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정 피터슨솔루션코리아 대표 "ESG 정보는 투자자 손실 가능성 찾는 조기경보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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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결국 자본의 힘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큰 자본을 가진 기관투자자는 그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
하수정 피터슨솔루션코리아 대표는 "투자에서 자본은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한 돈이 아닌 투자자가 어떤 기업을 선택하고 어디에서 자금을 거둬들이느냐에 따라 기업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 대표는 "미래세대의 자산을 운용하는 장기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낮은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대표는 개인투자자 역시 투자 대상을 고를 때 수익률뿐 아니라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소액주주가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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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ESG] 여성 리더
<인터뷰25> 하수정 피터슨솔루션코리아 대표

“기업은 결국 자본의 힘에 반응한다. 그렇다면 큰 자본을 가진 기관투자자는 그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
하수정 피터슨솔루션코리아 대표는 “투자에서 자본은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한 돈이 아닌 투자자가 어떤 기업을 선택하고 어디에서 자금을 거둬들이느냐에 따라 기업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수백조, 수천조 원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라면 그 영향력은 개별 기업을 넘어 시장 전체로 확장된다고 강조했다.
하 대표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지속가능발전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북유럽의 지속가능발전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연구하면서 ‘기업은 무엇에 반응해 실제 행동을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주목해 왔다. 규제나 사회적 요구도 기업을 움직이지만 자본시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신호 중 하나는 투자자의 선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 대표가 이끄는 피터슨솔루션코리아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피터슨 그룹의 한국 법인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피터슨은 전 세계 80여 개국에 120여 개 지사를 두고 약 6000명의 임직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과 정부·비영리단체 등 4만 곳 이상의 고객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ESG와 탄소, 국제 인증, 공급망 실사 등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글로벌 규제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하 대표가 주목한 것은 노르웨이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 이른바 노르웨이 국부펀드다. 약 3200조 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가 어떤 기업에 투자하고, 투자 이후 무엇을 요구하며, 어떤 경우에 자금을 회수하는지를 추적하면 거대 자본이 기업을 움직이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고 봤다.
최근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는 손,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펴낸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그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단순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세계 최대 큰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재무성과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권, 지배구조 등 기업의 장기 위험을 투자 판단에 반영하고, 투자한 이후에는 적극적인 주주로서 기업에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 대표는 “투자자는 좋은 기업을 찾아 돈을 넣는 데서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며 “투자한 기업에 위험이 있다면 질문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결국 투자자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가 노르웨이 국부펀드에서 발견한 핵심 투자 원칙은 ‘많이 얻는 것보다 적게 잃는 것’이다. 하 대표는 “미래세대의 자산을 운용하는 장기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가장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낮은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SG는 착한 기업 찾는 기준 아닌 기업 리스크에 주목”
하 대표가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도 ‘기업의 위험’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과거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ESG 문제가 실제 기업의 의사결정과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ESG 문제가 불거진 기업의 지분을 실제로 처분한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투자자가 떠날 기업을 사전에 알아낼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는 이후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고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 내역과 투자 대상 기업의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기업의 재무정보와 ESG 등 비재무정보를 함께 분석하면서 어떤 기업에서 투자가 늘어나고, 반대로 어떤 위험이 나타났을 때 자본이 빠져나가는지를 살펴봤다. 이를 토대로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투자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투자·매각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른바 ESG와 재무정보 등 70여 개 지표를 활용해 국부펀드의 투자 패턴을 분석한 모델로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ESG를 기업의 ‘착함’을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라 투자자가 장기적인 손실 가능성을 찾아내는 위험관리 도구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 대표는 “돈을 잘 버는 회사라도 환경이나 인권 문제로 어느 순간 큰 사고가 발생한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이 위험해지는 것”이라며 “기업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결국 투자자의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당장은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라도 환경오염이나 아동노동, 산업재해, 부실한 지배구조 등의 문제가 누적되면 어느 순간 기업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ESG 정보는 재무제표에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기업의 잠재 위험을 포착하는 일종의 ‘조기경보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최근 개정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에 ESG 요소가 추가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ESG라는 표현만 넣어서는 부족하고 투자자가 어떤 요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는지가 상당히 명확하다”며 “한국 역시 ESG를 추상적인 원칙으로 두기보다 실제 투자 판단과 기업 관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석유 수익을 미래세대 금융자산으로 전환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또 다른 특징은 문제가 있는 기업을 발견했다고 곧바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과 대화하고 개선계획을 요구한 뒤 변화를 지켜본다. 문제가 개선되면 투자를 유지할 수 있지만 기업이 응답하지 않거나 개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최종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다.
하 대표는 이를 “말썽을 피운 학생을 바로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어떻게 고칠 것인지 계속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제까지 개선할 수 있나’,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계획을 가져와 달라’고 계속 묻지만 그래도 개선하지 않거나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때 투자금을 뺀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장기투자 원칙은 석유 수익을 미래세대의 금융자산으로 전환한다는 설립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단기적인 성과보다 기업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는 이유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얻은 자원 수익을 현재 세대가 모두 소비하는 대신 금융자산으로 전환해 미래세대와 나눈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장기적 운용 철학 때문에 단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보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기후변화와 인권, 지배구조 등 ESG 위험을 함께 살핀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의결권까지 넘겨선 안 돼”…자본의 힘에는 책임 따라야
하 대표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국민연금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상장사의 대주주로,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를 넘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는 특히 자산운용을 외부에 맡기는 것과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자산운용 일부를 외부에 맡기더라도 의결권은 직접 행사한다. 투자 대상 기업의 주주총회에 앞서 어떤 안건에 찬성하고 반대할지와 그 근거까지 공개하는 방식이다. 하 대표는 국민연금도 막대한 지분을 보유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주주권 행사와 설명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인터뷰에서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표결 방향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과 비교해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기업의 건전한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생각이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지배구조를 비롯한 위험요인을 중시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글로벌 흐름에서 뒤처지면 결국 해외의 ‘큰손’들이 한국 시장에서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 대표는 이러한 책임이 거대 기관투자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도 액수가 작을 뿐 스스로를 하나의 국민연금이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따지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가 투자한 기업이 성장하는 것이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권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한 개인의 지분은 작더라도 소액주주들이 연대한다면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 대표는 개인투자자 역시 투자 대상을 고를 때 수익률뿐 아니라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소액주주가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자와 ESG를 넘어 기업의 지배 구조에도 주목한다. 그가 개발한 국부펀드 투자·매각 예측 모델에는 여성 임원 비율과 독립 임원 비율, 임직원 간 보수 격차 등 비재무 지표도 포함돼 있다.
비슷한 규모의 기업을 비교해 어떤 기업은 투자가 확대되고 다른 기업은 줄어드는 이유를 분석하면 독립 임원이나 여성 임원 비율 같은 지배구조 요소가 기업의 위험을 판단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CEO 모임에 가도 40명 가운데 여성이 두 명이나 세 명에 그친다”며 “중간관리자까지는 올라오는데, 임원이 되는 순간 여성 비율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단순히 여성 리더의 숫자를 늘리는 데서 그쳐서도 안 된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다양한 관점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여성 이사가 기존 남성 중심 이사회 구성원과 다른 경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의사결정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대표가 경험한 북유럽 기업문화 역시 이러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북유럽과 네덜란드 기업에서는 CEO도 직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비교적 수평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다양한 구성원이 실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르웨이 국부펀드에서 발견한 투자 원칙과 여성 리더십에 대한 생각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힘을 가진 주체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려면 권한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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