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를 유혹한 ‘죽음’ vs 400년 사랑한 ‘불멸’···가을 뮤지컬 ‘다크 로맨스’ 대전

올가을 뮤지컬 무대에서 강력한 ‘다크 로맨스’ 대작이 맞붙는다.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드라큘라>가 개막한 데 이어 블루스퀘어에서 <엘리자벳>이 막을 올리면서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서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은 장수 흥행작으로, 탄탄한 팬덤을 지닌 두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비슷한 시기 무대에 오르며 뮤지컬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두 작품은 19세기 유럽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짙은 고딕 미학과 화려한 낭만주의를 무대에 펼쳤다는 공통분모를 지닌다. 초현실적 존재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도 닮았다. 하지만 사랑과 파멸을 풀어내는 궤적은 다르다. <엘리자벳>이 황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황후가 ‘죽음’의 유혹에 맞서다 자유를 찾는 여정이라면, <드라큘라>는 400년간 죽지 못한 남자가 영생의 저주를 끝내고 사랑을 완성하려는 핏빛 순애보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뜨린 황후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을 기반으로 과감한 상상력을 보탠 작품이다. 화려한 황실 생활 이면에 감춰진 엘리자벳의 고독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매혹적인 존재로 의인화된 ‘죽음’(토드)과의 위태로운 관계를 통해 풀어낸다.
역사적 사실과 판타지적 상상력을 결합한 이 작품은, 억압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는 엘리자벳과 ‘죽음’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어린 시절 처음 마주한 ‘죽음’은 평생 그림자처럼 엘리자벳의 곁을 맴돌며 그를 유혹하고, 엘리자벳은 이를 거부하면서도 점차 ‘죽음’이 약속하는 자유에 이끌린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엘리자벳>은 <레베카>와 <모차르트!> 등을 만든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대표작이다.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 공연됐다.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은 무대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함과 암울한 시대상을 구현한 회전 무대와 중앙이 솟아오르는 무대 장치, 거대한 죽음의 다리 등 기존의 웅장한 연출은 유지하면서 초상화와 무대 디자인, 배경 영상 등을 새롭게 손봤다. 이전 시즌이 화려한 기둥과 장식으로 황실의 위엄을 부각했다면, 이번에는 철창과 가시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곳곳에 배치해 억압받는 엘리자벳의 심리를 보다 직관적으로 시각화했다.
클래식부터 록까지 넘나드는 음악은 작품의 백미다. 황실의 굴레에 맞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엘리자벳의 의지를 폭발시키는 ‘나는 나만의 것’은 한 번쯤 들어봤을 대표 넘버다. 비운의 황태자 루돌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듀엣 ‘그림자는 길어지고’, 민중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밀크’, 암살자 루케니가 황후를 둘러싼 허상을 조롱하는 ‘키치’ 등 명곡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엘리자벳 역에 린아·이지혜·이지수, ‘죽음’ 역에는 카이·서경수·고은성이 캐스팅됐다. 세 명의 ‘죽음’이 모두 이번 시즌 처음 합류해 관심을 모은다. 여기에 초연 때부터 ‘죽음’을 연기한 김준수와 새로운 엘리자벳 박지연이 합류한다.
400년을 기다린 사랑…<드라큘라>

뮤지컬 <드라큘라>는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가 1897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한 여인만을 생각한 드라큘라 백작의 애절한 사랑을 담아낸 작품이다. 오랜 세월 끝에 다시 만난 사랑을 되찾으려는 드라큘라와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는 여주인공 미나의 로맨스,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을 둘러싼 서스펜스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드라큘라에게 영생은 축복이 아니라 끝없는 상실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드라마틱한 음악은 이 비극적 운명을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젊음을 되찾은 드라큘라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Fresh Blood’, 미나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Loving You Keeps Me Alive’, 뱀파이어의 세계를 강렬하게 펼쳐내는 ‘Life After Life’ 등이 대표 넘버다.


웅장하면서도 관능적인 세계를 눈앞에 펼쳐놓은 무대는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한국 프로덕션은 2014년 초연 당시 대본과 음악을 제외한 무대와 의상 등을 새롭게 창작한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됐다. 무대를 감싼 붉은 조명 아래 4중 회전 턴테이블과 거대한 기둥 장치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트란실바니아의 고성부터 안개 낀 런던의 기차역, 음산한 정신병원과 고풍스러운 저택까지 관객을 단숨에 이동시킨다.
이번 시즌 드라큘라 역에는 신성록·김준수·전동석·고은성, 미나 역에는 조정은·박지연·김환희가 캐스팅됐다.

두 작품을 잇는 연결고리가 또 있다. 이번 시즌 초반 <드라큘라>에서 새로 합류한 고은성은 약 한 달간 드라큘라로 무대에 선 뒤 <엘리자벳>의 ‘죽음’ 역으로 무대를 옮겼다. 죽지 못하는 불멸의 존재에서 인간을 유혹하는 초월적 죽음으로 변신한 셈이다. 김준수 역시 <엘리자벳>에 합류할 예정이다. 한 배우가 그려내는 서로 다른 죽음을 비교해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지난 7월10일 막을 올린 <드라큘라>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10월18일까지, <엘리자벳>은 지난달 16일 첫 무대를 선보인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1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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