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대한다던 팀장도 동생도…” 사진 들고 네팔 전역 헤매는 가족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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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팀장이 참 좋아했어요. 나중에 한번 한국에 초대해준다고 말했대요."
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난 밀란 카렐(32)의 가족들이 그의 마지막 페이스북 글을 내보였다.
1일 밤(현지시각)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한겨레 요청에 카렐과 삽코타의 가족 11명(카렐 가족 4명, 삽코타 가족 7명)이 네팔 카트만두의 한 카페에 모여들었다.
카렐이 주변에 "대피하라"고 소리쳤다고, 그의 외침 덕분에 생존한 동료가 가족에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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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하라” 소리친 32살 카렐
아내·4살 딸밖에 모르던 삽코타
한국인 동료들과 함께 연락두절

“한국인 팀장이 참 좋아했어요. 나중에 한번 한국에 초대해준다고 말했대요.”
네팔 카트만두에서 만난 밀란 카렐(32)의 가족들이 그의 마지막 페이스북 글을 내보였다. 한국인 동료와 ‘손 하트’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 위에 “동료들과 즐거운 주말”이라고 적었다. 글이 적힌 날짜는 8월6일, 카렐의 일터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이 대홍수에 휩쓸리기 20일 전이다.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남동발전이 짓고 있던 ‘어퍼트리슐리-1’ 수력발전소는 지난달 26일 벌어진 네팔 대홍수 최악의 피해 현장 중 한곳으로 짚인다. 이곳에 파견됐던 한국인 노동자 9명의 연락이 두절됐다. 한국 사람들과 4년 이상 호흡을 맞추며 일해온 카렐과 비크람 삽코타(35)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네팔독립발전사업자협회(IPPAN)는 이 발전소에서만 576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한다.

1일 밤(현지시각)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한겨레 요청에 카렐과 삽코타의 가족 11명(카렐 가족 4명, 삽코타 가족 7명)이 네팔 카트만두의 한 카페에 모여들었다. 온 가족이 두 사람을 찾아 네팔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게 ‘살아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공대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어요. 누나들 결혼 비용, 부모님 병원비 다 마련해주던 동생입니다.”(카렐 가족) “딸이 4살이에요. 아내랑 딸밖에 모르는, 가정에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삽코타 가족)
두 사람을 찾기 위한 가족들의 분투는 힘겹고 갑갑하다. 대홍수 이후 회사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무작정 구조 헬기가 오가는 트리슐리 군사기지, 카트만두의 트리부반대학 교육병원 등을 오가며 두 사람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붙였다. 정부와 기업, 각국 언론에 수색을 호소했다. 이날도 주검들이 수습되는 트리슐리강 하구 치트완 지역을 들렀다가, 카트만두까지 또다시 170㎞를 이동했다. 현재 카트만두에 머무는, 수력발전소 주변 마을 이장을 만나 현장에 접근할 방법을 물었다고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현장 방문은 불가능하다는 허무한 얘기만 들었습니다.” 삽코타의 형 나렝 삽코타(40)가 침울한 표정으로 전했다.
가족들은 두 사람의 마지막 흔적을 붙잡고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삽코타는 대홍수 당일 아침 6시 여느 날처럼 아내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사소한 집안 살림 이야기를 했다. 카렐의 마지막 흔적은 대홍수 발생 직후다. 카렐이 주변에 “대피하라”고 소리쳤다고, 그의 외침 덕분에 생존한 동료가 가족에게 전해주었다. 그 시간 이후 두 사람의 모습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가족들은 “한국인을 포함해 이번 재난을 통해 연락 두절된 사람들이 제발 모두 무사하길 바란다”며 “회사에서도 상황 공유와 연락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쪽은 “현재 200여명의 가족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관련 현황을 공유하고, 참여 가족 수를 늘려가고 있다”며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헬기를 띄워 수색을 진행 중이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수색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카트만두의 밤, 대홍수 이후 귀중한 하루가 또다시 성과 없이 지나고 있었다. 든든했던 동생 모습을 전하던 프리티 카렐(34)이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더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네팔 정부나 회사에서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카트만두/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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