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나도 유효한 ‘카르페 디엠’… “한 번뿐인 삶, 오늘을 사세요”

“멕시코에선 틈만 나면 배우들이 춤을 췄어요. 정말 재밌었죠. 독일에선 공연 시간 95분이 너무 짧다며 3시간 20분 길이로 늘리더군요, 하하.”

대학로 NOL씨어터 우리카드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작가 톰 슐만(76)은 전 세계에 라틴어 격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열풍을 불러왔던 동명 영화(1989)의 각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고, 독립영화 ‘더블 다운 사우스’(2022) 등 10여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하거나 각본을 썼다. 2017년 미국에서 초연한 동명 연극의 희곡도 썼다. 한국은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던 ‘존 키팅’(차인표·오만석·연정훈) 선생님의 열정을 연극으로 만나는 열한 번째 나라다.
최근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만난 슐만에게 “어릴 때 키팅 같은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은 관객 후기가 많다고 전하자, 그는 “정말 영광스럽고 감동적”이라고 했다. “글을 쓸 때는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죠. 영화가 나온 지 40년쯤 됐는데, 여전히 여기 한국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제게도 정말 의미가 큽니다.”
◇“내성적인 토드, 어릴 적 내 모습”

1959년 명문 사학 웰튼 아카데미, 새로 부임한 키팅 선생의 파격적 수업이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고, 오래된 가치관과 새로운 세대의 생각이 충돌한다. 교장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차례로 책상 위에 올라선 학생들이 키팅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을 외치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직도 많은 팬이 기억한다.
그는 “극중 가장 내성적이지만 마지막에 제일 먼저 책상 위에 올라서는 토드가 어린 시절의 날 가장 닮았다”고 했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 소년이었거든요. 이 이야기를 쓴 건 어쩌면 내 안의 토드를 벗어나는 과정이었을지도 몰라요.”
실제 자신의 고교 시절 교사와, 성인이 된 뒤 만난 유명 평론가가 키팅 선생의 모델. 하지만 그는 “결국 키팅의 모든 행동과 말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키팅이 학생들에게 학교 복도의 옛날 학생들 사진을 보여주며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하죠. ‘한 번뿐인 삶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잘 생각하라, 깨어나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카르페 디엠, 무책임한 쾌락의 반대말”

30대에 시나리오를 쓰고 70대가 된 그에게도 ‘카르페 디엠’은 여전히 유효할까. 그는 “그 말만 떼어 놓아선 안 된다. 무책임한 쾌락주의와는 정반대의 말”이라고 했다. “죽음을 매일 의식하며 오늘을 잘 살되, 미래의 자신을 파괴할 정도로 무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오늘도 하루 종일 인스타그램만 스크롤했나?’ ‘내게 주어진 이 작은 선물을 정말 그렇게 쓰고 싶은가?’라고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는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며 학생들에게는 더 많은 지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웃었다. “자율과 규율의 의미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화하니까요. 지금처럼 자율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부모의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국 공연에서는 자유로운 사고를 권하는 키팅 선생과 전통을 지키려는 교장 놀런에게 비슷한 회색 톤의 정장을 입혀 단순한 선악 대립 대신 둘 모두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슐만도 “일리 있는 재해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아버지 “네 길은 스스로 찾으라”
연극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의사로 만들려는 아버지가 등장하고, 가장 큰 비극이 싹튼다. 그는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의사였고 처음엔 아버지도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한 여름 캠프에서 ‘당신이 아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신 뒤 한 번도 제게 미래를 강요한 적이 없으셨죠.” 슐만은 “스스로 네 길을 찾으라고 놓아주신 아버지 덕에 영화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했다.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현장에서도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슐만은 “그는 완벽한 키팅이었다. 셰익스피어를 말런 브랜도와 존 웨인 톤으로 읽는 연기, 교탁 위에 올라가 발로 종을 차며 ‘딩’ 소리를 내는 장면, ‘신에게서 온 수신자 전화’ 대사 등이 모두 현장에서 로빈의 즉흥 연기로 탄생했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온 그는 “공식 일정 외엔 아내의 한국 화장품 쇼핑에 동행하는 게 가장 큰 임무가 될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 공연은 인상적이었어요. 배우들의 연기부터 새로운 무대 미술과 음악 모두 훌륭했고, 작품을 무대 위에 구현한 방식도 창의적이었습니다.”
공연은 13일까지, 6만~12만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