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 줄였는데… 취업하려면 AI 배워야”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는 주말 백화점처럼 붐볐다. 채용 상담을 받으려는 학생들이 대거 몰려 지나기도 힘들 정도였다. 거액의 성과급으로 큰 화제가 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부스는 상담 테이블 4개가 모두 찼고, 2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같은 날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청년 고용 시장이 갈수록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채용 박람회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이날 본지가 만난 취업 준비생들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가뜩이나 좁아진 취업문을 더 좁힐까 불안하고, AI 활용 능력 등이 새로운 ‘취업 부담’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AI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데, 취업하려면 AI 활용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 ‘이중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청년 취업 한파는 심각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7월 청년 취업자는 344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1000명 줄어 45개월 연속 감소했다. 청년 고용률도 44.2%로 1년 새 1.6%포인트 떨어졌다. 서울대 취업박람회 참여 기업 수도 2024년 134개에서 지난해 126개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100여 개에 그쳤다.

학생들은 특히 AI가 신입 일자리 자체를 줄일까 걱정했다. 증권사 취업을 준비하는 서울대 소비자학과 정모(24)씨는 “현직자와 선배들에게 과거보다 리서치 직무 신입 채용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AI 때문에 내가 들어갈 자리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수료한 김지윤(24)씨는 “마케팅 분야 취업을 준비 중인데, 마케팅에도 AI를 점점 더 많이 활용하면서 자리가 줄어들까 불안하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층(15∼29세) 일자리가 28만5000개 감소했는데 이 가운데 26만8000개(94%)가 AI 고노출 업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학력 청년층을 중심으로 실업도 증가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좁아진 취업문을 뚫으려면 AI 역량까지 갖춰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세대 반도체공학과 재학생인 최모(26)씨는 “입사 원서에서 AI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을 1000자가량 요구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를 졸업한 취업 준비생 고모(27)씨는 “상반기 지원한 한 중견 기업 채용 시험에서 AI 이해도를 묻는 객관식 시험과 프롬프트 작성, AI를 이용한 업무 처리 과제까지 나왔다”며 “자소서와 면접도 준비해야 하는데 AI 활용 역량까지 보여달라니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AI를 전공했다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석사 과정에서 이미지 인식 AI를 연구한 임모(26)씨는 상반기 AI 엔지니어·연구원 직무 20곳에 지원했지만 서류 합격은 3곳, 최종 합격은 한 곳도 없었다. 임씨는 실무 경험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올여름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인턴 10여 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는 “AI 직무여도 연구한 세부 분야와 조금만 달라지면 서류 통과조차 쉽지 않았다”며 “취업하려면 경험이 필요한데, 나 같은 신입은 대체 어디서 그 경험을 쌓아야 하나 싶다”고 했다.
AI에 대한 불안은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인 김동현(24)씨는 금융권 영업직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보통 신입 사원이 하는 간단한 업무는 AI가 대신할 수 있겠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영업직은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영업직은 계속 뽑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청년들에게 학점·자격증·인턴 경력에 이어 AI라는 새로운 스펙 부담이 생겼다”며 “청년이 AI와 함께 일하면서 첫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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