건 퓨전도 아니고, 모던 한식도 아닌 '얼터너티브 코리안'이다"라고 극찬했다.


일본 식재료로 재창조해낸 한국의 맛

강근우 셰프가 음식의 맛을 확인하고 있다.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강 셰프의 미각적 뿌리는 고향인 부산, 그리고 부모님의 고향인 남해에 닿아 있다. 신선한 해산물과 슴슴한 나물, 짜지 않고 반찬 위주로 차려지던 부모님의 밥상은 그의 요리를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다. 하지만 도쿄에서 한국의 맛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기후와 식재료의 차이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다. 한국산 깻잎과 미나리는 비싸고, 일본 미나리는 열을 가하면 한국 미나리 특유의 짙은 향이 살아나지 않는다.

고민 끝에 그는 늦봄부터 여름까지 일본에서 저렴하게 쏟아져 나오는 '시소(차조기)'를 듬뿍 넣어 지짐이를 부쳐냈다. 밋밋한 가지나물에는 유자와 풋고추로 만든 '유즈코쇼'를 버무려 냈다. 한국의 조리법과 일본의 식재료가 만나 시너지를 낸 이 메뉴들은 옹기의 시그니처다.

"처음엔 저도 일본 식재료가 낯설었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그 식재료를 즐겨 먹는 데는 다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더라고요. 단지 제가 그 맛을 몰랐던 거죠."

강 셰프는 요리를 하면서 전통은 고착되어 있는 게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일교포 1세대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야키니쿠를 만들어냈듯, 2000년대 이후 일본에 건너온 강 셰프 같은 '뉴커머(Newcomer)' 세대는 도쿄의 기후와 식재료에 적응하며 또 다른 형태의 한식을 개척하고 있다.

2023년, 강 셰프는 자신의 요리 철학과 레시피, 독특한 인생 여정을 담은 레시피북을 출간했다. 처음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땐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군대 취사병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엮어 재미있는 책을 만들자는 출판사의 설득에 마음을 움직였다. '망해도 좋다, 모든 게 추억이고 첫 번째 마스터피스를 향한 과정이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한식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책은 꽤 많은 판매액을 올렸다.

강근우 셰프가 3년 전 일본에서 펴낸 책 '예약이 안 잡히는 인기 한식당, 니시오기쿠보 「옹기」 칸 군이 직접 전수하는 부대밥: 전 취사병이 알려주는 정통 한국 요리'의 표지.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책의 성공은 그에게 또 다른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책과 방송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하게 됐고, 높아진 손님들의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한동안 입맛을 잃을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마음 공부를 거듭하며, 그는 단단하게 그 무게를 견뎌내는 법을 배웠다.


고급화보다… '깨끗하고 신선한 맛'에 충실

요즘 강 셰프의 시선은 확장이 아닌 깊이를 향해 있다. 식당이 유명해지면 비싼 산지의 고급 식재료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친한 요리사 친구의 뼈 있는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네가 산지 재료를 쓸 실력이 되느냐'는 직언이었죠. 동네에서 구할 수 있는 제일 신선한 재료로 제대로 된 맛을 내는 게 먼저라는 걸 친구 덕에 깨달았습니다. 제가 꼽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는 '오늘 사서 오늘 만든, 깨끗하고 신선한 맛'입니다. 매일 피곤해도 직접 발품을 팔아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 그게 제가 흔들리지 않고 가야 할 길입니다."

여름이면 그는 손수 육수를 뽑아 '니시오기 밀면'을 낸다. 고된 작업이지만 시판용 조미료 봉지 냉면을 까서 내는 것은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진이 적고 일본 손님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워도 '서울의 밤'이나 '문배술', 그리고 뜻있는 이들이 일본에서 빚은 막걸리 등 전통주 페어링을 고집스럽게 이어간다.

남들이 다 하는 뻔한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한식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강 셰프의 고집은 오늘날 타국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한식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강근우 셰프가 요리한 바삭한 차조기전. © KANG GEUNWOO, GENTOSHA COMICS INC. 2024
[레시피] 바삭한 차조기전
<재료> *한 장 기준
차조기 30장 (약 15g), 양파 1/8개 (약 20g), 깐 새우 2개, 부침가루 42g, 멸치다시물 55ml(없을 경우 생수로 대체), 식용유

<만드는 법>
1. 적당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볼에 부침가루 42g을 담아 준비한다.
2. 양파는 3cm 길이로 다지고, 차조기는 손으로 듬성듬성 찢어준다. 깐 새우는 5cm 정도로 큼직하게 썰어 준비한 볼에 모두 담는다.
3. 재료가 담긴 볼에 멸치다시물 55ml를 붓고, 재료가 짓무르지 않도록 가볍게 섞어 반죽을 완성한다.
4.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반죽을 올린다. 둥글고 얇게 펴서 성형한 뒤, 중불을 유지하며 굽는다.

<조리 팁>
-반죽을 처음 뒤집기 전에 굽지 않은 위쪽 면에 가볍게 식용유를 뿌려준 뒤 뒤집으면, 훨씬 바삭하고 먹음직스러운 색감의 전이 완성된다.
-전을 구울 때마다 딱 한 번 구울 양 만큼만 조금씩 반죽을 준비해서 바로 구워내야 수분이 생기지 않고 끝까지 바삭하게 구울 수 있다.

장준우 어라우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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