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동네방네] 걱정마씨의 소원

관리자 2026. 9. 2. 05: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한가위가 깃든 새달을 마중한다. 오늘 밤 달과 별이 유난히 밝구나.

인도 여행을 하면 '노 프라블럼'을 입에 달고 사는 가이드들이 꼭 있는데, 비스름하다.

독재와 외세에 시달리며 정치는 엉망인데,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미여행서 만난 현지인 가이드
일정 어긋나고 차 고장나더라도
“걱정마라, 두려워마라” 늘 말해
나라에 빚더미 쌓여도 만사태평
독재·외세에도 절망 않는 사람들
서두름 없이 천천히 오늘 살아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한가위가 깃든 새달을 마중한다. 오늘 밤 달과 별이 유난히 밝구나. 나는 북극성이 떠 있는 북반구 말고 남극성이 생경한 남반구 남미를 여러차례 방문했다. 아르헨티나는 춤의 나라다. 탱고의 고향이기도 하고, 위대한 ‘축신’ 마라도나와 메시의 모국이다. 골을 넣으면 뒤엉켜 탱고를 추는 거 같아 탱고를 그 나라에선 ‘땅고’라 부른다. 골반을 돌리면서 밀고 당기는 섹시한 춤, 탱고를 추려면 직직거리는 음반 한장을 올려놔야 한다. 가르델이라는 가수가 대부분의 탱고 노래를 처음 불렀다.

노래는 주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이다. “멀리서도 알아보겠네. 내 귀향을 기뻐하는 고향의 희미한 외등 불빛. 이전처럼 희미한 불빛들이 가물거리네. 그간의 암울한 고통의 시간들이 떠올라 되돌아오고 싶진 않았지만 결국 인생이란 첫사랑에게 돌아오는 길 아니던가. 메아리 같은 노래가 조용히 거리에 울려 퍼지네.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 당신의 사랑도 당신의 것, 짓궂은 별들이 표정없이 내 귀향을 반기네. 20년 세월은 금방이더라. 주름진 이마와 은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됐네. 인생이 마치 바람처럼 느껴지네.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르네.” 가르델이 부르는 ‘귀향’이란 제목의 탱고곡 가사다.

나는 걱정이 많아서 임꺽정인데,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걱정이 곱빼기가 된다. 남미 여행 중 만난 한 가이드는 그런 나를 나무랐다. “노 탱가스 미에도∼.”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말아라’란 뜻이다. 나는 그에게 ‘걱정마씨’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피식하며 “노 탱가스 미에도∼”. 인도 여행을 하면 ‘노 프라블럼’을 입에 달고 사는 가이드들이 꼭 있는데, 비스름하다. 가이드는 입만 열면 ‘걱정마슈!’ 귀에 못이 박히게 조잘댄다. 일정이 뒤틀리고, 차량 고장으로 제 날짜에 국경을 넘을 수 있을지 날마다 염려가 커갔다. 걱정마씨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고향집에 가게 해줄게. 걱정 붙들어 매셔∼”라고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런데 장난기가 많은 내가 힐끔대며 말했다. “그 고향집이 하늘나라 고향집은 아니지?”

한번은 와인의 도시 멘도사로 넘어가는데 폭설로 고갯길에서 발이 묶였다. 와인 욕심에 잔뜩 기대가 커지다보니 ‘믿음·소망·사랑’을 ‘맥주·소주·사케’로 읽는 정도였다. 걱정마씨 같았으면 수백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줬을 텐데 막연히 기다리라고만 한 뒤 반나절을 길에 죽치고 멈춰서 있었다. 이어폰으로 저장된 노랠 듣고 있었는데, 마침 노래가 전인권 아저씨의 ‘걱정말아요 그대’였다. 나는 버스에서 혼잣말로 ‘꺄악∼’ 했다. 걱정마씨가 안내하는 여행도 아닌데, 알고 따라나선 길인가 싶었다.

나라가 빚더미로 망해도 그 나라 사람들은 만사태평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견디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식이다. 독재와 외세에 시달리며 정치는 엉망인데,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우리 동네에선 천천히를 ‘싸목싸목’이라고 한다. 조급증을 갖지 않고 싸목싸목 천천히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탱고곡을 틀어놓은 목로주점에서 걱정마씨가 내게 그랬다. “훗날엔 이 도시를 떠나서 가우초(소몰이꾼)가 되고파. 그게 내 소원이야. 바비큐용 땔감을 그러모아 불을 피우고 춤을 출 때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춤을 잘 추던 어떤 애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임의진 시인·월드뮤직연구가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