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땅의 신께 “내 가족 살아만 있게 해달라”…끝없는 탑돌이[네팔 대홍수 현장 르포]
“혼자선 슬픔 감당 못해 모여든 것”

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네팔 카트만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스와얌부나트 불교 사원 입구.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 향 피우는 냄새와 기름 타는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지난달 26일 대홍수 발생 이후 주요 도로와 통신망이 끊기면서 현장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스와얌부나트 사원으로 모여들어 사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
사원 중앙에는 흰색 돔과 황금 첨탑으로 이뤄진 대탑, 스투파(봉분형 구조물)가 있다. 황금 첨탑에 새겨진 부처의 눈 아래로 파랑(물), 노랑(땅), 빨강(불), 초록(바람), 흰색(허공) 깃발 수백장이 바람에 나부꼈다. 다섯 가지 색은 우주를 구성하는 5개 원소이자 5명의 부처, 5명의 타라 보살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스투파에 둘러 있는 원통형 기도 바퀴 ‘마니차’를 돌리며 시계 방향으로 탑 주변을 걷는 ‘코라 순례’를 진행했다. 마니차를 돌리며 걸으면 공덕이 쌓이고 좋은 카르마(업)가 들어온다고 믿는다. 5년째 사원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라즈 파리야(27)는 “원래도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이번 대홍수 이후엔 수천명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기도하러 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발길은 유난히 파란색 부처, 노란색 부처, 타라 보살이 있는 쪽에 오래 머물렀다. 수만 스레드(32)도 파란색을 상징하는 아촉불이 있는 쪽에 이마를 대고 기도를 올렸다. 수만은 “삼촌 가족이 라수와에 살고 있었는데 연락이 끊겼다”며 “어제 삼촌네 마을 사진을 보니 마을 전체가 진흙더미에 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길이 끊겨 갈 수도 없다”며 “물과 땅을 관장하는 부처님 앞에서 삼촌 가족이 살아만 있어달라 빌고 있다”고 했다.
사원의 등 공양 장소에선 노란 기름이 담긴 황동 잔 수백개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등 공양 관리인 락수미 사케(55)는 “사람들이 다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며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비는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말했다.
스투파 옆 ‘하라티 마’ 사원에도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네팔 불교에서 하라티 마는 전염병을 막고 아이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네팔어로 ‘아지마’(할머니이자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네팔에서는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면 이곳을 찾아와 기도를 올린다.
하라티 마 사원에서 기도하던 단바 두르(58)는 굳은 표정으로 제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바는 “일곱 살 손녀가 실종됐다”며 “하라티 마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신이니, 손녀가 살아만 있어달라고 빌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원 안쪽에서는 스님들이 사망자와 실종자를 위해 불경을 외웠다. 펨바 라마 스님(62)은 “실종자들이 살아 있다면 길을 찾아 돌아오길 바라고, 이미 숨을 거뒀다면 차가운 흙탕물에서 벗어나 평온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라젠드라 부다사레 스님(45)도 “너무 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가족과 집을 잃었다”며 “혼자서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라고 했다.
광장 곳곳에서는 신자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찬불가인 ‘버전’을 불렀다. 노래와 연주로 망자의 넋을 기리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했다. 라즈는 “네팔(NEPAL)에는 ‘끝없는 평화와 사랑’(Never Ending Peace And Love)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며 “서로를 위해, 그리고 네팔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카트만두 |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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