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적 부동산 투기 타파" 이틀만에 종부세 후퇴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2026. 9. 2. 13:5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거주자 공제 원복… 세제개편안 국무회의 통과
대통령의 핵폭탄급 발언과 배치되는 정책 나와
결국 실거주 1주택자 종부세만 감면해 준 셈
시민과 시장, 대통령 발언에 대한 믿음 상실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30일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SNS에 올린 지 불과 이틀만에 정부는 종부세를 개악하는 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감세안이라고 비판받던 8·3세제개편안에서 더 후퇴한 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선언과 정반대의 일이 불과 이틀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것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제 시민과 시장은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믿음을 잃는 것 보다 무서운 일은 없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파하겠다는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민주권 정부는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타파할 것"이라며 "금융·세제 개혁은 물론이고 주택 공급 물량 확대와 신속한 공급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투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드러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조세 정의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시정할 것"이라며 위와 같이 적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다음 세대의 희망을 위해 부동산 투기 '폭탄 돌리기'와 잃어버린 30년의 위험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이 대통령은 공급책에 있어서는 "주택 건설 조기 확대는 반드시 시행한다. 수도권과 서울은 2022년부터 3년 이상 주택 인허가와 착공이 급감했는데, 구청장에게 500세대 이하 규모의 인허가권을 부여하는 등 조기 인허가와 착공에 최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토장관 표현대로 '공급을 못 해 미친' 것처럼 최대한 신속하게 공급을 늘리겠다"며 "국무총리가 매일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청와대도 정기 점검을 실시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예산 언박싱 2027'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발표에 앞서 청년 예산과 주요 사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2026.8.2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대통령의 엄포 이틀 후에 나온 종부세 개악안

충격적인 건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가 나온지 불과 이틀만에 종부세 개악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1일 재정경제부는 국무회의에서 종합부동산세법·소득세법 등 세법 개정안을 최종 확정했다. 지난달 3일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지 불과 29일 만의 수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비거주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다. 현행 제도에서는 집 한 채를 가진 경우 실제로 그 집에 살지 않더라도 공시가격 12억원까지 종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이 비거주 1주택자의 공제액을 9억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거주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원복시켰다.

또한 부부가 한 채를 공동명의로 가진 경우도 조정됐다. 정부는 당초 비거주 공동명의 1주택자의 기본공제를 부부 각각 4억원씩, 총 8억원으로 낮추려 했지만 다시 각각 6억원씩, 총 12억원으로 수정했다. 이것도 원상복구된 것이다.

반면 실제 거주하는 1주택자에 대한 혜택 확대는 그대로 추진된다. 실거주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는 현행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라간다. 실거주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는 각각 9억원씩 공제받는 방안도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실거주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기본공제액이 14억원으로 올라간 감세안이 확정된 것이다.

아울러 종부세가 한 해에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세부담 상한' 강화 방안도 철회됐다. 현재 종부세는 집값이 크게 올라도 전년도에 낸 세금의 최대 150%까지만 낼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이 상한을 200%로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현행 150%를 유지하기로 했다.
종부세 '역시 똘똘한 한채' (PG). 연합뉴스

대통령의 말과 정책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 광경을 우린 이미 본 적이 있다. 

지난봄 이 대통령은 '부동산공화국 혁파'와 '표 계산 없이 집값을 잡겠다'는 등의 강력한 메시지들을 발한 바 있다.

누구나 대통령의 핵폭탄급 발언을 뒷받침할 정책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재명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8·3세제개편안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발언 한 마디로 요약된다.

한 방송에 출연한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8·3세제개편안을 통해)30억 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거의 세 부담을 줄여줬다. 이게 99% 정도 된다"며 "상위 1%만 과세를 정상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유세도 줄어들고 나중에 팔 때 양도세도 줄여줬다. 둘 다 올린 게 아니라 둘 다 내려줬다"고 강조했다. 사실상의 감세안이라는 자백이다.

놀라운 건 이 감세안이 대통령의 핵폭탄급 발언들과 대척점에 있을 뿐 아니라 이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15%에 달할 정도로 서울 아파트 시장 전역이 불바다인 마당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설상가상 서울 아파트 시장은 지금도 매매가가 상승 중이고 전세와 월세도 덩달아 폭등 중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대통령의 발언과 정반대되는 정책이, 그것도 시장에 상승 연료를 제공해주는 정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정녕 알 길이 없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곳곳에 자리 잡은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된다.

1977년 경제학자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은 정책의 시간불일치(Time Inconsistency)란 개념을 창안한 바 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처음에 최적이라고 공약한 정책이 시간이 지난 후 상황이 바뀌면서 정작 실행 시점에는 다른 선택을 하려는 유인(동기)이 생겨 그 선택을 하게 되면, 결국 민간의 신뢰를 잃고 정책 효과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긴축을 선언한 중앙은행이 가계와 기업이 그에 걸맞게 대응해 긴축의 효과가 나타나자 통화 완화의 유혹을 느끼고 정책을 선회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가계와 기업은 중앙은행의 정책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의 정책 사이에는 단 이틀의 시차가 존재할 따름이다. 이쯤되면 정책의 시간불일치를 논하기가 면구스럽다.

한편 공자가 정치에서 식량(족식)과 군사(족병)를 버리더라도 백성의 믿음(민신)만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 신뢰가 그만큼 중요하다. 헌데 대통령에 대한 주권자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보다 엄중하고 위태로운 일도 없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가 2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중동 전쟁 여파로 석유류 물가가 크게 올랐고, 작황 악화로 농산물 물가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생활물가도 2년 2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농축수산물 물가는 3.2% 오르며 전체 물가를 0.24%p 밀어 올렸다.사진은 2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채소 코너. 2026.7.2, 연합뉴스
red1968@naver.com

"시민언론 민들레는 상업광고를 받지 않는
독립언론입니다.
시민들의 작은 후원이 언론 지형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후원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