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트럼프의 다섯 개 전선과 안갯속 한반도

홍병문 논설위원 2026. 9.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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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간 전쟁은 국제사회에 5개 전선을 각인시켰다. 전쟁 당사국 이란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과 마주하고 있는 구도다.

이란과의 전쟁 중에도 미국의 전략적 시야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5개의 새로운 전선은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윤곽이 더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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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전선 확대
지정·지경학 전선에 기술패권 경쟁도
명분 없는 전쟁에 민주주의·인권 퇴색
다극화 물결 속 관성 외교서 벗어나야
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미국·이란 간 전쟁은 국제사회에 5개 전선을 각인시켰다. 이들 전선에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전쟁 당사국 이란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과 마주하고 있는 구도다.

첫 번째 전선은 지정학 전선이다. 싸움터는 이란과 호르무즈해협인데 정작 전선은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두 곳에 갈라져 형성됐다. 중동은 실제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유혈이 낭자한 전선이다. 반면에 아시아태평양은 미래의 전쟁을 예고하는 잠재적 전선이다. 이란과의 전쟁 중에도 미국의 전략적 시야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으로 이동해 있다.

두 번째는 지경학 전선이다. 이란 전쟁은 호르무즈해협의 가치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뚜렷하게 새겼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20% 이상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이 중 중국 비중이 37% 정도로 가장 높다. 미국이 이란 문제에 개입한 배경을 두고 중국과 이란을 연결하는 ‘석유의 지정학’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원유뿐만 아니라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자재와 수출품 운송 비중도 적지 않다. 이란 전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급망 다변화라는 엄청난 숙제를 안겼다.

다음은 기술 패권 전선이다. 우크라이나·이란 전쟁에서 드론은 현대전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체인저’로 부상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등 인공지능(AI) 전력도 미국의 이란 공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국가의 방위력이 기술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들 3개의 전선은 ‘하드파워’와 연관됐지만 나머지 2개의 전선은 ‘소프트파워’의 문제다.

네 번째 전선은 민주주의·인권 전선이다. 올 1월 이란 전국에 번진 반정부 민주화 시위로 이란 신정 체제는 붕괴 위기에까지 몰렸다. 2022년 히잡 미착용 혐의로 체포된 여성의 의문사가 촉발한 인권 시위 수준을 넘어서는 대규모 민중 시위였다. 그런데 미국의 이란 공격은 이란 내 민주화 운동의 싹을 자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의 개입에 신정 체제에 저항했던 세력까지 애국심으로 역결집했다. 민주주의·인권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허울 좋은 전쟁 명분이 되레 새 전선을 부각시킨 것은 역설이다.

마지막 전선은 미국이 내세우는 ‘원톱’ 거버넌스와 이에 맞서는 다극적 국제 질서 사이에 형성된 글로벌 외교 전선이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에서 미국 주도 안보 방위 질서가 흔들리자 중동 역내 국가들은 새로운 다자 안보 협력 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파키스탄은 한 곳이 공격받으면 자국 위협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공동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이란 간 전쟁의 결과는 ‘팍스아메리카나’의 퇴조와 미국·이스라엘의 고립, 아랍 국가 간의 기존 종교적 연대와 걸프협력회의(GCC) 체제를 넘어선 각자도생 생존 전략, 유럽연합(EU)과 중견국들의 전략적 자율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5개의 새로운 전선은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윤곽이 더 뚜렷해진다. 문제는 이들 전선의 긴장감이 고조되면 미국·중국 간 양자 대결 구도가 더 명확해진다는 데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3개월 만에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다시 만나 ‘다극화’를 외쳤지만 날 선 그 목소리는 미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 주도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시대에 각국은 기존 관성을 버리며 새로운 선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은 날로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북중러 연대가 강해지는데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역할 변경 가능성을 언급한다.

안갯속 한반도 정세 속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국 중국과 밀접히 얽혀 있는 5개 전선의 한복판에서 성급한 전략적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한미 동맹 강화론, 중국 편승론, 홀로서기론 등 다양한 외교적 해법에 대한 논쟁이 무성한 이유다. 한미 동맹과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두 발로 서기론’도 주목받을 수 있지만 미중 간 깊은 골을 감안하면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과 미국이라는 2개의 든든한 바퀴로 이뤄진 동맹의 자전거에 중견국 연대와 중국이라는 각각의 보조 바퀴를 활용하는 전략도 검토해볼 만하다. 한반도의 미래가 시시각각 변하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데 기존 관성에 매몰된 전략으로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홍병문 논설위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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