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Pick]조선호텔이 빚어낸 '진짜' 광동 요리의 미학

정혜인 2026. 9. 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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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센트럴시티 한복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홍콩의 어느 비밀스러운 사교클럽에 들어선 듯한 설렘이 인다.

동양적인 클래식함과 모던한 감각이 빚어내는 조화가 시선을 붙드는 이곳은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운영하는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모트32 서울'이다.

특히 모트32 서울은 딤섬과 바비큐 파트 모두에 홍콩 현지 출신 베테랑 셰프를 두고 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저를 '모트32의 셰프'로 알고 계시지만 저는 조선호텔 소속"이라며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조선호텔의 이름으로 광동식 요리를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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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엔드 중식당 '모트32 서울' 유원정 주방장 인터뷰
'60년 노포' 중식당 화교 3세의 운명 같은 선택
타협 없는 '디테일' 고집…'초단위 감각'으로 승부
유원정 조선호텔 모트32 서울 주방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 한복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홍콩의 어느 비밀스러운 사교클럽에 들어선 듯한 설렘이 인다. 중앙의 아득하게 높은 천장 한가운데에는 나무틀로 짜인 동양적 감각의 샹들리에가 빛을 흩뿌린다.

불빛 아래 동양화로 채워진 벽면을 따라가면 한쪽에서는 바텐더가 능숙하게 칵테일을 흔들고 있다. 동양적인 클래식함과 모던한 감각이 빚어내는 조화가 시선을 붙드는 이곳은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운영하는 모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모트32 서울'이다.

1891년 뉴욕 모트가 32번지의 작은 중국 잡화점에서 출발한 이 브랜드는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만와'를 이끌었던 리만싱(Lee Man Sing) 셰프의 손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홍콩과 싱가포르, 라스베가스, 밴쿠버를 거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서울에 상륙했다.

이 화려한 무대 뒤 주방을 지휘하는 이는 유원정 주방장이다. 최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그를 만나 모트32 서울과 그의 요리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중식 요리 하나하나의 유래와 조리법을 설명할 때는 마치 강의를 하듯 신이 났고, 손끝의 타이밍 하나까지 짚어 가며 레시피를 소개할 때는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중식 셰프들은 눈에 불빛이 있는 것처럼 텐션이 좋다"는 그의 말대로 유 주방장 자체가 살아 있는 중식당의 얼굴 같았다.

3대째 이어온 손맛

유원정 주방장은 화교 3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앞에서 약 60년간 중식당을 운영했다. 입대를 앞둔 훈련병들은 긴장을 풀기 위해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갔고, 훗날 결혼해 가족과 함께 다시 그 집을 찾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추억을 안고 논산에 올 일이 있으면 다시 찾아오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요리는 선택이라기보다 물려받은 감각에 가까웠다. 부모님은 아들이 한의사가 되길 바랐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주방을 향해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서울로 유학을 갔던 그는 방학 때마다 논산 집에 내려가 양파와 대파를 다듬고 생선과 닭을 손질하며 부모님을 도왔다.

고교 졸업 후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결국 19살에 요리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그는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며 부모님도 내 결정을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유 주방장의 형도 63빌딩 중식당(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최근까지 셰프로 일했던 만큼 집안 전체가 그를 중식의 세계로 이끈 셈이었다.

유원정 조선호텔 모트32 서울 주방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유 주방장은 중식이 유독 자신과 잘 맞았던 이유를 성격에서 찾았다. 그는 "한식이 조용하고 정갈한 요리라면 양식은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 고급스럽게 완성하는 요리"라며 "반면 중식은 칼과 불을 다루며 순발력과 센스가 동시에 필요한데 그 다이내믹함이 재밌다"고 설명했다.

화교로서 자연스럽게 익힌 중국어도 이 역동적인 중식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열쇠가 됐다. 유산슬이나 팔보채처럼 사람들이 이름의 뜻까지는 알지 못하는 요리도, 그에게는 재료와 조리법이 그대로 담긴 글자로 읽혔다

이날도 "유산슬의 유는 흐를 류(流)이고 산(三)은 세 가지 재료를 뜻한다"며 "돼지고기·해삼·죽순 세 가지를 가늘게 채 썰어 볶아낸 뒤 물 전분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은 것이 유산슬이라는 요리"라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중식을 향한 유별난 애정이 묻어났다.

팬데믹 속 새벽 특훈

유 주방장이 그 열정을 더욱 다진 곳은 조선호텔앤리조트다. 그는 2012년 조선호텔앤리조트에 합류해 대한민국 광동식 중식의 메카로 꼽히는 '홍연'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후 레스케이프 호텔의 '팔레드신'을 거쳐 2021년 12월 모트32 서울 개점과 함께 초대 주방장으로 부임했다.

초대 주방장으로서 그가 맡은 임무는 홍콩 본사의 레시피와 조리법을 서울에 그대로 이식하는 일이었다. 세계적인 하이엔드 중식의 맛을 흠 하나 없이 재현하는 것은 유 주방장의 내공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는 "처음에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동식 레스토랑의 수준에 맞는 인력과 식재료를 수급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컸다"고 털어놨다.

유원정 조선호텔 모트32 서울 주방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본사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유 주방장을 비롯한 여러 셰프를 홍콩 본사로 보내 수차례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문제는 하필 이 시기에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홍콩 방문 길이 막혔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레시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유 주방장 팀은 홍콩 대신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로 급파됐다.

싱가포르에서의 트레이닝은 혹독했다. 임시 체류 신분이다 보니 정식 보건증이 없어 마리나베이샌즈 출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이 없는 매일 새벽 7시부터 영업 시작 전까지, 그리고 브레이크타임인 오후 2시 반부터 5시까지 셰프에게 매달려 레시피를 전수 받았다. 홍콩 본사에서도 이들의 트레이닝을 돕기 위해 싱가포르로 셰프를 보내줬다. 이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완성한 레시피는 지금도 모트32 서울의 메뉴판에 그대로 올라 있다.

조선호텔 모트32 서울의 꿀소스 이베리코 차슈와 활 바닷가재 마파두부./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맛을 옮겨오는 일 못지않게 중요했던 건 그 맛을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모트32 서울에는 개인이나 일반 프랜차이즈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투자가 뒤따랐다. 이베리코 차슈를 굽는 로켓 모양의 원통형 화덕부터 북경오리 전용 오븐까지 매장 안 집기와 기물 대부분이 해외에서 직접 들여온 것들이다. 오리 전용 오븐 하나에만 1억원이 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주방은 바비큐 파트, 딤섬 파트, 웍 파트로 완전히 나뉘어 돌아간다. 일반적인 중식당이 한 주방에서 모든 종류의 조리를 소화하는 것과 달리, 각 파트가 전문적이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특히 모트32 서울은 딤섬과 바비큐 파트 모두에 홍콩 현지 출신 베테랑 셰프를 두고 있다. 다른 특급호텔 중식당들이 대체로 중국 본토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진짜 광동식의 맛을 내려면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테리어도 전 세계 모트32의 하이엔드 기준에 맞춰 그대로 공수했다. 업계에서는 모트32 서울을 국내에서 평당 인테리어 비용이 가장 높은 외식업장으로 꼽는다. 유 주방장은 "물티슈 정도를 제외하면 업장 내 거의 모든 것이 수입품"이라며 "이 정도 규모의 시설과 장비, 이만한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조선호텔앤리조트이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초 단위로 갈리는 승부

유 주방장이 요리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타협 없는 '디테일'이다. 이 철학이 가장 응축된 메뉴는 단연 '꿀소스 이베리코 차슈'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최고 등급 부위인 플루마를 로켓트 화덕에 걸어 굽는 이 요리는 모트32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시그니처 메뉴다.

관건은 꿀 소스가 타기 직전 절묘한 시점에 불을 빼는 타이밍이다. 그는 "조금만 늦으면 꿀이 타 쓴맛이 배고, 조금만 이르면 특유의 캐러멜 향과 겉면의 바삭함이 살지 않는다"며 "이 절묘한 지점을 잘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덕의 화력이 최고조에 오르는 그 짧은 순간을 정확히 잡아내는 것, 그 초 단위 감각이야말로 그가 30년간 쌓아온 손맛의 정수다. 여기에 즈마장(참깨소스)과 땅콩버터를 섞은 특제 소스를 더한다. 유 주방장은 "두 가지를 각자 따로 두지 않고 반드시 층이 겹치도록 회오리치듯 블렌딩해야 우리만의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조선호텔 모트32 서울의 꿀소스 이베리코 차슈./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유 주방장이 꼽은 또 다른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는 활 '바닷가재 마파두부'다. 일반 마파두부와는 달리 두반장과 산초, 직접 우려낸 화조유로 수시간 졸여낸 베이스에 랍스터를 더해 모트32 서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매운맛 뒤에 남는 해산물의 감칠맛이 이 요리의 포인트다.

이런 타협 없는 디테일들은 다른 메뉴에서도 드러난다. 반숙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메추리알 샤오마이'는 정확한 타이머 조리와 급냉을 오가며 만들어진다. 익기 직전의 메추리알을 얼음물에 담가 속을 반숙 상태로 고정한 뒤, 손님상에 나가기 직전 다시 짧게 쪄 내 온기와 반숙 식감을 동시에 살리는 방식이다. 북경오리 역시 기름에 튀기는 대신, 손님이 착석한 뒤 화덕에서 50분간 라이브로 직접 구워낸다. 48시간 건조한 오리 표면이 열기에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재미있는 건 모트32 서울이 최고급 중식당 대부분이 취급하는 샥스핀(상어지느러미)을 아예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보호 정책에 따른 본사 방침 때문이다. 하지만 도입 초기엔 매장 안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그는 "VIP 고객들이 선호하는 메뉴라 처음엔 실랑이도 많았다"면서도 "대신 제비집과 최상급 건해삼처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재료로 격을 채운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중식당

이런 디테일 집착은 주방 안에서 더 도드라진다. 주방 밖에서  화끈하고 열정적으로 요리를 설명하던 모습과 달리 주방에서만큼은 딴사람이 된다. 칼과 불을 다루는 곳인 만큼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유 주방장은 위생과 기본기, 선후배 예절만큼은 스스로 "결벽증에 가깝다"고 표현할 정도로 철저히 챙긴다. 그는 "밖에서는 이렇게 텐션 좋게 얘기하지만, 주방 안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며 웃었다.

이렇게 유 주방장 아래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후배들은 업계 곳곳에서 자기 이름을 건 식당을 차리고 있다. 모트32 서울 출신 셰프들이 독립해 차린 유명 중식당도 여럿이다. '유원정 밑에서 3년 하면 어디 가서든 성공한다'는 말이 업계에 돌 정도다. 그는 애정 섞인 목소리로 "내가 힘들게 가르쳤지만, 그만큼 눈썰미 있고 감각 좋은 친구들"이라며 "결국 나가서 잘되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유원정 조선호텔 모트32 서울 주방장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렇게 후배를 길러내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지금도 매년 두 차례 홍콩 본사와 교류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본사 인력이 방한해 레시피와 식재료 상태를 점검하고 하반기에는 그가 직접 홍콩으로 건너가 트레이닝을 받는다. 조선호텔에 몸담은 지 14년, 조리를 시작한 지 30년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모트32 서울이 어떤 곳인지 묻자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광동식 음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저를 '모트32의 셰프'로 알고 계시지만 저는 조선호텔 소속"이라며 "글로벌 브랜드를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조선호텔의 이름으로 광동식 요리를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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