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H.J.Freaks·오덕페이트까지…과나 신곡 ‘진짜 오타쿠’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은 까닭

유튜버 과나가 이끄는 밴드 산사람의 노래 ‘진짜 오타쿠’가 서브컬처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노래 제목 그대로 영상에는 각 분야의 ‘혼모노’들이 등장한다. ‘혼모노’는 일본어 ‘ほんもの(本物·진짜)’에서 나온 말로, 한국 인터넷에서는 특정 분야에 깊이 빠진 ‘진짜 오타쿠’를 가리키는 은어로도 쓰인다.
‘진짜 오타쿠’는 요즘 애니메이션 몇 편을 보고 자신을 오타쿠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어디서 오타쿠를 자처하느냐”고 따지는 내용의 코미디송이다. 그런데 이 농담이 서브컬처 이용자들에게 특히 강하게 먹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상 속 오타쿠를 배우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장면마다 실제 그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군지 아는 사람에겐 등장하는 순간부터 경악이 시작된다.
영상에는 40명이 넘는 서브컬처·인터넷 문화권 인물들이 출연한다. 이 가운데 루즌아, 레바, 박지, 한라감귤, 단투, 웅성, 카라미, H.J.Freaks, 김영구, 박성균, 전경민, 오디디, 조매력, 와나나, 오덕페이트 등 15명은 뮤직비디오 마지막 크레딧에서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와 초기 인터넷 만화 문화의 계보다. 루즌아는 정식 웹툰 데뷔 전후 카툰연재갤러리에 180편이 넘는 만화를 올린 작가다. 박지 역시 정식 데뷔 전 디시인사이드에서 ‘자살 소년’을 연재했다. 레바는 카툰연재갤러리와 인터넷 만화 문화에서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단투와 와나나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은 웹툰과 인터넷 방송을 오가며 오랫동안 서브컬처 이용자들에게 얼굴을 알려왔다.
한라감귤은 더 직접적이다. 2016년 디시인사이드 HIT갤러리에 올라간 그의 ‘프리파라갤러리 정모하는 만화+외전’은 조회수 15만여회, 추천 700여개를 기록했다. ‘프리파라’ 팬들이 실제로 모이는 모습을 소재로 한 만화다. 뒤늦게 오타쿠 캐릭터를 만든 유명인이 아니라 관련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흔적 자체가 남아 있는 셈이다.
웅성과 카라미는 장르가 또 다르다. 웅성은 온라인에서 ‘라멘괴인 웅성’으로 통한다. 정보보안 분야에서 일하면서 십수년간 일본 라멘을 파고든 인물로, 라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가게뿐 아니라 일본 라멘의 종류와 역사까지 꿰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미는 유희왕 쪽의 ‘진짜’다. 국내 최대 규모 유희왕 대회인 KCS 우승 경력이 있다. 동시에 라멘에도 깊이 빠져 웅성과 함께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오타쿠’를 애니메이션 팬만이 아니라 한 분야를 비정상적일 만큼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라는 원래 의미에 가깝게 확장한 캐스팅이다.
H.J.Freaks(본명 김현모)가 나타나는 순간에는 일본 인터넷 문화를 오래 들여다 본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전설적인 인물이 된 베이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보기술 매체 ASCII.jp는 이미 2011년 그를 “니코니코동화에서 가장 유명한 베이시스트”라고 소개했다. H.J.Freaks는 2006년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니코니코동화에서 활동했다. 애니송과 보컬로이드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해 보았다’ 문화의 초창기를 실제로 지나온 인물이다.
영상에 일본어 가사와 일본식 가라오케 자막, 과거 니코니코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연출이 등장하는 가운데 H.J.Freaks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패러디와는 차원이 다른 고증이 된다. 당시 문화를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제작진이 어디까지 알고 이 영상을 만들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다.
오디디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특촬물 문법을 코미디 영상으로 옮겨온 크리에이터다. 일본어로 애니메이션풍 영상을 만들고 가면라이더 같은 일본 특촬물을 패러디해왔다. 조매력은 중학생 시절부터 인터넷 게임방송을 시작한 초기 인터넷 방송 세대에 속한다. 와나나 역시 웹툰과 게임·인터넷 방송 문화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그리고 오덕페이트가 등장한다.
2010년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 ‘페이트’를 사랑하는 ‘십덕후’로 소개돼 당시 한국 사회에 ‘오타쿠’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던 인물이다.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은 해당 방송을 한국에서 ‘오타쿠·오덕후’라는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퍼지는 데 영향을 미친 사례로 분석하기도 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캐릭터 상품을 모으는 일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오덕페이트가 방송에 등장했던 2010년만 해도 오타쿠는 TV에서 기이한 사람으로 구경시키는 대상에 가까웠다. 그런 시대를 상징했던 당사자가 16년 뒤 ‘진짜 오타쿠’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한 셈이다.
영상 곳곳의 소품과 연출도 오래된 오타쿠 문화의 기억을 건드린다. 방을 빼곡하게 채운 만화책과 피규어, 코스프레 행사, 다키마쿠라, 응원봉과 오타게, 오래된 인터넷 동영상 같은 저화질 화면, 일본식 가라오케 자막이 연이어 등장한다. 한국의 PC통신·인터넷 동호회 문화에서 일본 니코니코동화와 애니송 문화, 2000년대 후반 인터넷 방송과 TV가 오타쿠를 소비하던 풍경까지 여러 시대의 기억이 뒤섞여 있다.
이 때문에 서브컬처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반응의 핵심도 “고증을 잘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순간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에 일종의 암호가 성립한다. 프리파라를 아는 사람에게 한라감귤이, 유희왕 이용자에게 카라미가, 니코니코동화 세대에게 H.J.Freaks가 갖는 의미는 서로 다르다. 각자가 자기 영역의 ‘네임드’를 발견하는 방식이다.
과나가 산사람 활동을 위해 별도로 만든 유튜브 채널을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다. 산사람 채널은 신곡 공개를 전후해 한때 유튜브에서 정지됐다가 복구됐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신고 때문이라는 주장 등 여러 추측이 나왔지만 유튜브가 정지와 복구 사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진짜 오타쿠’가 서브컬처 이용자들에게 특히 통하는 이유는 오타쿠를 바깥에서 관찰해 만든 콘텐츠가 아니라는 데 있다. 카툰연재갤러리, 프리파라, 유희왕, 라멘, 특촬, 니코니코동화, 초기 인터넷 방송, 그리고 한때 TV가 ‘십덕후’라고 불렀던 인물까지 실제 그 문화를 지나온 사람들이 영상 안으로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소 기괴한 오타쿠 코미디다. 아는 사람이 보면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저 사람까지 데려왔어?”라는 말이 나오는 캐스팅쇼다. ‘진짜 오타쿠’라는 제목이 단순한 노래 제목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16463?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17913?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21411?sid=102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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