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반사이익…실리콘밸리 VC 큰손들이 몰려온다

국정근 기자 2026. 9. 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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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억달러(약 137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탈(VC) 안드리센 호로위츠(a16z)가 지난해 말 서울에 사무소를 냈다. 세쿼이아캐피탈·코슬라벤처스·제너럴캐털리스트 등 실리콘밸리 톱티어 VC도 7월 국민연금과 손잡으며 나란히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톱티어 VC가 한국을 정조준한다는 사실이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운용자산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뉴욕 VC 콜라보레이티브펀드도 아시아 법인을 세우고 6월 서울에 사무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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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모 a16z 크립토 아시아태평양 GTM 총괄 /사진 제공=a16z
900억달러(약 137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탈(VC) 안드리센 호로위츠(a16z)가 지난해 말 서울에 사무소를 냈다. 세쿼이아캐피탈·코슬라벤처스·제너럴캐털리스트 등 실리콘밸리 톱티어 VC도 7월 국민연금과 손잡으며 나란히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이 굴리는 돈을 합치면 3000억달러(약 460조원)에 이른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톱티어 VC가 한국을 정조준한다는 사실이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서울에 짐 푼 a16z

a16z는 지난해 12월 가상자산(크립토) 투자 부문으로 서울에 아시아 첫 사무소를 냈다. 네이버·폴리곤랩스를 거친 박성모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사무소를 이끈다. 크립토로 시작한 거점이지만 역할은 빠르게 넓어졌다. 불과 6개월 뒤인 올해 6월 a16z는 이 사무소를 인공지능(AI)·소비재 등 전 영역을 아우르는 창구로 확대했다.

투자는 진행형이다. a16z는 로보틱스·바이오헬스 등 한국계 기업 20여곳에 투자했다. 블록체인 기반 지식재산권(IP) 플랫폼 PIP랩스(누적 투자유치 1900억)도 그중 하나다.

a16z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운용자산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뉴욕 VC 콜라보레이티브펀드도 아시아 법인을 세우고 6월 서울에 사무소를 냈다. a16z에 이어 미국 VC의 서울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 막히자 열린 한국 문

이런 행보의 배경에는 미중 패권 전쟁이 있다. 미국 자본에게 중국은 한때 가장 큰 투자 시장이었다. 미국 금융 데이터 플랫폼 피치북에 따르면 2021년 454억달러(약 69조원)에 달했던 미국 VC의 대중국 투자는 2022년 145억달러(약 19조원)로 3분의1 토막이 났다. 미국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첨단기술 투자를 제한한 여파다.

갈 곳을 잃은 미국 자본은 대체 투자처를 찾아 나섰다. 그 눈길이 한국에 닿았다. 마침 산업의 무게 중심도 옮겨가고 있었다. '피지컬 AI'로 불리는 로봇·자율주행이 퍼지면서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구현할 제조 역량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중국 공장을 뺀 공급망에서 이 조건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았다.

국내 대표 VC인 IMM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공장을 배제할 경우 한국의 탄탄한 제조업·조선업 인프라가 가장 훌륭한 대체국으로 조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와 로봇 같은 피지컬 AI는 실물 생산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만큼 반도체·조선에서 쌓은 한국의 제조 역량이 다시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큰손들도 같은 지점을 본다. 마틴 카사도 a16z 제너럴파트너는 "한국의 하드웨어와 제조 역량을 미국의 소프트웨어·AI와 결합한다면 한미 양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재에 시장까지 겹쳤다

큰손들이 실제로 사는 것은 사람이다. 비노드 코슬라 코슬라벤처스 창업자는 "벤처투자는 결국 인재를 따라간다"며 "한국은 인재강국이어서 투자를 계속 늘리겠다"고 했다. 그는 "아직 밝힐 수 없는 로보틱스 분야 비밀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다"고도 했다.

헤먼트 터네자 제너럴캐털리스트 대표는 자동화 로봇 공장을 한국의 강점으로 제시했다. 배리 에거스 라이트스피드벤처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한국을 세계적인 기술 인재와 제조 기반을 갖춘 국가로 평가했다.

시장의 탄탄한 저변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은 성인 3명 중 1명이 가상자산을 보유한 세계 2위 가상자산 시장이다. a16z가 서울을 아시아 첫 크립토 거점으로 삼은 배경이기도 하다.

K-브랜드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반도체를 넘어 K-뷰티·K-푸드로 국가 브랜드의 위상이 올라오면서 글로벌 자본은 한국을 단순한 내수 시장이 아니라 소비 브랜드를 동남아로 실어 나르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삼고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블랙스톤이 지난해 미용기업 준오헤어의 지분 70%를 4000억원에 사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K-뷰티 인기를 업은 준오헤어는 이미 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시아로 매장을 넓히고 있다.
판 키우는 정부

민간의 관심은 정책으로 옮겨붙었다.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밋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은 a16z를 포함한 실리콘밸리 톱티어 6곳과 투자협력서(MOU)를 맺었다.

행사에 참석한 토니 플로랜스 NEA 대표는 영상 인공지능(AI) 기업 트웰브랩스에 투자한 경험을 소개하며 리벨리온 등 한국 AI 스타트업에 대한 추가 투자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판을 넓히고 있다. 해외 창업 인재의 국내 유입을 가로막던 비자 제도를 손질하고 2027년까지 2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를 조성해 딥테크·글로벌 진출·회수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노용석 중기부 1차관(장관 대행)은 글로벌 수준의 벤처·스타트업 환경 조성과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약속했다.

박성모 a16z 한국 총괄은 "한국 창업가들의 잠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더 많은 창업자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글로벌 VC 6사가 참석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밋업 참석 VC 개요. /자료 제공=중소벤처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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