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에 군수지원함 파병 준비
NSC서 파병안 의결한 뒤 국회에 동의안 제출 예정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 군수지원함과 초계기(哨戒機) 등 군 전력을 파병하는 방안을 마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정·의결과 국회 비준동의안 제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3일 알려졌다. 파병이 이뤄지면, 2004년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행 이후 22년 만에 미국 요청에 의한 파병이 된다.
정부는 지난달 미국 측에도 해군의 신형 군수지원함 ‘소양함’, P-8A 해상초계기 등을 파견할 의사를 전달하고, 구체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수지원함 기항 후보지 등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파병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소양함과 P-8A 운용에는 최소 150명 안팎이 필요하다.
이처럼 구체적 검토가 이뤄지는 배경에는 최근 이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압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한국 대통령에게 이란의 비핵화 노력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으나, 그들은 ‘사양하겠다!(No thanks!)’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는 “한반도 대비 태세와 국내법 절차 등 제반 요인을 감안해 실질적, 군사적 기여 방안을 미측과 긴밀히 논의 중”이라며 최초로 ‘군사적 기여 방안’을 언급했다. 이후 약 보름 만에 파병안이 구체화된 것이다.
다만 파병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라크 파병 때는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가 두 차례나 미뤄졌고, 2020년 미국이 정세 긴장을 이유로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하자 당시 문재인 정부는 국회 비준 없이 인근 아덴만에 있던 청해부대 작전 범위를 확대했다.
청와대는 이날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자유 항행의 조속한 회복과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에 대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논의해 왔다”면서도 “관련된 사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비전투 자산 우선 파견키로… 전력 규모는 한미 협의중

우리 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3일 국방부는 “현재 논의 중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해 드릴 수 없다”며 “향후 관련 법령에 따라 절차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해외 파병을 위해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파병안을 상정하고, 국회에 비준 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 절차가 시작되면 알리겠다는 것으로, 파병 가능성이 구체화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군수지원함·초계기 지원 유력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 목적 자산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란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전투 목적이 아니다’라는 취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파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자산 중 P-8A 해상초계기는 잠수함 등 수중 위협 탐지 능력이 뛰어나다. 2024년 미국에서 6대를 인수해 지난해 7월 전력화가 이뤄진 해군 최신예 자산이다.
전투함에 유류 및 군수품을 보급·지원하는 군수지원함도 호르무즈 지원 가능성이 높다. 해군은 천지함급(4200t) 3척과 소양함급(1만1000t) 1척을 보유 중인데, 원양 작전을 위한 해상 보급 능력을 갖춘 소양함이 지원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소양함은 승조원이 140명 안팎, P-8A에는 승무원 8명을 포함해 최대 20명 안팎이 탑승 가능하다. 해상 작전 헬기도 함정과 함께 파견될 수 있다.
파병 전력의 구체적인 규모는 한미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지난달부터 합참과 해군이 함정 및 초계기 파병을 위한 구체적인 군수지원 계획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기항지 등을 파악하고, 어떤 현지 국가에 협조를 요청할지 등을 파악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트럼프 공개 비난 후 거세진 파병 압박
정부의 호르무즈 파병안 구체화 소식은 지난달 말 재개된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되는 가운데 전해졌다. 3일 이란은 미국의 우방국인 쿠웨이트 내 미군기지를 공격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파병 기간을 조용히 연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년까지 전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동맹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파병 압박’ 수위도 전례 없이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현재 (파병이 최종) 결정된 것은 없지만 압박이 거센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NSC에 파병안을 상정할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빠르면 2주 내에 파병안이 NSC에 상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미국)는 3만9000명 병력을 주둔시켜 김정은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데, 이란에서 진행하는 아주 쉬운 군사작전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지난달 말에도 한국이 이란 문제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며 “이 일은 기억해 두겠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대미 투자 방식 등을 놓고 미국과 이견이 있는 상황에서 이란 문제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공개적 불만을 표현하고 있어, 한미 관계가 더 이상 악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정부 내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패싱’ 우려도 작용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한미 연합 훈련을 대폭 축소했다. 백악관은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전제 조건 없이 김정은과 대화하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이 북한에 대화 시그널을 보내는 상황이 정부의 정책 검토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 전황도 크게 바뀌지 않았고, 한미 관계에도 크게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호르무즈 파병으로 기류가 바뀐 것은 미·북 대화 재개 움직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며 ‘코리아 패싱’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파병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하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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