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들 뛰어노는 제주도… ‘제2의 고향’ 삼았죠

제주/박상현 기자 2026. 9. 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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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바꾼 우리] 김화진·조정훈 부부
지난달 3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국립기상과학원 내 ‘멘도롱 일터’에서 조정훈 기상과학원 연구관 가족이 활짝 웃고 있다. 멘도롱 일터는 직원들이 업무를 보면서 아이도 돌볼 수 있도록 놀이방처럼 꾸민 공간이다. 왼쪽부터 아내 김희진씨, 하민·이솔, 조 연구관, 유준. /박상현 기자

“꼭 태어난 곳만 고향이란 법 있나요? 제주에서 아들 셋 낳고, 집도 지었으니 이제 우리 식구에겐 이곳이 ‘제 2의 고향’입니다.”

2014년 서울 동작구 기상청사에 있던 국립기상과학원이 제주 서귀포로 터를 옮겼다. 도심 한가운데서 태풍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남쪽 끝으로 직장 주소가 바뀌었다. 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의 직장도 서울에서 제주로 옮겨갔다. 연구직 공무원 조정훈(48)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문제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10살 연하 여자친구를 두고 가야 하는 것. 1년 반 정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 오던 이들은 2017년 결단을 내렸다. 결혼하고 제주에서 살기로 한 것이다. 조씨는 “처음 제주행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뿌리를 내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조정훈·김화진(38) 부부는 제주에서 세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 서울에서 일하던 아내 김씨가 결혼 후 제주의 한 민간 연구소에 취업하면서 9년째 맞벌이 중이다.

맞벌이에 아무 연고도 없다 보니 부모·형제보다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다. 부부는 제주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2022년 셋째 이솔(4)이 태어났을 때를 꼽았다. 둘째 유준(7)이 태어났던 2019년, 장모님이 출산 예정일에 맞춰 제주에 내려와 첫째 하민(8)을 봐줬다고 한다. 셋째가 태어날 때도 둘째 때처럼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출산 예정일을 열흘 앞두고 새벽 3시에 진통이 온 것이다. 아내 김씨는 “진통보다도 당장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했다. “둘째 출산 때 알게 된 지인이 ‘혹시라도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면 연락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어요. 흔쾌히 집까지 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셨고, 그 사이에 병원에 가 출산할 수 있었어요.”

부부가 처음부터 세 아이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제주’라는 환경이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집 가까이 있는 오름에 올라 뛰어놀고, 바닷가에서는 모래놀이를 하거나 소라게와 조개를 주우며 자랐다. 서귀포는 일 년 내내 날씨가 따뜻해 야외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시간도 많다. 남편 조씨는 “우리 부부 모두 형제가 있고 성인이 된 지금도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있어 적어도 두 명은 낳고 싶다고 생각했었다”며 “첫째, 둘째를 키우면서 제주의 자연이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셋째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가족·친척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직장 동료와 주변 사람들이었다. 기상과학원에는 조씨처럼 제주에 연고가 아예 없는 직원이 많다. 육아 시간을 쓰는 데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과학원 차원에서도 젊은 연구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육아휴직이나 휴가를 장려하고 있다. 작년 초엔 방학 때 아이 맡길 곳이 없는 직원들이 자녀와 함께 출근할 수 있도록 청사 안에 ‘맨도롱 일터’라는 돌봄방도 만들었다. 남편 조씨는 “제주에 내려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이런 배려와 이해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육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에 완전히 정착한 것은 집을 짓게 되면서다. 공무원 임대주택 거주 기간이 3년 정도 남았을 때 이사할 집을 찾던 부부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남편 조씨가 아내에게 농담처럼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냥 땅을 사서 집을 지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땅을 사면 제주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기에 부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하지만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첫째, 둘째를 보며 결심을 굳혔다. 마음에 드는 땅을 샀고, 셋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본격적인 집 설계에 들어갔다. 자재비가 급증하면서 집 짓기를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원하던 모습으로 집을 완성했다. “우리 집 얼마나 지어졌나 볼까?” 공사 기간 동안 부부는 퇴근 후 아이들과 함께 매일 공사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봄이면 마당에 아이들이 고른 꽃을 심고, 여름에는 간이 수영장과 에어바운스를 펼치고, 가을에는 텐트를 쳐 캠핑하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지내요. 우연히 내려오게 된 제주가 이제는 세 아이가 자라고 우리 부부가 직접 지은 집이 있는 ‘고향’이 된 거죠.” 부부는 “적어도 아이들이 다 커서 대학에 가기 전까진 제주가 우리 가족의 터전”이라고 했다.

물론 제주살이의 단점도 있다. 첫째와 둘째는 요즘 큐브를 빨리 맞추는 ‘스피드 큐빙’에 빠져 있다. 아이들이 관련 자격증을 따고 싶어 하는데 제주엔 이를 발급해주는 곳이 없다고 한다. 서울과 달리 영화나 연극, 뮤지컬 같은 문화생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부는 “제주라는 지리적 한계 때문에 제주살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 이상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있다”고 했다. 남편 조씨는 “특히 국립기상과학원이 제주에 있다 보니 젊은 연구원들이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낯선 곳에서 아이까지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부담 때문에 주저한다면 그런 걱정을 조금 내려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연고지 아닌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와 이웃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제주라는 좋은 환경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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