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피해지역 만삭 임신부 490명…의료 붕괴로 ‘생사고비’

조형국 기자 2026. 9.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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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휩쓸고 간 지역 임산부 4430명…74명은 ‘응급 처치 필요’
아동도 1만7000명…‘트라우마’ 속 영양실조 등 2차 피해 우려

네팔 라수와 지역 마일룽 마을에 사는 임신부 A씨는 7개월 된 뱃속의 아기와 함께 이번 대홍수에서 살아남았다. 문제는 두 사람 외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석 달 후 태어날 아기의 아빠, 다른 가족, 집과 세간살이가 전부 휩쓸려 갔다. A씨는 농촌 마을 칼리카스탄의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이 소식을 SNS에서 전한 현지 구호활동가 프라카시 파우델은 “모든 임산부를 즉시 카트만두로 옮겨 적절한 의료 지원과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어린이·노인과 장애인 등 약자에게 더 가혹한 재난의 고통은 지난달 26일 네팔 바그마티주 일대를 덮친 대홍수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2일 유엔인구기금(UNFPA)·유니세프 등 조사를 통해 현재까지 파악된 통계를 종합하면 이번 홍수가 휩쓸고 간 라수와·누와코트·다딩·치트완 등 피해 지역에 약 4430명의 임산부가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내에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신부는 약 490명, 이 중 74명은 응급 처치가 필요할 가능성이 큰 경우로 파악됐다.

현지 의료·교통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안전한 출산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임시 대피소에서 출산이 임박한 여성이 간신히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이동한 사례가 전해지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빈번하고 즉각적 의료 대응이 절실한 임산부에게 재난으로 무너진 의료 안전망은 목숨을 위협하는 최악의 위기다.

이주노동 등 경제적 이유로 성인 남성 인구 유출이 많은 네팔의 특성도 재난 피해에 영향을 미쳤다. 바그마티주 전체 가구 3분의 1이 여성 가장 가구다. 자녀와 조카들을 데리고 몸을 피한 란지나 타망(26)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수 당일 아침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던 그는 귀를 찢는 굉음에 즉시 피신에 나섰다. 4개월 된 아기를 등에 업고, 왼손으로 7세 아들을, 오른손으로 5세 조카를 붙잡았다. 8세 조카를 몸으로 밀며 뛰라고 소리쳤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숲으로 달리는 내내 등에 업힌 아기가 떨어진 건 아닐지 걱정했다고 그는 카트만두포스트에 말했다.

2024년 네팔 재난 보고서를 보면, 2018~2024년 네팔에서 재난으로 숨진 2996명 중 여성은 1678명, 남성은 1278명이었다.

아동들도 위기에 직면한 대표적인 취약계층이다. 유니세프는 최소 1만7000명의 어린이들이 재난 피해를 봤다고 추산했다. 적어도 38곳의 학교를 홍수가 덮쳤고 이 중 18곳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과 친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겪은 아이들의 정신적 충격도 앞으로 네팔이 보듬어야 할 과제다. 앨리스 아쿵가 유니세프 네팔 대표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삶이 휩쓸려 가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며 “살아남은 아이들은 이제 질병·영양실조·폭력·착취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노인과 장애인도 재난 이후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 청각장애인 부디 바하두르 타망은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아내 없인 전화 통화를 할 수 없어, 해외에 있는 아들에게 1주일 넘게 이 사실을 전하지 못했다. 네팔 포카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안자나 케이시 센터장은 재난 직후 성명에서 “피해 지역 내 모든 장애인의 수색·구조·구호 및 재활에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단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조처를 해달라”고 밝혔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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