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사는 세상] “고향은 늘 따뜻한 품”…‘전국노래자랑’ 진행자 개그맨 남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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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들이 어쩜 그렇게 끼가 많은지 몰라요."
개그맨 남희석씨(55)는 국내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매주 일요일 시청자를 만난다.
특히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지켜온 정한욱 작가를 두고 대단한 분이라고 거듭 치켜세웠다.
"예전보다 참가 신청자가 줄었고 젊은이도 많지 않아요. 농촌이 살아야 '전국노래자랑'도 오래갈 수 있어요. 농민들이 농사지어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여기서 미래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농민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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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출신으로 각별한 애향심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대사로 활동
‘전국노래자랑’ MC꿈 33년만에 실현
최고령 102세 할머니 참가자에 감동
‘세상 가장 무거운 마이크’ 소임 전력
외국인노동자 처우 개선에도 노력
경직된 숙소규정에 농민애환 목도
농촌이 살아야 방송도 같이 오래 가
농사지어 제대로 돈버는 세상 기대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들이 어쩜 그렇게 끼가 많은지 몰라요.”
개그맨 남희석씨(55)는 국내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매주 일요일 시청자를 만난다. 참가자 대부분이 농민인데 호미를 들었던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젊은 시절 접어뒀던 가수의 꿈을 뒤늦게 펼쳐 보인다. 단 한번뿐일지라도 가슴속 소망을 이뤄줄 수 있다는 게 남씨의 큰 보람이다.
출연은 2024년부터지만 농촌과의 인연은 태어날 때부터였다. 고향 충남 보령시 웅천읍은 주변이 온통 논밭인 곳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에 서울로 유학을 갔지만 기억 속 정겨운 풍경은 늘 가슴에 품었다. 그래서 첫째 딸 이름을 보령으로 지었고, 현재 운영하는 1인 기획사 이름도 ‘보령기획’이다. 보령머드축제와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부모가 아들을 서울로 보낸 이유는 공부였지만 그의 관심은 사람들을 웃기는 데 있었다. 희극인이 되겠다며 안양영화예술고등학교(현재 안양예고) 연극영화과 진학을 결정했다. 어려서부터 아들의 남다른 끼를 알고 있었기에 부모도 찬성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당대 최고의 인기 토크쇼 ‘자니윤쇼’에 나가 자니윤의 성대모사를 하며 주목받고 20세에 제1회 KBS 대학개그제(1991) 은상을 받으며 이름 석자를 널리 알렸다.
인기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던 2000년대 초반, 그는 브라운관 밖 세상에도 눈을 돌렸다. 그곳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체육대회를 열고 수술비가 필요하거나 임금을 못 받은 사람을 돕겠다며 모금했다. 인권단체 홍보대사를 맡아 노동권과 처우 개선을 알리는 데도 힘을 보탰다.
“요즘 농촌에 외국인 노동자가 정말 많잖아요. 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도 함께 봐야 합니다. 단순한 일이라도 같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다보니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고령농민이 결국 사람 쓰기를 포기하더라고요. 숙소도 마찬가지예요. 비용이나 거리 문제로 집을 구해주기 어려운 탓에 어르신들이 자기 집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주고 본인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해요. 제도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주 농민을 만나면서 그들 삶에 대한 공감도 깊어졌다. 농사지으며 굽어버린 어르신의 열 손가락을 보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가끔 치던 골프도 그만뒀다. 뉴스로만 보고 지나치던 가뭄·장마·태풍이 어느덧 그의 걱정거리가 됐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은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이었다. 1991년 대학개그제에서 입상하고 수첩에 ‘50세가 넘으면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고 싶다’고 희망사항을 적어놓았다. 2009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송해 선생님에 이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국노래자랑’ MC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30여년 뒤 그 꿈이 현실이 됐다. 진행자가 확정된 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마이크’라고 소감을 밝혔다. 고(故) 송해의 존재감이 큰 데다, 송가인·임영웅·이찬원 같은 인기 스타를 배출해온 국민 방송이라는 점 때문이다. 동시에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했다. 진중하고 겸손하되, 부담은 갖지 말고 천천히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그는 분위기를 띄워보려 출연자와 함께 요염한 춤을 추며 무대를 누빈다. 또 전에는 내용이 미리 공개되는 걸 막으려고 관객의 휴대전화 촬영을 금지했는데, 남씨가 제작진에게 촬영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유튜브에 직캠(직접 찍은 카메라 영상)이 퍼지면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여러 직캠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남씨 덕에 시청률도 상승했다.
그는 이런 성과가 카메라 뒤에서 땀 흘리는 제작진 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지켜온 정한욱 작가를 두고 대단한 분이라고 거듭 치켜세웠다. 빠른 노래와 느린 노래, 유머와 감동, 인터뷰와 특산품 시식까지 순서를 물 흐르듯 배치해놓는다는 것이다. 대본이 마치 정확한 내비게이션 같아서 그걸 따라가며 마음껏 뛰어놀기만 하면 된단다.
또 ‘전국노래자랑’의 진정한 주인공은 출연자라고 말했다. 특히 2024년 전남광주 화순 편에 출연한 102세 강예덕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역대 최고령 참가자인 강 할머니는 꼿꼿이 서서 ‘찔레꽃’을 불렀다. 노래를 듣던 관객들은 저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고 남씨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강 할머니는 이날 인기상을 받았다. 그런데 몇개월 뒤 할머니 가족이 제작진에게 뜻밖의 연락을 해왔다. 할머니는 인기상 메달을 늘 목에 걸고 다니며 자랑했는데 그만 잃어버리곤 상심해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이다. 16세에 시집가 평생 자식·손자를 키우고 농사를 지어온 할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받은 소중한 상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씨는 할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귀엽게 느껴졌단다.
요즘 남씨를 긴 생각에 잠기게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송해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전국노래자랑’을 이끌 거지?”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농촌 인구감소를 체감하며 마냥 “그러겠다”고 답할 수만은 없게 됐다.
“예전보다 참가 신청자가 줄었고 젊은이도 많지 않아요. 농촌이 살아야 ‘전국노래자랑’도 오래갈 수 있어요. 농민들이 농사지어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여기서 미래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농민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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