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의 무게여 안녕] 누가 더 노력했는지 하늘이 다 안다

장미란 용인대 교수·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6. 9. 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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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땐 긴장감 싫었는데 이젠 그리워
포기 안 하고 ‘좋은 승부를 하는 법’은
“너도 나도 준비한 거 다 하자“는 마음
”대~한민국!" 응원에 무거운 바벨 번쩍
‘잘한다’ 격려 한마디가 선수에겐 큰 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최고의 응원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일본에서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선수 시절 이맘때면 전국체전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느라 늘 긴장 상태로 보냈다. 몸과 마음을 굳어지게 하던 그 긴장감이 싫었는데 이제 그 시간이 그립다.

일러스트=이철원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은퇴 후 후배 경기를 응원하러 간 빙상장에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다른 종목 경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역도 최중량급 경기는 늘 마지막 날 열리기 때문에 후배 경기를 챙겨볼 여유가 없었다. 빙상장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역도장과는 온도부터 달랐고 선수와 관중이 낯설게 다가왔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 쓱쓱 하는 얼음 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코너 돌다 넘어질라, 다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두 눈을 가리기도 했지만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이 부러웠다. 그 순간 현역 시절 만난 분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우~ 내가 경기 보는데 하도 힘을 줘서 다음 날 몸살 걸린 것처럼 몸이 무거웠어” “에휴~ 바벨 들어 올리는데 허리 다칠까 봐 보질 못했어” 등등. 그렇듯 나도 마음으로 같이 힘을 쓰며 그들의 경기를 응원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선수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직접 느낀 장소는 사우나였다. 지방으로 훈련을 가면 근처 사우나에 가게 되는데 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범상치 않은 근육량의 여성들이 단체로 가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나는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배에 잔뜩 힘을 주고 뱃살이 없는 사람처럼 다녀야 했다. 내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시선들에 신경이 쓰였다. 그곳에선 반가움을 말과 행동, 미소로 다양하게 표현하셨는데 제일 먼저 “고생이 많다”며 이온 음료를 사주셨고, 마사지를 해준다며 승모근을 주물러 주시기도 했다.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나중엔 “더 세게 해주세요” 하며 등을 대기도 했다. 어찌나 크게 웃으시던지 그 웃음소리에 내 기분도 좋아졌고, 세계 최고의 힘을 가진 여성의 마사지도 받아보시라며 주물러드리겠다고 하면 “안 된다” “힘을 아껴야 한다”며 거절하셨다. 그 따뜻한 말과 사랑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해서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생각했다.

역도 선수를 하며 가장 큰 자부심은 그 어떤 선수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늘 받는 질문이 있었다. 관심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경기에 대한 부담이 있지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격려와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된다. 비인기 종목 중 하나인 역도에 관심을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나는 아시안게임에 3번 출전했다. 첫 출전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 선수와 큰 기록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기에 ‘아시안게임 징크스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유쾌하지 않았지만 선수는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나. 그럼에도 아시안게임에서 배운 것이 많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선 ‘좋은 승부를 하는 법’을 배웠다. 상대가 실수하길 바라는 불안한 마음을 버리고, 너도나도 준비한 만큼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는 담대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경기에 임하니 세계신기록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발휘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디선가 경기장에 나타나 “대~한민국!”을 외친 교민들이셨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전폭적으로 응원해 주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많은 복을 누렸고 지금까지도 좋은 에너지가 되고 있다. 그 사랑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여러 대회에서 만족스러운 기록을 냈다.

(위부터)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5㎏급에서 금메달을 딴 장미란. 제93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여자 일반부에 출전한 장미란. 2012 런던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르기 전 기도하는 모습. /조선일보DB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법을 배웠다. 아시안게임 전에 세계선수권이 있어 두 달 동안 두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대회 5연패 달성과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한 도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훈련 중 허리를 다쳤고 열흘 넘게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출전을 포기하려 했고 트레이너 선생님과 상의하는데, 뭐가 그렇게 아쉽고 서러운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한 말은 “미란아, 가능해. 할 수 있어”였다.

결심을 다지고 다음 날부터 통증 관리에 더 집중하며 조금씩 훈련을 시작했다. 맨몸으로 자세 연습을 했고 조금 나아지면 바를 잡고 연습하며 무게를 조금씩 늘려 움직였더니 경직돼 있던 몸이 빨리 풀리는 것 같았다. 튀르키예 안탈리아로 가는 직항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5연패 도전 앞에 비행시간을 핑계 대고 싶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해 시차 적응을 하며 시합에 임했는데 목표 기록의 90%를 달성하며 3위를 기록했다. 간절하던 5연패는 못 했지만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살면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을 수 없는데 아시안게임을 준비한다고 세계 대회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겠지만 내 마음은 달라졌다. 기록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

지금도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당시의 결연한 마음을 꺼내어 되살린다. 지금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도 ‘내가 느꼈던 수많은 상황과 감정을 느끼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번쩍 들어 올리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보내며 더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도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된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뜨거운 응원과 격려다. 응원은 관중석에서 끝나지 않고 선수를 움직이는 힘이다, 잘한다는 말은 더 잘하게 만들고, 반대로 무심한 말은 자신감을 꺾는다. 우리 모두 최고의 응원을 보내자. 선수들은 준비됐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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