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기후리포트] 바다가 땅속으로...농업용 지하수 ‘염해 경보’
하동 금성 간척지 109㏊ 염류장해
한반도 연안 해수면 36년간 11.5㎝ 상승
가뭄·과잉취수 겹치면 바닷물 침투 빨라져
해안선 아래의 밀물

간척지는 바다를 막고 물을 빼 농경지로 만든 곳이다. 비가 충분하면 토양의 염분이 아래로 씻겨 내려간다. 가뭄에는 수분이 증발하는 동안 소금 성분이 남아 농도가 높아진다. 땅속에서는 다른 변화도 겹친다. 비가 적게 오면 지하수를 채우는 민물이 줄어든다. 농업용 취수까지 늘면 육지에서 바다로 향하던 지하수 흐름이 약해진다. 바닷물이 해안 지하수층 안쪽으로 이동하고, 관정 아래의 짠물이 위로 솟을 조건도 커진다.
전문가들은 하동의 간척지 피해는 지하수의 해수침투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본다. 가뭄은 지상에서는 토양의 염분을 농축하고, 지하에서는 바닷물을 밀어내는 민물을 줄이기 때문이다. 해안선 아래에서는 민물의 높이가 바닷물의 경계를 가른다.
관측망 127곳 '심각'…제주에서는 농작물 피해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해수침투 관측망 287곳 가운데 127곳, 44.3%가 가장 높은 '심각' 단계로 나타났다. 전남이 54곳으로 가장 많고 전북과 충남이 각각 15곳, 경남 14곳이다. '심각'은 지하수의 전기전도도가 3,000μS/㎝를 넘는 단계다. 물속에 녹은 이온이 많을수록 전기가 잘 통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이 단계의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127곳을 모두 바닷물이 침투한 농경지로 볼 수는 없다. 전기전도도는 광물이나 다른 오염물질에도 영향을 받는다. 염소이온과 지하수위, 취수량을 함께 분석해야 원인을 좁힐 수 있다.
장기 관측에서는 수위와 염분 변화가 함께 나타났다. 연세대와 NASA 연구진이 한국농어촌공사의 2022년 측정지점 225곳을 분석한 결과 31%에서 지하수위가 계속 낮아졌고 38%에서는 전기전도도가 장기간 상승했다. 전라·경남 등 남서부 해안의 해수침투 취약성도 높았다.
관측값이 농업 피해로 이어진 국내 사례는 제주 서부다. 한경·대정에서는 2009년과 2011년, 2017년 농업용 관정 26곳의 염분 농도가 높아졌고 7농가가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 2017년 한경면 고산리에서는 짠 지하수를 사용한 농경지의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이 말라 죽었다.
제주 서부의 연평균 강수량은 1,144㎜로 동부 1,963㎜보다 적다. 지하수 함양률도 36.5%로 동부 41.6%보다 낮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겨울·봄철 지하수 보충량 감소와 가을철 농업용수 사용 증가를 해수침투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지층 구조도 단순하지 않다. 2018년 한국환경과학회지에 실린 제주 서부 해안 연구에서는 한 시험 관정에서 지표 아래 16m까지 민물, 16~50m에서 짠물, 다시 50~60m에서 민물이 분포했다. 관정의 깊이와 취수 구간에 따라 물의 염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취수량을 줄인 모의실험에서는 가뭄기 농업용 지하수 사용을 20~40% 줄였을 때 해수침투량은 2.91~4.79% 감소했다. 지하수위가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면적은 15.62~24.42% 줄었다. 농업용 지하수와 염지하수를 함께 줄이면 해수침투량 감소 폭은 25.69~49.65%로 커졌다.
제주도는 2020년 고산~무릉 일부 지역을 지하수자원 특별관리구역에 포함해 신규 개발을 제한했다. 물이 부족해진 뒤 관정을 늘리는 대신 지하 민물의 수위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고흥·신안이 보여준 해안 농업의 약점…민물 수위가 짠물을 가른다
2021년 전남 고흥만 간척지에서는 담수호의 염도가 높아져 벼 80㏊가 피해를 입었다. 농업용수 염분 농도는 0.44%까지 올라갔다. 당시 노후 배수갑문 누수와 바닷물 수위가 크게 높아지는 시기가 겹치면서 해수 유입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국농어촌공사는 해수 유입과 토양 염분 가운데 어느 쪽이 직접 원인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신안에서는 지하수 자체에서 해수의 영향이 조사됐다. 신경선·고동찬·이정훈 연구진이 2017년 한국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지하수 163곳 가운데 74곳의 전기전도도가 500μS/㎝를 넘었다. 이 가운데 40곳은 염소이온과 중탄산이온 비율이 2.8 이상으로 '심한 영향' 또는 '매우 심한 영향'에 해당했다.
바닷물의 직접 영향을 나타내는 나트륨·염소형 지하수는 암반층에서 35.3%, 충적층·풍화대에서 52.5%를 차지했다. 해수침투 과정에서 나타나는 칼슘·염소형도 각각 44.1%와 45%였다. 연구진은 해안과의 거리와 취수량, 조석을 주요 변수로 꼽았다.
지역마다 염분이 들어온 경로도 다르다. 고흥은 담수호의 염도가 올라 농업용수에 문제가 생겼고, 신안에서는 해안 지층을 통한 바닷물의 영향이 지하수 성분에서 나타났다. 민물에 염분이 섞일수록 농업에 쓸 수 있는 물은 줄어든다.
그 원리는 두 물의 밀도 차이에서 출발한다. 바닷물은 민물보다 2.5% 무겁다. 이상적인 해안 지층에서는 민물 수위가 해수면보다 1m 높으면 민물과 바닷물의 경계가 해수면 아래 40m에 놓인다. '기벤-헤르츠베르크 관계'다. 실제 지층에는 모래와 점토, 암반 균열이 뒤섞여 있어 40대1 관계가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민물 수위가 낮아질수록 바닷물이 들어오기 쉬워지는 원리는 같다.
관정에서 많은 물을 퍼 올리면 주변 지하수면이 깔때기처럼 내려간다. 관정 아래에 있던 짠물이 위로 솟는 '업코닝(Upconing)'도 생긴다. USGS 연구에서는 낮거나 중간 정도의 취수 범위에서 취수량이 증가할수록 뽑혀 나오는 물의 염분 농도가 거의 비례해 높아졌다.

바다는 오르고 민물은 줄었다…9.7㎞ 파고든 바닷물
한반도 주변 바다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이 전국 21개 조위관측소를 분석한 결과 국내 평균 해수면은 1989~2024년 11.5㎝ 상승했다. 연평균 3.2㎜다. 11.5㎝ 상승했다고 지하 바닷물이 같은 거리만큼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침투 범위는 지층과 강수량, 지하수위, 취수량에 따라 달라진다. 두 변화의 속도도 다르다. 해수면은 수십 년에 걸쳐 오르지만 가뭄과 집중 취수는 한 계절에도 지하수위를 낮춘다. 육지에서 바다로 흐르던 민물이 약해지면 지하수의 흐름도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바뀔 수 있다.
앞으로 바다 쪽 압력은 더 커진다. 국립해양조사원은 고탄소 시나리오에서 우리나라 주변 평균 해수면이 2050년 25㎝, 2100년 82㎝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도 2050년 20㎝, 2100년 47㎝ 상승한다.
장기간 과잉취수가 이어졌을 때의 결과는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밸리가 보여준다. 농업용 지하수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면서 해수침투가 수십 년간 확대됐다. 1990년대에는 얕은 지하수층의 바닷물 영향권이 해안에서 9.7㎞ 안쪽까지 들어왔다. 8,090㏊의 농경지 아래 지하수가 농업용으로 쓰기 어려울 정도로 짜진 지역도 형성됐다.
USGS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까지 바닷물 영향을 받은 면적은 지하 55m 수층에서 1만1,435㏊, 지하 122m 수층에서 6,930㏊로 늘었다. 1944~2013년 지하수 저장량도 6억8,950만㎥ 감소했다. 오랜 기간 새로 채워지는 양보다 많은 물을 퍼 올린 결과다.
더 큰 문제는 회복 시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트루로에서는 취수로 관정 아래의 짠물이 솟으면서 주변 관측정의 염소 농도가 높아졌다. 1980년 11월 펌프를 멈추자 민물과 짠물의 경계는 다시 내려갔지만 염소 농도는 천천히 감소했다.
바닷물이 지층 사이까지 들어가면 새로 공급되는 민물이 이를 밀어내야 한다. 깊고 물의 흐름이 느린 지층에서는 짠물이 관정에 도달하는 데도 여러 해가 걸린다. 취수를 줄인 효과 역시 늦게 나타날 수 있다. 해수침투는 피해가 나타난 뒤 되돌리기보다 민물 수위를 지켜 사전에 막는 편이 훨씬 빠르다.
바다가 오르는 속도와 물을 뽑는 속도
하동에서는 가뭄 속에 109㏊의 염분 피해가 발생했다. 제주에서는 짠 농업용 지하수가 농작물 피해로 이어졌다. 고흥에서는 고염도 농업용수가 벼에 피해를 줬고, 신안에서는 여러 관정에서 바닷물의 영향이 조사됐다. 경로는 달라도 민물이 줄어들 때 위험이 커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가 부족하면 토양의 소금을 씻어낼 물과 지하수를 채울 물이 함께 감소한다. 농업용 취수까지 늘면 바닷물을 밀어내던 지하수위가 더 낮아진다. 해안의 짠물은 육지 쪽으로 이동하고 깊은 곳의 짠물은 관정을 향해 올라올 수 있다.
현재 전국 해수침투 관측망의 44.3%가 '심각' 단계다. 한반도 연안 평균 해수면은 지난 36년 동안 11.5㎝ 높아졌다. 두 수치가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서해안에서는 지하수위 하강과 전기전도도 상승이 장기 관측에서도 함께 나타났다.
관리 시점도 앞당겨야 한다. 관정별 취수량과 지하수위, 강수량, 전기전도도와 염소이온을 함께 추적하면 염분이 급격히 높아지는 수위를 찾을 수 있다. 가뭄기에는 그 수위에 닿기 전에 취수량을 줄여야 한다.
해수면은 계속 오르고 있다. 가뭄은 육지의 민물을 더 빠르게 줄이고 있다. 땅속 민물을 지키지 못하면 미래의 밀물은 해안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농업용수와 경작 가능한 땅의 경계까지 육지 쪽으로 밀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