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내고 왔는데 망했어요" 서울 집값 폭등에 2030 눈 돌린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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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어요. 기대했는데."
8월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법 경매법정 101호.
계속되는 집값 상승과 부동산 규제 강화에 경매로 눈을 돌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2030세대의 경매 열풍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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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규제 강화에... 청년, 경매장으로
올 상반기 경매 매수인 26.9%, 19~39세
'실거주 가능' 외곽 중저가 아파트나 빌라로
부동산 경매 열풍 지속 전망... 리스크 '주의'

"망했어요. 기대했는데."
8월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법 경매법정 101호. 강동구 암사동의 한 다세대주택(빌라·감정평가액 5억400만 원)에 입찰한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는 판사의 명령에 이날 경매 진행 물건 중 가장 많은 입찰자인 11명이 일어섰다. 법정에 있던 김유지(26)씨의 입에선 탄식이 나왔다. 유지씨는 이날 처음으로 부동산 경매 입찰에 도전하는 친오빠 김범준(31)씨를 따라 오전 반차를 내고 법원에 왔다. 예상외로 많은 경쟁자가 몰리면서 유지씨는 '실패'를 직감한 듯했다.
개찰 전까지만 해도 낙찰 가능성을 80% 정도로 예상하며 자신감을 보이던 범준씨의 표정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야속하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사건 최고가 입찰 가격은 4억3,607만 원입니다." 판사의 설명이 나오자마자 범준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범준씨의 입찰 가격은 3억7,000만 원. 낙찰가액보다 6,000만 원 이상이 모자랐다. 내 집 마련의 기대가 무산되는 씁쓸한 순간이었지만, 김씨 남매는 복기할 틈도 없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오후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경매 법정엔 두 사람 외에도 젊은 얼굴의 입찰자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개찰이 한참 진행될 즈음엔 2030 입찰자가 10명가량 앉아 있었다. 가락동 빌라 경매에 도전했지만 패찰한 강지윤(27)씨도 그중 한 명이다. 강씨는 "서울 집이 너무 비싸니 최대한 싸게 사려고 방법을 알아보다가 경매를 알게 됐다"며 "오늘은 패찰했지만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좋은 기회, 좋은 집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니 아쉽진 않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집값 상승과 부동산 규제 강화에 경매로 눈을 돌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부모 찬스 없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해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기 어려운 현실. 빌라 등을 경매로 사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이들의 궁극적 목표다. 복잡하고 위험성이 높아 전문성을 갖춘 중장년들이 주로 관심을 보였던 부동산 경매 시장에 청년층이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2030 경매 열풍, 왜?

2030세대의 경매 열풍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7월 경매(임의·강제 경매로 인한 매각)로 집합건물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한 매수인은 2만619명인데 이 중 19~39세 매수인이 총 5,556명(26.9%)이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8.3% 늘어난 것으로, 특히 19~29세는 24.8% 증가해 전체 세대 평균 증가율(17.2%)을 훌쩍 뛰어넘었다. 연도별로 살펴봐도 19~39세 집합건물 경매 매수인은 2021년 5,759명에서 지난해 8,361명으로 늘어났다.
경매에 2030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①부동산 가격 급등과 ②이에 따른 정부의 규제 강화 때문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내 집 마련 수요자 입장에선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자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부동산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고 고민한 끝에 경매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서울의 전세 물량이 씨가 마르고 있는 상황도 경매를 통한 매수 동기를 자극했다. 경기 수원 소재 '마스터 경매학원' 관계자는 "최근 신규 수강생 중 절반가량이 2030세대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 건 분명하다"며 "전세가 사라지고 있으니 '차라리 집을 사버리자'며 경매로 넘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도 "신혼부부들은 주로 전세 물건을 문의했는데 4, 5개월 전부터는 매매 문의도 많아졌다"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키워드는 '실거주', '중저가'
최근 경매에 뛰어드는 2030은 '실거주 목적'이 뚜렷하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경매 시장에선 대출 규제가 덜하고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지 않아 갭 투자와 '빌라 단타'를 시도하는 젊은 입찰자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경락잔금대출(주택담보대출 격) 한도 6억 원 제한과 경락대출 시 6개월 내 전입신고(실거주) 의무를 골자로 하는 '6·27 대출 규제'가 발표된 뒤 경매시장은 현금 보유·실거주 수요자 위주로 재편됐다.
2030 매수자는 모아둔 현금이 많지 않지만, 무주택자에게 유리한 '생애최초 대출'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실거주 의무가 생긴다. 심유순 에듀윌 부동산아카데미 원장은 "지금처럼 부동산 관련 규제가 많으면 대출이 가장 중요한데, 자기 집이 없는 젊은이들은 이점이 있다"며 "적은 자본금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매 시장에서 대출을 활용해 실거주할 만한 집을 마련하려는 흐름이 보인다"고 말했다.
2030은 외곽 중저가 아파트나 빌라 매매를 주로 고려한다. 자금이 부족한 2030의 현실적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모양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경매 낙찰가율은 지난 4개월 연속 100%를 상회했다. 경매의 최대 장점이라는 '가격 메리트'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외곽지역 아파트와 빌라는 여전히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이 가능하다. 범준씨도 "서울 주요 지역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자기 돈으로 최소 3억, 4억 원은 있어야 하니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현실적 타협책으로 빌라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낙찰받은 집에 전입한 이후부터는 '몸테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현프리'로 활동 중인 노현정(24)씨는 지난해 말 강서구의 한 빌라를 주변 시세보다 20% 정도 저렴한 1억 원 후반대 가격에 낙찰받았다. 노씨는 "나름 역세권 입지와 양호한 주변 인프라, 무엇보다 더 이상 전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에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노씨의 빌라는 모아타운 추진 지역에 포함돼 있어 향후 재개발도 기대해볼 수 있다. 노씨는 "일단 실거주할 곳이 생겼으니 돈을 잘 모아서 계속 거주할지 매매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 관심 계속 전망... 위험성 우려도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2030 경매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인공지능(AI) 기반 부동산 경매 분석 플랫폼 '요이땅'이 구글 애널리틱스를 활용해 서비스 이용자 연령을 분석한 결과, 최근 3개월간 주된 이용자는 45~64세(63%)였다. 다만 18~34세도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증가 속도만 보면 젊은층이 단연 두드러졌다. 요이땅 관계자는 "젊은 이용자들은 AI 등을 통한 데이터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자체 등에서 경매 강사로 활동하는 김원영씨 등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향후 경매 물건은 꾸준히 늘어날 걸로 예상된다. 최근 경매에 쏟아지는 물건들의 등기를 보면 ①문재인 정부 시절 최대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금리 인상 등을 버티지 못한 '1기 영끌족'의 아파트 매물과 ②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깡통전세(매매가보다 전세보증금이 높은 주택) 및 역전세(신규 전세시세가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지는 현상) 문제를 겪은 빌라 매물 등이 골고루 섞여 있다.
주의할 점은 경매는 '비정상 물건'들을 다루며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경매에 뛰어들기 전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심유순 원장은 "경매가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관계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매수하면 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으니 충분히 공부한 뒤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세대가 리스크가 큰 경매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건 결국 부동산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지영 신한금융투자 부동산 전문위원은 "집값 상승의 근본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만 하면 수요는 항상 틈새를 찾는다"며 "소액으로 집에 투자할 방법은 경매밖에 없으니 청년들은 리스크가 크다는 걸 알면서도 몰려든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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