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저지른 죄 때문에 우리가 벌 받고 있다”…네팔 활동가가 전한 ‘히말라야의 절규’[인터뷰]

누가 오염시켰습니까? 누가 지구온난화를 촉발했습니까? (탄소 배출에) 기여하지 않은 우리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휩쓸려 갔고, 인프라도 파괴됐습니다.
히말라야산맥에서 시속 170㎞가 넘는 속도로 내려온 9m 높이의 흙탕물이 계곡과 마을을 덮쳤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오후 네팔과 중국의 국경 지대인 네팔 랑탕 국립공원 인근에서 시작된 산사태와 홍수는 수십분 만에 100㎞가 넘는 협곡을 쓸고 내려와 하류의 라수와와 누와코트 등을 초토화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기준 네팔과 중국 당국의 집계를 종합한 사망자는 최소 1130명, 실종자는 4432명에 달한다.
이번 재난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대규모 암석과 얼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네팔은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재난의 최전선에 있다. 지난 1일 네팔 환경단체 ‘프로 퍼블릭’(Pro Public)의 프라카시 다할(Prakash Dahal) 활동가를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현지 상황을 들었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그는 네팔 국민들이 전례 없는 재난에 충격을 받은 동시에, 녹아내리는 빙하가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는 일문일답식으로 재구성했다.
-이런 규모의 재난을 본 적 있습니까.
“이 나라 누구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지진이나 홍수로 인한 참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좁은 하천을 따라 갑자기 2억㎥의 물이 내려왔고, 물 높이는 9m까지 치솟았습니다. 큰 버스들도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떠밀려갔습니다. 정말 거대했고, 강력하고 사나웠습니다. 물뿐 아니라 진흙, 슬러지, 얼음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진흙과 잔해뿐입니다. 3~4층 건물이 있던 곳이라는 사실조차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네팔 사회는 재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많은 구호 활동이 진행 중입니다. 총리 주도로 각계각층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고, 국제기구도 모금을 진행 중입니다. 문제는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입니다. ‘1m 앞에서 아버지가 휩쓸려가는 것을 봤다’ ‘집 전체가 사라지는 것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살이 너무 강해 붙잡고 있던 어머니, 할머니의 손을 결국 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너무 슬프고 참담해 아무 반응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악몽 같은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아무 말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재산도, 돈도, 땅도 사라졌습니다.”

-경보 시스템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까.
“일부에서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며 중국에 책임을 묻고 있지만, 증거 없이는 단정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네팔 쪽에는 국경 지점에 모니터링 시스템(수위계)이 하나뿐인데, 물살이 몰려오자 작동을 멈췄습니다. 홍수는 국경에서 트리슐리강까지 100㎞에 달하는 구간에 피해를 냈지만 하류에 있는 사람들조차 대피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경보가 아니라 홍수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굉음을 듣고 나서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물살의 속도는 시속 179㎞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달려서 이를 피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우리 단체는 유엔의 녹색 기후기금(GCF)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네팔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호 붕괴 홍수’(GLOF)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기경보 체계 등을 구축하는 사업을 2018년부터 GCF에 제안해 왔지만 승인은 지난해 7월에서야 이뤄졌습니다. 승인이 조금만 더 일찍 됐더라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국제 사회는 히말라야 빙하호 위협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피해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 주민들도 재난이 반복될까 두려워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네팔은 북쪽에 산과 빙하가 길게 이어진 나라입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히말라야 관광으로 수입을 얻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난이 일어난 후 분명히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또 다른 위험이 있을까 불안해합니다.”
-네팔은 전 세계 탄소 배출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비중은 0.1%도 되지 않습니다. 네팔 주요 산업은 관광입니다. 대규모 공장도 별로 없고 탄소 배출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나라도, 대규모 산업국가도 아닌 우리가 기후변화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생명과 재산으로 치렀습니다. 이것은 기후정의가 아닙니다. 누가 오염시켰습니까? 누가 지구온난화를 촉발했습니까? 기여하지 않은 우리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휩쓸려 갔고, 인프라도 파괴됐습니다.”
-네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신성한 산에서 재난이 시작된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네팔뿐 아니라 티베트인과 인도인들도 히말라야를 신성하게 여깁니다. 카일라스산을 오가던 인도 힌두교 순례객들도 재난에 휩쓸렸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숭배하던 산이 공포를 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신이나 자연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연에는 자연의 방식이 있고,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국제 사회는 어떻게 네팔을 도와야 합니까.
“이미 국제사회는 협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죽은 후 애도를 표하고 구호물자를 보내는 방식에 머문다는 겁니다. 이미 사라진 생명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빙하가 녹는 것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빙하호 붕괴는 오늘이 아니더라도 6개월 뒤 혹은 내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발생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줄이는 것입니다. 국경을 넘는 모니터링 체계를 만들고, 어떤 빙하호가 불안정한지 데이터를 마련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재난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e메일에서 세계에 ‘부정의에 대한 히말라야의 절규’(Himalayan cry of injustice)를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처벌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특히 선진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많은 탄소를 배출했고 지구온난화를 가속했습니다. 네팔이 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경고가 부족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구온난화는 현실이고, 전 세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빙하를 녹이고 있고 빙하호는 커지고 있습니다. 산이 경고했고, 강이 경고했고, 학자들도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경고에 행동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네팔 정부만을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의지가 있어도 자원이 부족합니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술과 자원, 연구, 데이터가 있다면 파괴의 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인명 피해와 시설, 집의 파괴를 원하지 않는다면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재난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경보시스템 하나를 구축하는 데 7~8년이 걸려서는 안 됩니다. 네팔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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