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없는 AI 드라마 선 넘었다…중국 TV 황금시간대까지 진출[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6. 9.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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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카메라도, 조명도, 세트장도 모두 없습니다.

이젠 100% AI로 만든 장편 드라마 시리즈까지 TV 방송사를 통해 중국 전국에 방영되기 시작했어요.

이 드라마가 유독 화제인 건 회당 40분, 총 30부작짜리 드라마를 100% AI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내로라하는 방송사인 후난TV의 황금시간대(저녁 8시)에 정규 편성돼 전국적으로 방영됐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AI 드라마를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만들어낸 나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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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카메라도, 조명도, 세트장도 모두 없습니다. 필요한 건 데이터와 프롬프트뿐.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드라마 이야기이죠.

아직 우리에겐 낯선 AI 드라마 산업의 성장세가 놀랍습니다. 중국에서 1~2분짜리 AI 숏드라마가 온라인에서 대유행한 지는 좀 됐는데요. 이젠 100% AI로 만든 장편 드라마 시리즈까지 TV 방송사를 통해 중국 전국에 방영되기 시작했어요. 무섭기까지 한 중국 AI 드라마의 진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AI가 이제 안방 시청자를 위한 장편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후난TV 제공
*이 기사는 9월 2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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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10분의 1, 제작기간 4개월

이틀 연속 상한가. 중국 미디어 기업 망고엑설런트미디어 주가가 8월 31일에 이어 9월 1일에도 가격제한폭(20%)까지 급등했습니다. 이 기업이 제작한 30부작 시리즈 ‘후서유기(后西游记)’가 8월 31일 TV로 첫 방영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죠.

후서유기는 명나라 말기에 나온 서유기의 공식 속편 소설을 드라마화한 작품인데요. 이 드라마가 유독 화제인 건 회당 40분, 총 30부작짜리 드라마를 100% AI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내로라하는 방송사인 후난TV의 황금시간대(저녁 8시)에 정규 편성돼 전국적으로 방영됐기 때문입니다. AI로 제작한 숏드라마(마이크로드라마)가 넘쳐나는 중국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죠. 중국 영상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후서유기 30화를 제작하는 데 걸린 기간은 4개월.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제작비는 기존 드라마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한 사극 판타지 드라마는 편당 제작비가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도 많은데요. 배우도, 세트장도, 특수효과도 없으니 제작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한 거죠.

후난TV는 중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성급 위성 방송국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상파급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송사다(국토가 넓은 중국은 지상 안테나로는 전국 방영이 불가능해서 통신위성을 이용). 후서유기를 제작한 망고엑설런트미디어는 후난TV의 자회사로, 후난TV의 독자적인 유료 OTT 플랫폼 ‘망고TV’에서도 후서유기를 공개한다. 사진은 후난TV 본사의 모습. 위키피디아
제작사에 따르면 후서유기 제작의 전 과정-대본, 스토리보드, 캐릭터 모델링, 장면 렌더링, 화면 연출-은 AI로 이뤄졌습니다. 망고엑설런트미디어가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인 AI 생성 콘텐츠 제작 플랫폼 ‘망고링창(芒果灵创)’을 이용했죠. 특히 이번 제작엔 망고링창에 연결된 여러 AI 모델 중에서도 중국 바이트댄스의 ‘시댄스(Seedance) 2.0과 2.5’가 사용됐어요. 참고로 시댄스 2.0은 올해 초 출시됐을 때, 단 두 줄짜리 프롬프트로 생성한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실감 나는 격투 영상’으로 미국 할리우드를 경악하게 만든 적 있고요. 올해 7월 출시된 시댄스 2.5는 이전 버전보다 성능을 한층 끌어올린 최정상 스펙의 AI 모델입니다.

이 AI 드라마 제작에 투입된 인력은 약 100명. 이들은 대본 관리, 프롬프트 조정, 화면 수정과 콘텐츠 검증을 담당했어요. AI로 생성된 화면을 보고 직접 주석을 다는 식으로 인간이 피드백을 제공하면, 그게 축적돼 점점 더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다는군요.

‘AI로 클릭 한 번에 뚝딱’까진 아니지만, 단 100명이 4개월 만에 기존 제작비의 10분의 1 비용으로 30부작 장편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다니. 솔직히 잘 믿기진 않는데요. 그럼 공개된 첫 회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어떨까요. 현재로선 평이 반으로 갈립니다.

일단 시각적 연출 면에서는 뛰어나다는 호평이 나와요.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 신선과 마귀가 맞붙는 장면, 화과산의 수많은 원숭이 무리 같은 판타지 장면을 세밀하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죠.

후서유기는 첫 방영 뒤 시각효과는 뛰어나지만 AI 느낌이 강하고,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늘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은 망고TV를 통해 공개된 후서유기 예고편의 한 장면.
하지만 캐릭터의 표정이나 동작이 어색하다는 혹평도 만만찮습니다. 시청자 댓글에선 “모든 원숭이가 똑같이 생겼다”, “AI 플라스틱 같은 느낌”이라는 지적이 나왔고요. AI 영상이 가지는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거부감을 준다는 평이 있어요.

무엇보다 드라마 스토리 자체가 너무 유치하고 전개가 늘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는데요. 그래도 후난TV에 따르면 같은 시간대 위성TV 채널 중 실시간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첫 시도인 것 치고는 출발이 상당히 좋죠.

드디어 AI 드라마가 돈이 된다?

중국은 AI 드라마를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만들어낸 나라이죠. 데이터아이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서 공개된 AI 숏드라마는 무려 12만2000편에 달합니다. 하루 평균 1300편 이상, 조회수가 높은 피크 시간대엔 거의 20초마다 새로운 AI 숏드라마 1편이 업로드된다는데요.

이런 중국에서도 TV로 방영되는 장편 AI 드라마의 탄생은 큰 전환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게 두 가지 면에서 그런데요.

하나는 기술 측면. 생성형 AI 특성상 갖가지 오류가 발생하는 걸 완전히 막을 방법은 없죠. 실제로 AI 숏드라마에서도 인물이나 사물 모양이 왜곡되는 경우는 흔했습니다. 주인공 키가 갑자기 줄어들거나, 손이 하나 더 생긴다거나, 머리카락이 뜬금없이 배경 속 산에 달라붙어 있는 식이었죠. 다만 숏드라마는 1~2분으로 짧고, 화면 전환이 빠르기 때문에 소소한 오류는 시청자들이 그냥 넘어가 줬는데요.

하지만 TV로 방영되는 안방용 장편 드라마라면 시청자들의 기대 수준이 훨씬 높잖아요. 40분짜리 드라마인데 등장 인물의 체형이나 의상이 수시로 바뀐다면, 몰입이 바로 깨져버리고 채널이 돌아가겠죠. 그만큼 세밀하게 보정을 해야 하니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영상이 제대로 나올 때까지 AI 생성 작업을 거듭할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자칫 토큰 비용 때문에 제작비가 폭등하는 수가 있어요.

회당 40분짜리 장면 드라마를 AI로 제작하는 건 1~2분짜리 숏드라마 제작과는 난이도 면에서 차원이 다른 일이다. 후난TV 제공
그래서 후서유기 제작사는 캐릭터의 뼈대를 미리 세워서 인물의 일관성을 끌어올리는 ‘인체 골격 제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또 만약 손가락 모양이 이상하면 손가락 부분만 수정하는 방식으로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절감했죠. 그동안 AI 영상 생성은 제비뽑기에 비유될 정도로 운이 중요하게 좌우하는 작업이었는데요. 이를 제작자가 통제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셈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새로운 수익화 모델. 그동안 중국 AI 숏드라마 제작사의 수익원은 사실상 온라인 플랫폼의 광고 수익뿐이었죠. 문제는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AI 콘텐츠의 홍수로 인해 플랫폼으로부터 받는 수익배분 단가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1만 조회수 당 800~1000위안을 받던 게 이젠 100위안 수준으로 10분의 1토막 나버렸거든요.

아무리 실사 드라마보다 제작비를 90% 절감했다고는 하지만, 이래 가지고는 적자를 면하기가 어렵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공개 6개월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AI 숏드라마는 신작 77편 중 1편꼴. 나머지 98.7%는 적자인 겁니다. 산업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는데, 일부 대형 제작사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적자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죠. 완전히 레드오션인데요.

그런데 후서유기 사례처럼 AI 드라마가 더우인(틱톡)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벗어나 주류 TV 방송과 유료 구독 OTT 서비스에까지 진출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온라인 숏폼 광고와는 레벨이 다른 주류 미디어 시장의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제작사 입장에선 TV 방송과 온라인, 양쪽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겠죠. 후서유기 방영 소식에 제작사인 망고엑설런트미디어뿐 아니라 다른 AI 콘텐츠 관련 기업(중광톈쩌, 보나필름그룹, 환루이센추리) 주가까지 덩달아 급등한 이유입니다. 앞으로 다른 방송사들도 AI 장편 드라마에 투자하게 될 거란 기대감이 높아지는 거죠.

물론 이런 수익 모델의 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현실화된 건 아닙니다. 후서유기가 제법 화제를 모으고는 있지만, 아직 자체적인 광고 유치 단계엔 진입하지 않은 ‘시범 방영’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죠. 혹시 앞으로도 계속 시청률이 잘 나온다면 PPL 광고가 붙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우리는 대신 무엇을 잃을까

온라인 틈새시장에 머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주류 시장까지 넘볼 정도가 되어버린 AI 드라마 산업. 어딘지 좀 으스스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이거죠. 그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 일자리는 어쩌지?

실제로 중국의 인기 있는 세로형 숏드라마 산업은 이미 완전히 AI 제작 중심으로 판이 뒤바뀌었습니다. 올해 1분기 새로 공개된 숏드라마 중 95%가 AI로 제작됐다고 하죠. 그리고 이로 인해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은 건 숏드라마에 출연해 온 배우들인데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한때 실사 숏드라마 전성시대를 누렸던 배우들이 줄줄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까칠한 재벌 2세 역할을 주로 맡았던 배우 장샤오레이는 이제 생계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고추 농사를 짓고 있고요. 한 달 내내 촬영 스케줄이 빼곡했던 배우 준린은 지난 6월엔 촬영일이 단 7일로 줄어들었다고 한탄했죠.

2년간 200편 넘는 숏드라마에서 주로 까칠하게 구는 재벌 2세 CEO 역을 맡았던 장샤오레이는 올해 초 바이트댄스의 시댄스 2.0 공개 이후 섭외가 뚝 끊기자 고향으로 돌아가 채소 농사를 짓고 있다. 장샤오레이 SNS
요즘 중국 숏드라마 제작사는 배우를 섭외하면서 ‘라이선스 협력’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배우의 외모, 목소리, 연기 스타일을 사들여서 AI에 학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한 중국 배우는 FT 인터뷰에서 AI 복제본 제작에 동의하지 않으면 섭외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정말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다”고 말했죠.

생각해 보면 인간 배우가 없다는 건 우리가 드라마의 일부라고 생각해 온 많은 게 사라진다는 뜻이죠. 미세한 떨림과 호흡 같은 감정적 교감, 배우가 자신만의 경험으로 해석해 낸 캐릭터의 깊이, 애드리브 같은 즉흥적 결과물이 모두 증발됩니다. 그래도 과연 괜찮은 걸까요. 제작비가 10분의 1이라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AI의 눈물은 디지털로 만들어졌지만, 배우의 눈물은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겁니다. 온기와 향기가 있죠.” 중국의 유명 배우이자 베이징 인민예술극원 원장인 펑위안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I 기술이 인간 배우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걸 강조하면서 한 말이었는데요. 인간의 온기와 향기를 지키기엔 자본의 논리가 너무 냉혹한 건 아닌지, 솔직히 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2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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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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