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타고 귀순한 '반공 아이돌' 이웅평…'15억6000만원' 보상금 한 푼도 안 쓴 이유(꼬꼬무)

박선하 2026. 9. 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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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아이돌'로 불리며 15억6000만원이라는 막대한 귀순 보상금을 받아 화제가 됐던 이웅평.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3년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의 삶을 조명했다.

특히 방송에서는 이웅평이 귀순 당시 받은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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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평 아내 "남편은 힘든 삶…사회에 보탬되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출처:'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MHN 박선하 기자) '반공 아이돌'로 불리며 15억6000만원이라는 막대한 귀순 보상금을 받아 화제가 됐던 이웅평. 그가 생전 보상금을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남겨둔 사연이 공개됐다.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83년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의 삶을 조명했다.

1983년 2월 25일 북한 전투기 조종사였던 이웅평은 자신이 몰던 미그-19 전투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귀순 후 기자회견에 나선 그는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남한으로 넘어왔다고 밝혔다.

당시 일각에서는 북한이 내려보낸 첩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그러나 이웅평은 북한의 전술 작전 계획과 격납고 위치 등 군사 기밀을 공개했고, 그가 몰고 온 미그-19 전투기 역시 큰 관심을 받았다.

정부는 이웅평에게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인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약 2000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액수였다. 이웅평은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임명돼 군 생활도 이어갔다.
출처:'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대중적인 인기도 상당했다. '반공 아이돌'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이웅평을 보기 위해 여의도광장에 150만명이 운집했으며, 한 해 공식 행사만 900회가 넘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나게 된 배경에는 가족사가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친척이 남쪽으로 향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아버지가 숙청을 당한 것. 아버지는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 가족은 끝이다. 네 살길을 찾아라. 여기에 있으면 네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아들에게 경고했다.

남한에 정착한 이웅평은 박선영 씨와 만나 1984년 결혼했다. 하지만 새로운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안전 문제로 공군 관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부부는 집 안에서 도청장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관사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웅평은 남한에 정착한 뒤에도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에게 귀순을 권유하는가 하면, 남파된 간첩들을 직접 만나 전향을 설득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던 중 이웅평은 간경화를 앓게 됐고 간이식을 받으며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특히 방송에서는 이웅평이 귀순 당시 받은 15억6000만원의 보상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공개한다. 훗날 통일이 되면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돈을 고스란히 남겨뒀던 것이다.

아내 박선영 씨는 "남들은 남편이 쉽게 비행기 타고 넘어와서 대접 잘 받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힘든 삶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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