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세수 ‘행운’을 정부 ‘실력’으로 착각 말아야

방현철 기자 2026. 9. 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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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수 ‘대박’에 확장재정
하지만 나랏빚 우려는 그대로
韓, 반도체 세수에도 빚 1520조
건전 재정 사수 의지 보여야

며칠 전 일본 대학의 경제학 교수 한 분을 만났다. 나랏빚 문제가 심각한 일본이 어떻게 확장재정과 감세 정책을 편다고 하는지 궁금했다. 영국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대규모 금융 완화, 적극 재정, 성장전략) 중 오로지 확장재정만 이어간다고 평가했다.

그 교수는 “일본 정부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다”며 분위기를 전해줬다. 우선 재정적자 비율이 다른 선진국보다 낮다는 걸 강조한다고 했다. IMF 기준 일본의 재정적자 비율은 작년 1.21%에 불과하다. 영국(4.9%), 프랑스(5.02%), 미국(7.34%) 등은 물론이고, 유럽에서 건전 재정의 대명사인 독일의 2.06%보다도 낮아 ‘재정 취약국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 바탕엔 세수 ‘대박’이 있다. 일본은 올해 3월로 끝나는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 84조2000억엔의 세금을 거뒀다. 한 해 전보다 9조엔(약 77조원)이나 많다. 6년 연속 사상 최대치다. 명목 성장률과 물가가 오르고, 반도체 기업 등의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오어진

그런데 글로벌 시장에선 일본의 재정 실력이 나아졌다는 평가가 거의 없다. IMF 기준 GDP 대비 나랏빚이 207%로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세수가 몇 년 좋다고 고령화·저성장에 따른 나랏빚 증가 부담을 막을 실력이 있느냐는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지나친 정부 지출로 경기를 부양하는 ‘재정 중독’에 빠져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 결과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최근 연 3% 선을 넘어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나랏빚 위험성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국채에 매기는 금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3~2024년 반도체 불황으로 대규모 세수 ‘펑크’를 겪은 후, 작년부터 세수가 회복됐다. 올해는 반도체 호황으로 해외에서 세수 ‘횡재(windfall)’라 부를 정도로 상황이 좋다. 정부는 3월 추경에서 국세가 올해 25조원 더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그 후로 더 좋아져 올해 세수는 50조원 늘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엔 올해 예산보다 200조원 가까이 많은 세수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오어진

정부가 1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재정적자 비율이 올해 3.8%에서 0.1%로 줄어 ‘재정 모범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수 증가에도 나랏빚은 올해 1413조원에서 내년 1520조원으로 더 늘어난다. 넘치는 세수로 빚을 갚기보다 미래대응기금에 쌓기 때문이다. 재정당국은 미래 성장을 위해 쓴다고 했다. 그런데 새 예산 사업이 워낙 많아 주요한 것만 추려도 100개나 된다. 세수 횡재로 돈 잘 쓰는 걸 재정 실력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금융위기를 경고한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는 책에서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많은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실력의 결과라고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사람들은 “투자 스타일이 독특하다” “두뇌가 명석하다” 등 칭송을 받다가, 운이 다하면 “근무 자세가 흐트러졌다” “생활이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꼬집었다.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한 게 개인의 일이라면 돈을 잃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나라 경제 운용을 책임진 정책 당국자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경제를 파탄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재정 관리 ‘실력’은 세수 ‘행운’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멀리 보면 한국 고령화가 일본보다 더 빨라 과거 일본보다 재정 부담이 불어나는 속도가 커질 것이다. 반도체 세수 횡재가 끝난 후에도 건전 재정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지금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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