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61] 보길도 윤선도 원림에 가요


가을이 오면 보길도에 가고 싶다. 땅끝 해남이나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기에 쉬이 찾지 못한다. 섬에 들어서도 산과 골짜기 안으로 가야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원림(園林)을 만날 수 있다. 고산은 병자호란을 계기로 보길도에 들어왔다. 왕자의 사부였던 그는 왕자를 보위하러 강화도로 향하다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배를 탐라로 돌렸다.
울분을 품고 남쪽으로 항해하던 중 보길도를 만났다. 풍수에 밝았던 고산에게 봉우리가 둘러선 특별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연꽃이 핀 듯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하고는 좋은 자리를 골라 거처인 낙서재를 지었다. 맞은편에는 산자락 돌이 석실처럼 이뤄진 곳에 정자를 지었다. 이곳을 동천석실이라 한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세연정이란 정자를 만들어 그만의 낙원에서 호사를 누렸다.
산 아래에서 동천석실을 올려다보면 솔숲 사이 절벽 위가 신선이 사는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곳에 오르면 부용동의 산세와 고산의 손길이 닿은 곳곳이 펼쳐진다. 고산처럼 차바위에 앉아 차도 마시고, 한 칸 정자에서 새벽달도 보며 머물고 싶다. 서둘러 둘러보고 내려오면 그 멋을 헤아리기 어렵다.
세연정에서는 판석보(돌을 연결해 쌓아 만든 보)에 눈이 간다. 물을 막으면서 다리가 되도록 한 돌에 고산의 솜씨가 남아 있다. 낙서재 앞에는 그가 달맞이를 즐겼다던 귀암(龜巖)이 있다. 고산은 ‘어부사시사’ 가을 시구에서 “사시 흥이 한 가지나 추강이 으뜸이라” 하고는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고 했다.
윤선도의 본가는 해남이지만 보길도를 자주 찾아 오래 머물렀고, 여든다섯에 낙서재에서 생을 마쳤다. 가을 바람 부는 날 보길도를 찾아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를 따라 읊으며 그가 보았던 달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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