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먹고 사람 된 '들쥐', 그저 그런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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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증명서, 학적부, 병적 기록부. 컴퓨터에 기록된 건 싹 다 위조 가능. 차라리 옛날에 종이에 직접 적어 놓던 시절이 좋았던 거다. 시간이 지나 쌓인 먼지는 조작이 불가능하거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에서 형사 순용(이규형)은 사건을 추적하며 막내 형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들쥐>가 어떻게 전통설화의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현재의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변주할 수 있게 됐는가를 알려준다.
그래도 이러한 현대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대중적인 장르 문법 안에서 풀어내고, 그것도 전통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건 <들쥐>가 꽤 야심찬 작품이라는 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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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출생증명서, 학적부, 병적 기록부. 컴퓨터에 기록된 건 싹 다 위조 가능. 차라리 옛날에 종이에 직접 적어 놓던 시절이 좋았던 거다. 시간이 지나 쌓인 먼지는 조작이 불가능하거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에서 형사 순용(이규형)은 사건을 추적하며 막내 형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대사는 <들쥐>가 어떻게 전통설화의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현재의 현실감 있는 이야기로 변주할 수 있게 됐는가를 알려준다.
전통설화에서 똑같은 얼굴을 한 들쥐의 등장은 그 얼굴의 주인공이 버린 손톱을 먹고 변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변주한 <들쥐>는 소설가 문재(류준열)의 정체성을 뺏기 위해 성형을 한다. 그렇게 외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얼굴을 갖춘 미스터리한 존재 '들쥐'는 이제 문재의 신분을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바꿔놓는다.

특히 디지털로 핸드폰을 열고, 계좌 거래를 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그 정체성을 빼앗긴 문재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투명인간 같은 사람이 된다. 심지어 자신이 살던 집마저 들쥐에 의해 매매되고, 자신이 오히려 '가짜 행세'를 한다는 누명까지 쓰게 된 문재는 이제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입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극화된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신분 세탁과 도용은 종종 범죄화되어 등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스마트폰 하나가 해킹되면 자신이 하지 않았던 일들도 자신이 한 것처럼 모두 뒤집어쓰는 일들이 실제로도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보안 문제는 늘 이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불안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 극화된 사건이 그저 황당무계한 허구로만 보이지 않는 실감을 주게 된다.

<들쥐>는 이런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정체성 위기(?)의 현실을 가져와 잃어버린 신분을 되찾으려는 이의 필사적인 고군분투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은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욕망'을 꺼내놓는다. 문재가 신분을 빼앗긴 피해자로 보였던 관점은 이 부분에서 방향을 틀어 그 역시 들쥐의 정체성을 빼앗았던 가해자라는 게 밝혀진다.
'다른 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신분 도용이나 세탁보다 더 심각한 건, 스스로 진짜 나를 지워버리고 가짜이지만 되고픈 나를 진짜처럼 세워놓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 강박적이고 정신병적인 상황은 진짜와 가짜를 점점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문재가 그 절박한 추적 끝에 결국 마주하게 되는 자신은 거울 속의 그가 아니다. 이미 깨진 거울 속의 자신인 것이다.

정체성 위기에서 나아간 현대인들의 정체성 혼돈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강박이기도 하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일종의 퇴보라고 여겨지게 만드는 이 경쟁사회와 스펙사회의 줄세우기 속에서 나는 끝없이 타인의 삶을 욕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의 이름으로 사회 시스템은 끝없는 자기혐오를 양산해내고 그 동력으로 굴러가려 한다. 그러니 사회가 강박적으로 요구해 나도 욕망하게 된 나와 실제 현실의 나 사이에 틈이 생길 수밖에. 정체성 혼돈은 그 틈에서 비롯된다.
괜찮은 문제의식과 이를 범죄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 속 추격전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들쥐>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정체성 위기에서 혼돈으로 나가는 그 지점에서 다소 아쉬운 면모를 드러낸다. 그 고전적인 메시지에 대한 깊이까지 나아가려 했지만, 그 메시지와 방식이 너무 익숙한 것이라 힘이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현대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대중적인 장르 문법 안에서 풀어내고, 그것도 전통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건 <들쥐>가 꽤 야심찬 작품이라는 걸 말해준다.

1인 2역을 그냥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얼굴과 대사의 톤 그리고 성격으로 구현해낸 류준열의 연기에, 꽉 짜인 범죄스릴러의 긴장 속에서도 살짝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설경구의 연기 앙상블이 작품을 끝까지 빠져서 보게 만든다. 여기에 이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형사 순용 역할의 이규형의 수사극이 작품을 쫀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전통설화라는 한국의 로컬 색깔이 분명한 요소가 어떻게 현대적인 장르물로 재구성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한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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