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왜 나락으로 보내는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유명인이 늘고 있다. 이름난 인물이나 기업이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을 했을 때, 대중은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댓글 창,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에 대한 지지를 전면 철회하고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한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혹은 ‘등돌림 문화’라고 한다. 예를 들어, 증조부가 친일파였음을 모르고 집안을 자랑한 배우 하영과 자기를 돕다가 실수한 사회복무요원을 유튜브 채널에서 저격한 유튜버 박위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제는, 조리돌림이 과하다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불쾌한 언행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유명인의 SNS에 몰려가 악성 댓글을 달고, 과거 행적을 파묘하고, 업계에서 영영 퇴출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심지어 박위에게 지금의 아내 송지은을 소개해준 개그맨 김기리의 SNS에도 조롱과 비난이 폭주할 정도다. 왜 사람들은 도덕규범을 거스르는 언행을 한 유명인에게 좌표를 찍어서 집단적인 린치와 처벌을 가하는가?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저서 <모두 다 …을 앎을 모두 다 알 때>(국내 미번역)에서 도덕규범이 유지되는 방식은 법률과 매우 다름을 지적한다. 법을 어기면 경찰에 체포돼 형벌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지킨다. 반면에, 벌거벗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안 된다거나, 뚱뚱한 사람을 앞에서 돼지라고 놀리면 안 된다는 등의 규범을 모두가 지키고 있는지 국가가 24시간 폐쇄회로(CC)TV로 전 국민을 일일이 감시하지는 않는다.
어떤 규범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이렇다. 모두 다 그 규범을 알고, 다른 모든 사람도 그 규범을 안다는 것을 모두 다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빨간 불에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규범을 나 혼자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모든 사람도 그 규범을 알고 있음을 모두 다 알고 있을 때에만, 혼잡한 교차로에서 안심하고 빨간 불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
즉, 규범은 누구에게나 명백하게 공개돼 있을 때만 규범으로 온전히 기능한다. 이는 곧 누군가 규범을 ‘공공연하게’ 위반한다면, 그 규범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는 뜻이다. 빨간 불에 질주하는 운전자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 만약 그 광경을 본 다수의 운전자들이 “빨간 불에 질주해도 괜찮나 보네!”라고 생각한다면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 공중파 방송에서 친일파 조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하영은 일제강점기의 친일이 끔찍한 반민족 부역 행위라는 대중적 믿음을 짓밟은 셈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모두 보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앞에서 규범을 어긴 위반자를 공동체가 처벌해야 규범을 세울 수 있다. 단, 그냥 하면 안 된다.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모두가 처벌을 보는 앞에서, 그리고 모두 처벌을 보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앞에서 위반자를 처벌해야 비로소 규범을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예컨대 빨간 불에 질주한 운전자가 처벌받는 모습을 나는 보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도 보았는지 내가 알 수 없다면, 나는 여전히 교차로를 지날 때 다른 차가 내 차를 들이받을까봐 불안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형사처벌은 공개된 장소에서 수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곤장틀, 주릿대, 십자가, 화형대, 단두대 등 눈에 확 띄는 도구를 써서 행해져온 까닭을 이로부터 알 수 있다.
전근대 사회의 공개 처형은 끝없이 열린 21세기의 사이버 공간에서 못마땅한 언행을 한 유명인을 ‘나락 보내기’에 해당한다. 군중 가운데 나서서 유명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정의의 사도라는 칭찬을 받는다. 돌팔매를 말리는 사람은 공동체를 해친다는 욕을 먹으며 평판이 떨어진다. 처벌과 칭찬이 ‘공개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증폭된다. 즉, 유명인의 SNS에 달린 비난 댓글 가운데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은, 혹은 과거의 흠결을 새로 찾아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은 계속 리트윗되고 공유돼 수많은 사용자에게 전파된다. 부적절하게 행동한 유명인이 처벌받고 있음을 모든 이가 알아야, 그리고 모두 그 응징을 알고 있음을 모두 다 알아야 규범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도덕규범은 위반자를 ‘공개적으로’ 처벌할 때만 유지되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 살벌하고 비정한 ‘나락 보내기’가 벌어진다. 저지른 잘못의 무게보다 훨씬 더 심한 응징은 마땅히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표적이 된 유명인에게 돌을 던질 때 얻는 뿌듯한 정의감은 자연선택에 의해 우리의 마음 속에 진화한 감정일 뿐, 객관적 진실을 꼭 반영하지는 않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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