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역대학을 살리는 길인가

김상진 기자 2026. 9.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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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대학의 경쟁을 약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거점국립대학을 서울대 수준의 국가대표 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그 첫 단계에서 경북대를 제외했다면, 적어도 왜 경북대가 제외됐는지 국민과 지역사회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교육부 설명에 따르면 국토공간 대전환과 같은 범정부 정책과의 정합성, 지역산업 기반과 기업의 이전·투자 여건, 대학의 준비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정부는 지역사회의 의혹을 정치적 반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평가위원 구성과 평가 기준, 대학별 평가 결과, 탈락 사유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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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명예교수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명예교수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대학의 경쟁을 약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해 온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첫 지원 대상으로 부산대·전남대·충남대가 선정됐다. 이들 대학에는 2030년까지 5년간 대학별로 매년 약 700억 원 규모의 재정이 투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발상 자체보다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고, 왜 특정 대학에는 막대한 국가재정을 집중하는가에 있다.

좋은 대학을 더 많이 만들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재와 자원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지역 거점국립대학을 지역산업과 연계된 연구·교육의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목표에도 일정한 명분이 있다. 실제 교육부도 이번 사업을 지역 성장산업과 연계한 교육·연구 혁신의 거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을 발전시키는 것과 대학을 국가가 일정한 틀에 맞추어 재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과나무에 달린 열매의 크기가 모두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대학 역시 역사와 학문적 전통, 교수진의 역량, 연구 성과, 학생의 구성, 지역산업과의 연계, 동문 네트워크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대학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정한 몇 개의 대학에 거액을 집중하여 '국가대표 대학'을 만들겠다는 방식은 자칫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이라는 고등교육의 기본 원리를 국가 주도의 배분 체계로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이번 선정에서 경북대학교가 제외된 것은 대구·경북 지역사회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경북대는 단순히 지역에 존재하는 하나의 국립대가 아니다. 오랜 기간 대구·경북의 인재를 배출해 온 대표적인 거점국립대학이며, 지역의 산업·연구 생태계를 떠받쳐 온 핵심 기관이다. 그런데 정부가 거점국립대학을 서울대 수준의 국가대표 대학으로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그 첫 단계에서 경북대를 제외했다면, 적어도 왜 경북대가 제외됐는지 국민과 지역사회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정부는 적어도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부산대·전남대·충남대인가. 왜 경북대는 아닌가. 대학별 평가점수는 얼마였는가. 평가항목별 점수 차이는 무엇인가. 평가위원은 누구였으며 이해충돌 가능성은 없었는가. 지역산업과 국토공간 정책의 정합성이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보다 얼마나 중요한 평가항목이었는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 취지를 내세워도 선정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특히 경북대의 과거 글로컬대학 평가 결과와 이번 선정 결과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 정부는 더욱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단순히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평가의 근거와 절차를 공개해야 한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이 문제를 지역 간 정치적 감정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어느 지역이 어느 정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식의 해석은 교육정책을 정치의 하위 영역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은 경북대에도, 부산대에도, 전남대에도, 충남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 구성원인 교직원이나 학생들의 의견이 시장을 잘못 뽑은 탓이라고 한다면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을 정권의 성향에 따라 보상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오늘은 한 지역의 대학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내일은 다른 지역의 대학이 같은 방식으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선정 기준은 단순한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만을 평가한 것이 아니다. 교육부 설명에 따르면 국토공간 대전환과 같은 범정부 정책과의 정합성, 지역산업 기반과 기업의 이전·투자 여건, 대학의 준비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또 8개 부처 정부위원과 외부전문가단이 평가에 참여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산업 정책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인가.

평가 기준의 핵심인 두 가지는 같지 않다. 대학은 정부의 산업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하청기관이 아니다. 대학의 본질은 정치권력이나 정부의 단기적인 정책 목표를 따라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학문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있다. 지역산업과 대학이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역산업의 현재적 필요에 대학의 학문적 미래를 종속시키는 순간 대학은 산업정책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서울대 10개'라는 표현 자체가 품고 있는 모순이다. 서울대와 똑같은 대학을 열 개 만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학마다 지역과 역사와 학문적 강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울대 수준의 교육·연구 여건을 여러 지역에 확보하겠다는 뜻이라면 '서울대 10개'라는 구호보다 훨씬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대학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이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대학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대학의 평등이 아니다. 각 대학이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 대학의 공공성이다. 정부가 정말 '서울대 10개'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서울대를 복제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부산대는 부산대답게, 전남대는 전남대답게, 충남대는 충남대답게, 경북대는 경북대답게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대학의 미래를 설계할 수는 있지만, 대학의 미래를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번 선정에서 경북대가 제외된 이유를 둘러싼 논란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부는 지역사회의 의혹을 정치적 반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평가위원 구성과 평가 기준, 대학별 평가 결과, 탈락 사유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수천억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학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지역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또 다른 지역 갈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진정한 시험대는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공정하게 기회를 배분하고, 얼마나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존중하느냐에 달려 있다경북대의 탈락이 단순한 한 대학의 탈락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결정이 정말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정부는 그 기준을 국민 앞에 공개하라. 그리고 그 기준이 정치가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미래를 향하고 있음을 증명하라.그것이 정부가 말하는 공정이고, 지역균형이며, 대학혁신일 것이다.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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